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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서 본 보름달, 보름달 속 어머니

[가상 콩트] 해외여행 떠난 40대 장남 이야기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2017.09.29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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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여보, 우리도 한번 이번 명절 때 여행가요.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고향에 다녀왔잖아요.”

고민이 많았었다. 추석에 동유럽 여행이라니. 처음에는 들은 척도 안 했지만 계속되는 성화에 결국 아내한테 지고 말았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이상한 게 처음에는 단호히 반대하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니 나 역시 동유럽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솟아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 둘과 아내와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그런 북새통이 없었다. 우리 식구 넷을 포함해 단체 관광객 27명이 헬싱키 공항에 도착한 건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7시였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더니 잠은 오지 않고 피곤이 몰려왔다. 다음 날 새벽까지 거의 뜬 눈으로 보내다 아침에 2시간 30분 정도를 버스로 이동해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1841년에 지어진 젬퍼 오페라하우스는 절충주의의 거장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대표작이죠.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극장입니다. 군주의 행렬 벽화는 전체가 타일로 되어있는데 101m의 길이에 작센왕국 군주들의 행렬을 연대기 식으로 그렸죠. 1870년대에 손으로 그린 기존 벽화가 손상되는 걸 막으려고 1900년대 무려 25,000개의 타일을 붙여 다시 제작했죠.”

가이드는 드레스덴의 중심부의 젬퍼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열심히 설명했고, 일행 중에 어떤 사람은 받아 적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체코의 프라하로 다시 이동해 카를교를 둘러보았다.
가이드는 소형 마이크를 잡고 카를교는 보헤미아왕 카를 4세 때인 1346부터 1378년 사이에 건설되어 이 이름이 붙여졌는데, 볼타바 강에 걸쳐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둥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하염없이 이어나갔다.

그날,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나 체코의 건국자 바츨라프의 동상이 있는 바츨라프 광장 등을 관광하고 프라하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다리가 약간 뻐근했지만 멋진 일정이었다. 카를교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서서히 만월(滿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음날은 프라하에서 2시간 이상이나 자동차를 타고 온천 휴양지 카를로비바리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온천수를 마시며 자유롭게 산책하며 놀다가 다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체스키크룸로프로 이동했다. 도시 가운데로 볼타바강이 흐르고 있는 매력적인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잘츠캄머굿으로 이동했다. 76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문득 바닷가 고향 마을이 생각났다. 마음 한 구석이 왠지 찜찜했다.

고향 부모님에게 택배로 선물을 보내긴 했지만 장남으로서의 죄송한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신 뭘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경치가 너무 좋아서.”

그날 밤 호텔 인근 맥줏집에서 한 잔 할까 싶어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가다가 벌써 병맥주를 사들고 나오는 50대 한분을 만났다. 나는 가족을 데리고 나온 걸 과시라도 할 마음이 있었나 싶게 이렇게 툭 내뱉고 말았다.

“가족들은 두고 혼자 오셨어요? 혼자 오셨으면 같이 드시죠.”
아내가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게 아니고 호텔방에서 간단히 차례를 지내려구요. 집사람은 아마 상 차리고 있겠죠. 제수 용품 몇 개를 간단히 준비해왔거든요.”
“아, 네.”
“글쎄  위스키를 제주(祭酒)로 쓰기도 뭐해 맥주를 올릴까 해서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50대는 즐겁게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나는 즐겁게 보내기가 참 거시기 했다.

고향에 어머니를 홀로 두고 해외여행을 떠난 장남의 마음 한켠은 아내에게 내색하지 못한채 쓸쓸하고 씁쓸하다. 저 보름달은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영청 밝기만 하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향에 홀어머니를 두고 해외여행을 떠난 장남의 마음 한켠은 아내에게 내색하지 못한채 쓸쓸하고 씁쓸하다. 저 보름달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영청 밝기만 하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몇 번씩 잔을 부딪치며 즐거워 보이는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도 간단히 맥주 두병 사가지고 들어가 조상님들께 절을 올릴까, 라는 말은 끝까지 꺼내지 못했다. 여기까지 와서 꼭 그래야겠어? 아내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꽉 차오른 달이 무척이나 밝고 높게 떠 있었다. 유럽에서 보는 음력 8월 대보름달이었다.

대학생 때 달빛 어린 어느 호숫가에서 지금의 집사람과 술을 마시면서, 하늘에 하나, 호수 위에 하나, 그대 눈동자 속에 하나, 라고 하며 작업을 걸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눈 속에 달이 떠있을 것만 같았다. “에미 걱정 말고 잘 다녀와.” 인천공항에서의 마지막 통화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날이 밝자 우리 일행은 유럽의 배낭 여행자들이 동경한다는 할슈타트 마을로 떠났다. 할슈타트 호수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다. 맑고 푸르른 호수와 깎아지른 산비탈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은 한 폭의 수채화 그 자체였다.

우리는 다시 소금(Salz)의 성(burg)이라는 뜻의 잘츠부르크로 이동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생가 앞에서는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한참이나 줄을 서야 했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도레미송을 부르는 배경지로 유명한 미라벨궁전에서는 가족끼리 포즈를 취하며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따라 해보느라 한참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 맥줏집에서 했던 생각을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더 과장된 몸짓으로 가족들을 즐겁게 했다.

다음 날은 아침을 조금 느긋하게 먹고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음악의 도시 비엔나로 떠났다. 빈 시청사, 성 슈테판 대성당, 빈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쉔부른궁전을 둘러보았다. 쉔부른궁전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를 보려고 우리 일행들이 서로 밀치고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약간 짜증도 났다.

우리 일행은 비엔나에서 3시간 정도를 자동차로 달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전통을 자랑하는 음악학교,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영웅광장, 부다페스트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어부의 요새, 헝가리 국왕들의 위관식이 열린 마챠시 교회 등을 보고 밤에는 다뉴브강의 야간 유람선에 올라 서유럽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부다페스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헬싱키 공항에 도착해, 헬싱키에서 다시 9시간 정도를 비행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헬싱키-프라하-드레스덴-프라하-까를로비바리-체스키크롬로프-잘츠캄머굿-할슈타트-잘츠부르크-비엔나-부다페스트-헬싱키-인천으로 이어지는 7박 8일.

가족들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명절 때만 되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가을 추(秋) 저녁 석(夕). 가을 저녁에는 깊어가는 가을 저녁처럼 보내는 것도 행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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