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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돌보는 청년, 이제 우리가 돌볼 때

2026.09.17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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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이다.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지원 확대를 계기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이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주거·생계·의료·교육·취업·심리지원을 촘촘히 연결해야 한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중장년 분들은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편찮으시면 집안의 풍경이 달라졌다. 가까운 친척들이 찾아와 음식을 챙기고, 병원에 함께 가고, 며칠씩 곁을 지키기도 했다. 물론 과거의 여성중심 가족돌봄을 낭만적으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친족과 이웃이라는 비공식적 안전망이 존재했기에 그 부담이 어린 자녀에게 곧바로 전달되는 경우는 지금보다 적었다.

그러나 가족은 작아지고 사회적 관계망은 느슨해졌다. 이모와 삼촌 그리고 이웃도 없다. 이런 사회에서 나를 돌보던 부모나 조부모가 어느 날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그 부담을 오롯이 떠안게 된다. 그들은 때로는 중·고등학생이고, 대학생이며, 이제 막 자신의 일을 시작해야 할 청년이다.

이들이 바로 '영케어러(young carer)', 즉 가족돌봄 아동·청년이다. 돌봄은 단순히 밥을 차려드리거나 병원에 모시고 가는 정도가 아니다. 약을 챙기고, 씻기고, 집안일을 하며, 어린 형제자매를 돌보고, 때로는 가계를 책임지고 아픈 가족의 정서까지 떠받친다. 필자가 참여한 한 조사 결과에서도 돌봄 부담은 경제적 어려움에 그치지 않았다. 학습과 진로, 친구관계, 건강과 삶의 만족도까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생계를 책임지는 청년 가운데 상당수는 일을 하면서도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고 그 소득의 상당 부분을 다시 가족의 돌봄에 사용하고 있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돌봄 아동·청년은 자신을 '돌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의 돌봄부담은 이후 교육과 고용, 나아가 소득에 긴 상처를 남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먼저 찾아내고,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미 존재하는 제도와 연결해 주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지원이 이달부터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은 매우 반가운 변화다. 

2024년 인천·울산·충북·전북 네 곳에서 시작했던 청년미래센터는 이제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된다. 중앙청년미래센터와 광역 청년미래센터, 그리고 지역 현장에서 청년을 직접 만나는 기초단위 전담체계를 연결하려는 시도 역시 중요하다. 시범사업에서 전국적 제도로 넘어간다는 것은 이제 영케어러를 포함한 위기 아동과 청년 문제가 몇몇 지자체나 민간기관의 선의에 의존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적 위험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7일 서울 종로구 CU 마로니에 공원점에 고립 은둔 청년 도움 정보를 담은 '외로움 없는 서울' 포토카드가 비치돼 있다. 2026.4.7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7일 서울 종로구 CU 마로니에 공원점에 고립 은둔 청년 도움 정보를 담은 '외로움 없는 서울' 포토카드가 비치돼 있다. 2026.4.7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다만 조직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자칫 새로운 보고체계와 실적관리만 늘어나는 '행정을 위한 행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앙은 기준과 정책을 만들고, 광역은 지역 간 자원을 조정하고 현장을 지원하며, 기초단위는 당사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단위의 핵심 역할은 주거·생계·의료·돌봄·교육·취업·심리지원 등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제도 가운데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끊어지지 않도록 연결하는 코디네이터가 되는 것이다.

정부 혼자서도 할 수 없다. 학교와 병원, 복지관, 아동·청소년기관, 종교기관과 NGO 등은 행정기관보다 먼저 숨어 있는 돌봄청년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 비영리기관 사이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발굴과 지원에 중요하다. 민간을 사업의 단순한 '수행기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해결하는 공동문제해결자로 인정해야 한다.

마침 올해 10월 말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도 시작된다. 비영리단체, 공공기관, 학계, 그리고 당사자 단체 등 18개 기관이 참여해 영케어러를 조기에 발견하고 사회적 지지를 넓히기 위한 사회적 캠페인에 나섰다. 영케어러 위크가 일회성 행사를 넘어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돌봄 아동·청년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가족을 돌본다는 이유로 자신의 학업과 꿈, 관계와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청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돌보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는 사회도 함께 돌보겠다"는 약속이다. 청년미래센터의 확장과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가 그 약속을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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