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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선언이 남긴 유산…갈등을 넘어 협력으로

세계유산협약 제4조
이 협약의 각 당사국은 제1조 및 제2조에 언급된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으로서 자국의 영역 내에 위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보호하고, 보존하고, 공개하고, 후세대에 전승하는 일을 보장하는 의무가 제1차적으로 자국에 속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각 당사국은 자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적절한 경우에는 얻을 수 있는 모든 국제적 원조 및 협력, 특히 재정적, 예술적, 과학적 및 기술적 원조 및 협력을 얻어 최선을 다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세계유산협약은 1972년에 만들어진 '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이라는 긴 이름의 유네스코 협약이다. 대한민국이 1988년에 이 협약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협약의 모태가 되었던 1960년대 이집트 누비아 유적 보호 운동에 대한민국이 기념우표를 발행하고 그 판매 대금으로 힘을 보탰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아스완하이댐 건설로 물에 잠길 위기에 놓인 아부심벨 신전을 구하기 위해 50개가 넘는 나라가 손을 보탰던 이 운동은, 한 나라의 영토 안에 있는 유산을 인류가 함께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 준 사례였다.
세계유산협약이라는 제도는 바로 그 경험 위에 세워졌다. 대한민국과 세계유산의 인연은 1988년 가입도, 1972년 협약 제정도 아닌, 그 이전의 국제 운동에서 이미 시작된 셈이다. 이렇게 오랜 인연이 2026년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유산협약은 그동안 다섯 개의 전략 목표, 이른바 '5C'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신뢰성(Credibility), 보존(Conservation), 역량 강화(Capacity-building), 소통(Communication), 그리고 지역사회(Community)다. 어떤 유산을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지키고, 누가 지킬 힘을 갖추며, 어떻게 알리고,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여기에 '부산 선언(Busan Declaration)'이 더한 여섯 번째 항목이 협력(Collaboration)이다. 앞의 다섯이 유산을 지키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면, 협력은 그 방법을 누구와 함께 실행할 것인가를 묻는다.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에 세계유산협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잠시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를 돌아보자. 이미 등재된 유산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는 안건이 시작되자마자 우크라이나의 유산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고, 레바논의 두 유산이 뒤를 이었다. 팔레스타인의 유산은 새로 등재되는 동시에 위험 목록에 함께 올랐다. 유산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 자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어진 발언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레바논과 이란의 상호 비난이 오간 것은 더 무거운 장면이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프레아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은 한때 두 나라가 함께 지켜 온 협력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갈등의 자리가 되었다. 결국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국들의 목소리가 위원회 회의장을 채웠다. 그간 갈등 해결에 가장 적절한 도구로 여겨져 온 문화 분야, 그 대표적인 회의인 세계유산위원회마저 전 세계의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이런 갈등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부산 선언이 말하고 있는 협력이다. 세계유산협약은 누비아 유적을 지키기 위한 국제 협력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산 선언은 무력 분쟁, 기후변화, 개발 압력 등 세계유산을 둘러싼 여러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공동의 책임을 제안하고 있다.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부산 선언이 제시하는 협력은 공동의 책임을 바탕으로 소통하고 함께 움직임으로써 세계유산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여러 갈등을 넘어설 방향을 제시한다.
사실 협력은 전에 없던 이야기가 아니다. 협약 제4조는 자국 영역 안에 있는 유산을 지킬 1차적 책임이 당사국에 있다고 못 박으면서도, 곧바로 국제적 원조와 협력을 최대한 얻어 최선을 다하라고 덧붙인다. 책임은 각자의 것이되 그 책임을 감당하는 힘은 함께 만든다는 뜻이다. 부산 선언의 협력은 협약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이 원칙을, 갈등이 일상이 된 오늘의 언어로 다시 꺼내 놓은 것이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안타깝게도 전 세계의 갈등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회의였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유산에서 그리고 그보다 넓은 자리에서 협력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정확히 보여 준 회의이기도 했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지금, 부산 선언이 남긴 유산은 갈등의 시대를 협력의 시대로 바꾸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부산 선언을 이끌어낸 대한민국은 세계유산 분야에서 협력을 넓히기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 나가야 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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