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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추진 잠수함 확보는 이해관계 넘어선 국가 생존전략

2025.11.13 문근식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전)해군 핵추진잠수함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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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추진 잠수함 1척의 건조비용은 약 2~3조 원으로 추산되지만, 이는 첨단 AI, 소재·부품·냉각재, 방사선 안전기술 등 국내 산업 전반의 도약을 촉진한다. 이러한 추진체계 기술은 차세대 원자력 선박(쇄빙선, 극지탐사선, 해양자원개발선 등)에도 응용 가능해 미래 해양산업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다.
문근식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전)해군 핵추진잠수함 사업단장
문근식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전)해군 핵추진잠수함 사업단장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의 최대 외교 성과 중 하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한국이 원자력추진 잠수함(SSN)에 투입할 핵연료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협력을 넘어 한반도의 안보 구조와 자주국방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지금까지 한·미 원자력협정(123협정) 제13조는 군사적 목적의 핵물질 사용을 금지해 한국이 추진용 핵연료를 확보하는 데 커다란 제약이었다. 이번 합의로 그 '핵심 고리'가 풀리면서 한국은 실질적인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무엇보다 국민적 지지와 기대가 크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국민이 이번 결정을 환영했으며, 이는 해군력과 자주국방력 강화의 핵심 전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북한이 이미 '원자력추진 잠수함+SLBM 체계'를 공식화하고 수중 핵타격 능력을 과시하는 상황에서, 우리 역시 이에 상응하는 억제력을 갖추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북한의 SLBM을 발사 이전에 은밀히 탐지·추적·무력화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방패'이자,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자주적 억제전력으로 기능한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체 역량으로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를 준비해왔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국내 조선·원전 기업들은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원자력추진 잠수함' 기본설계를 추진해왔으며, 현재 약 30% 수준의 설계 진도가 확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핵연료 사용에 대한 국제법적 제약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필리 조선소에서 한국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현실적 타당성이 전무한 비논리적 발언이다.

필리 조선소는 상선 전문 조선소로, 잠수함 건조에 필수적인 건조공장, 도크, 원자로 및 핵연료 취급시설, 방사선 차폐 설비가 전혀 없다. 이런 여건 속에서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하라는 발언은 기술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의 조선소들은 이미 군용 잠수함과 대형 수상함을 연속적으로 건조해온 경험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기술·보안·비용·기간 모든 측면에서 국내 건조가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다.

지난 2월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해군 로스엔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 '알렉산드리아함'(SSN 757·6900톤급) 모습.(ⓒ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월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해군 로스엔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 '알렉산드리아함'(SSN 757·6900톤급) 모습.(ⓒ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적·정책적 뒷받침이다. 한·미 양국은 '한미 조선협의체(SCG : Shipbuilding Consultative Group)'를 조속히 설치해 건조 장소, 기술 교류, 핵연료의 합법적 사용 기준, 안전규범 등을 논의해야 한다. SCG는 한국과 미국 내 건조 방안을 각각 소요기간·비용·위험부담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비교·검토해 양국 정상에게 보고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미국 내 건조는 인력과 설비 부족으로 기간과 비용이 최소 두세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미국의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고농축우라늄(HEU)을, 한국형은 저농축우라늄(LEU)을 사용하므로 연료체계와 안전관리 규정이 상이하다. 이는 건조 설비와 핵연료 취급 체계의 호환이 어렵다는 의미이며, 미국 내 건조를 추진할 경우 양국 조선소에 중복 투자가 불가피하다. 또한 미국 내 잠수함 공장을 신설하면 한국의 숙련 인력이 대거 파견되어야 하지만, 이미 국내 인력도 부족해 한국 조선산업과 미국 협력체계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한미 조선업 협력은 시작부터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위험을 안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현실적 조건을 외면하고 미국 내 건조를 고집한다면, 한국이 한발 양보해 '한국형 잠수함은 한국에서 건조하고, 미국 내 잠수함 정비 및 신조함 지연 해소를 한국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예컨대 한화가 필리 조선소에 잠수함 정비·지원 설비를 구축해 미 해군 잠수함의 유지·보수와 일부 섹션 제작을 분담하는 것이다. 이는 MASGA(미국 조선산업 재건 구상)와 K-조선 르네상스 전략을 연계하는 상생 모델이자 양국 모두에게 실익이 되는 해법이다.

더 나아가 원자력추진 잠수함 사업은 단순한 방산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의 기술력과 행정력을 총결집해야 하는 '국가 대형사업'이다. 건조, 연료, 안전, 예산, 외교가 긴밀히 연동되는 복합 사업이므로, 국방부·외교부·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해군·방산기업 대표 등이 모두 참여하는 총리실 산하 국책사업단이 반드시 구성되어야 한다. 이 기구는 개발의 컨트롤타워로서 부처 간 이해조율, 예산 집행의 투명성, 산업·기술 연계 관리 등을 총괄해야 한다.

잠수함 건조 예산은 단순한 국방비가 아니라 산업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는 전략적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원자력추진 잠수함 1척의 건조비용은 약 2~3조 원으로 추산되지만, 이는 첨단 AI, 소재·부품·냉각재, 방사선 안전기술 등 국내 산업 전반의 도약을 촉진한다. 이러한 추진체계 기술은 차세대 원자력 선박(쇄빙선, 극지탐사선, 해양자원개발선 등)에도 응용 가능해 미래 해양산업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다.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와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원자력추진 잠수함 확보는 정권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국가 생존전략이다. 여야가 공을 다투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협력해야 한다. 2025년 경주의 외교 성과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낼지, 실질적인 자주국방력 향상으로 발전시킬지는 결국 우리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핵연료 확보의 길이 열린 지금, 한국은 자국의 기술과 조선 역량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형 자주국방의 완성이며, 한반도의 미래를 스스로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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