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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가 만든 놀라운 변화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2017.10.11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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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화학물질관리법’ 전면개정과 함께 찾아온 변화

2013년 ‘화학물질관리법’이 전면 개정된 이후 많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변화를 만든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의 계기는 ‘정보 공개’라고 할 수 있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절에는 유통량조사에 대해 기업이 자유롭게 비공개신청을 할 수 있어서 전체 데이터의 80% 정도가 비공개되었다.

반면 ‘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물질통계조사 결과에 대해 비공개신청을 받기는 하지만 심사를 통과해야만 비밀을 인정해준다.

그 결과 2016년부터는 약 97% 이상의 사업장 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지역사회 화학물질 취급정보가 주민에게 공개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반긴 것은 지역사회 풀뿌리 주민운동이었다. 구미 불산누출사고 이후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알권리운동과 화학사고를 대비한 조례제정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알권리운동은 정보를 공유하는 운동이었고, 조례제정운동은 정보에 기반해 지역사회의 화학물질 관리 정책에 주민이 참여하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보를 얻어 지역사회의 화학물질 실태와 위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지역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출발이다. ‘정보는 권력’이라는 말도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사회 주민과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와 공동결정을 인정하겠다는 뜻이 된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계기로 시민사회에서는 알권리운동과 조례제정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환경부는 2013년 ‘화학물질관리법’ 전면개정에서 ‘정보는 공개가 원칙’임을 천명했고, 2016년에는 국회와 함께 법을 한 번 더 개정해 조례제정의 권한을 지역정부에게 부여하였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는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정부의 규제와 정책이 지역사회 주민의 요구와 만나는 좋은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발암물질 배출문제에서도 이러한 바람직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회 풀뿌리운동이 화학물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기존에 공개되던 정보가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이미 공개되고 있던 사업장별 배출량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발암물질 감시 및 대책 활동이 본격화된 것이다.

2013년 오창, 2015년 여수 그리고 2016년에는 광주광역시에서 발암물질 최대배출사업장에 대한 지역사회의 문제제기가 진행되어 상당한 배출 저감을 이루어냈다. 국회는 법개정을 통해 이러한 흐름에 답하였다.

발암물질에 대해 배출저감계획을 의무화하는 규정이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을 통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부터 한국사회에는 지역사회 화학안전과 관련한 정부정책과 법제도 그리고 주민요구가 공명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고까지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알권리 보장과 조례 제정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나?

화학물질조례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화성에서 발생한 불산누출사고가 계기였다. 현재까지 15개 이상의 지역에서 조례가 제정되었다. 조례는 화학물질관리계획을 지방정부가 수립할 수 있게 하였고, 이러한 계획을 심의의결할 수 있도록 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다.

조례에 따르면 주민대표는 이 위원회에 직접 참여하거나 전문가를 추천할 수 있다. 수원시는 이러한 위원회가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화학사고 대비를 위한 기업협의체를 만들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시민협의체를 만들어서 각자의 대표를 3인씩 선출한다.

그리고 위원회에서는 수원시 공무원과 시의회 의원 그리고 기업대표와 시민대표가 참여하여 안건을 논의하고 합의에 기반한 공동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원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원시에 가장 ‘핫한’ 이슈가 된 것은 지역사회 내의 위험사업장이 아니었다. 수원시에 화학사고와 화학물질 담당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민사회대표나 기업대표나 당장 요구하는 것은 화학사고와 화학물질관리를 할 수 있도록 수원시의 화학물질관리 업무를 명확히 분장하고 이를 추진할 인력을 배정하라는 것이었다. 화학물질통계조사 결과를 해석해 가장 위험한 지역을 찾아내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위험저감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그런 일을 지방정부 내에서 할 조직과 인력과 예산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2013년 ‘화학물질관리법’ 개정과 함께 유독물 인허가업무가 중앙으로 이관되어 지방정부의 담당자가 사라진 것이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방정부에 화학사고에 대한 대비 업무가 인식되어 있지 않았던 탓이 가장 크다. 유독물 업무와 상관없이 원래 화학사고 대비업무는 존재했어야 했다.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위험사업장을 찾아내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훈련을 통해 사고발생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고유 업무였다. 물론 지방정부가 이러한 업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적은 환경인력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화학물질에 대한 주민알권리를 기반으로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협의와 공동결정의 프로세스들이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지방정부의 화학사고 대비역량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사회가 참여민주주의의 경험이 서구에 비해 낮다고 평가되어 왔기 때문에 주민참여기제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지역사회에 협의의 테이블이 만들어지자 지역사회의 역량강화에 대한 합리적 모색이 이루어지는 것을 모두가 확인하기 시작했다.

환경부는 수원시 사례에 힘입어 2017년 올해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경상남도 양산시, 경기도 평택시, 그리고 인천광역시 서구에서 지역대비체계 구축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네 지역 모두 지방정부-기업-주민의 협의체가 준비되고 있는데 어느 곳에서도 마찰로 인하여 판이 깨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네 지역 모두 지자체 담당자 확보와 화학물질 관리업무의 분장을 의논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 무엇을 하여야 하나?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화학물질관리기본계획>을 보면 5년 동안 전국 지자체 50%에 화학사고지역대비체계를 구축하는 목표가 있다. 실로 담대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화학물질관리위원회에서 이러한 목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토론도 있었다. 하지만 수원과 여러 지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이러한 목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러한 바람직한 상황을 더 내실 있게 가속화할 수 있을까? 첫째는 화학사고 예방, 대비, 대응과 발암물질 저감을 위한 지방정부의 화학물질 관리 업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담당자들은 ‘화학물질관리법’에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가 보다 명시적으로 이를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시급히 의논되어야 한다.

둘째는 수원시를 비롯한 선도적 지방정부에서 나타난 모범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새로운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시민사회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기획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환경부의 업무추진목표와 평가기준에 지역사회 화학사고대비체계 구축을 넣는 것이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모두가 애써서 만든 변화가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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