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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26)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2023.04.05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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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1995년, 작사·작곡 김목경, 노래 김광석)

이 노래를 조용히 듣고 있자니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년)의 첫 장면이 문득 오버랩된다. 천지간이 백설로 뒤덮인 강원도 산골. 76년을 함께 살다 먼저 떠난 할아버지가 그리워 무덤가에 주저앉은 할머니의 작은 어깨가 파도처럼 흔들렸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처음 실린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2’ 앨범 재킷.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처음 실린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2’ 앨범 재킷.

백년해로한 부부의 작별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해로는 ‘함께 해(偕)’에 ‘늙을 로(老)’가 합친 말이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은 평생을 같이 늙고 한 구멍에 묻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날한시에 죽을 수 없으므로 산 자여, 어쩌란 말이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어깨를 빌리고 등을 긁어주지 못하고 한쪽을 먼저 보낸다는 건 슬픈 일이다. 삶은 공무도하(公無渡河,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를 아무리 외쳐도, 결국은 공경도하(公竟渡河, 그대 결국 물을 건너셨도다)로 끝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가 김광석의 것으로 안다. 그만큼 김광석의 꾸밈없는 목소리로 들어야 이 노래답다. 김광석은 음악 선배인 김목경의 원곡을 자신이 녹음한 이유에 대해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어요. 그리고 울음이 터졌어요. 다 큰 놈이 사람들 많은 데서 우니까 창피했죠. 억지로 억지로 참던 생각이 납니다.”

숨어있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그가 1995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다시부르기2’에 수록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원작자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걸출한 블루스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김목경(66)이다. 그가 80년대 말 영국에 유학 갔을 때 작사·작곡해서 1990년 데뷔 앨범 ‘Old Fashioned Man’에 수록했다. 그가 거주하던 옆집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부부가 뜰을 거니는 다정한 모습을 2층 자기 방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버스에서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 울었던 김광석은 지방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목경을 처음 만난 이후 친해져 자주 술을 마시며 어울렸다. 그러다 리메이크 앨범을 만들 때 “형, 나 그 노래 빌려줘요”라고 사정했다. 원작료는 빌려준 돈을 받지 않는 걸로 퉁쳤다고 한다.

“광석이가 녹음할 때 오라고 해서 갔어요. 스튜디오 부스 밖 책상 위에 과자랑 술이 있었어요. 광석이가 자꾸 목이 메는지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와서 술 한 잔 들이키고 다시 들어가서 녹음하더라고요. ‘막내아들 대학시험’ 부분만 가면 광석이 눈이 젖어오더라고요. 밖에 나가서 족발에 소주 한 잔 하고 녹음을 마쳤지요.”

원곡 가수 김목경은 블루스의 대가였다. 2013년 춘천공연에서.(유튜브 캡처)
원곡 가수 김목경은 블루스의 대가였다. 2013년 춘천공연에서.(유튜브 캡처)

막내아들인 김광석은 부모에 대한 감정이 유별났다고 한다. 김목경도 대단한 가수지만 김광석이 리메이크하지 않았다면 이 노래는 묻혔을지도 모른다. 30년이 다 된 지금도 중년의 남성들한테 큰 사랑을 받는 노래다. 셀 수 없이 많은 후배 가수들이 불렀다. ‘미스터 트롯’ 우승자 임영웅이 경연에서 부른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가 5300만 회가 넘는다.

노랫말은 제목처럼 옆에서 속삭이는 ‘이야기’ 같아서 심금을 울린다. 가사에서 “여보”라고 부르는 노래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함께 살아오면서 인생의 고비고비 순간순간의 희로애락을 필름을 되돌리는 듯 반추하는 늙은 남편의 독백. 함께 힘들게 어려운 시절을 헤쳐온 이 시대 노부부의 공통된 정서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슬픈 반전이 있었다. 촉촉했던 눈시울에 비로소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아내의 임종이었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남편은 아내가 지독히 원망스럽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사랑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게 죽음이다.

늙은 남편은 터지는 울음을 간신히 누르며 담담히 작별을 고한다.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대중가요에서 오장육부까지 한순간에 감전시키는 이토록 강렬한 마지막 한 줄을 본 적이 없다. “여보 잘 가요”도 아니다. “잘 가시게”다.

노랫말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우리 부모들은 더 그랬고 지금도 그렇기도 하다. 아내는 출근하는 남편의 넥타이를 매주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퇴근을 기다린다. 막내아들 대학시험 때 노심초사 밤을 지새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딸아이 결혼식 날 남몰래 눈물 훔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부부의 애틋한 정과 함께 노랫말은 인생의 회한으로 가득 차 있다.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 어느덧 황혼에 기운다. 곱고 희던 손은 주름이 자글거리고 머리엔 백설이 내려앉는다. 이제 먼 길 떠나갈 때라고 한다. 서로 맞잡은 손을 놓을 때다. 남은 건 추억뿐이다. 

이 노래 제목을 두고 60대를 ‘노부부’라고 부르는 게 온당하냐는 말들이 있었는데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66.1세였다고 한다.

CD로 나온 ‘김광석 다시부르기2’.
CD로 나온 ‘김광석 다시부르기2’.

우리 가요에 유명한 사모곡은 많지만,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유명한 곡은 손을 꼽을 정도다. 대표적인 노래라면 단연코 1976년 하수영(작고)이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다. 부부 가요의 원조이자 지금도 사랑받는 노래다. 1991년 중절모의 저음 가수 김정수가 부른 ‘당신’도 평생 아내에게 빚진 남자들의 심금을 건드린다. 

이 노랫말들은 비슷한 정서다. 지금의 성평등 관점에서 보면 올드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할지도 모르겠다. 가사 속에 그려진 아내 모습은 순종, 헌신, 희생, 인내, 순정 같은 것들이다. ‘못난’ 남편은 나이 들어 아내의 주름과 거칠어진 손마디, 젖은 손, 야윈 몸과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맹세한다.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대를 사랑하리라고,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미운 투정 고운 투정 말없이 웃어넘기고/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온 꿈같은 세월/.../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작사 조운파)

‘고왔던 여자의 순정을 이 못난 내게 바쳐두고/한마디 원망도 않은 채 긴 세월을 보냈지/.../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대를 사랑하리’ (‘당신’, 작사 김정수)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가슴으로만 삭여야했던 아내이자 엄마이자 며느리. 그들의 시린 마음을 뒤늦게나마 남편이 어루만져주는 노래다. 다 늙어서야 비로소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는 후회의 노래다. 당시 카바레에서 이 노래는 ‘금지곡’이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나오면 남편이든 아내든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가방을 챙겼다는 후문이 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작사·작곡가 김목경은 국내 블루스의 위상을 드높인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정받으며 한국 블루스의 대가라는 평을 받았다. 세계 3대 음악 축제로 꼽히는 미국 멤피스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Beale Street Music Festiva)에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 초대돼 공연을 갖기도 했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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