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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사자성어를 살펴보니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2015.01.09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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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은 2004년부터 연말이 되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해왔다. 2년 뒤인 2006년부터는 연초에 ‘희망의 사자성어’도 발표하고 있다. 연초와 연말의 사자성어를 비교해서 읽어 보면 참 재미있다. 단 한 해도 신년의 기대와 희망을 피력하지 않은 적이 없고, 단 한 해도 실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

특히 2007년의 경우는 두 사자성어가 서로 잘 대응하고 있다. 연초에 반구저기(反求諸己, 잘못을 자기에서 찾는다)라고 했는데, 연말에는 자기기인(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도 속인다)이라고 했으니 한 해에 대한 정리와 평가에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2012년의 경우도 연초에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내기를 기대했다가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탁하다고 한탄하는 것으로 끝났다. 

2013년 초에는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것을 펼쳐낸다)을 선정했으나 연말에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로 끝났다. 2014년에도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는 의미의 전미개오(轉迷開悟)를 기대했지만 연말에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뽑혔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 선정은 한문의 고향 중국에서도 매년 주시하며 소개하는 행사로 정착됐다. 2015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정본청원(正本淸源), 한서(漢書) 형법지에서 유래한 말로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다시 그런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지금까지 연초가 되면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과 장관 지자체장 등 고위 공직자는 물론 각 기업의 CEO들이 경쟁적으로 사자성어를 발표해왔다. 그런데 매년 비슷한 말들이 돌고 돈다. 올해에도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힐 정도로 전심전력을 다 하자는 중석몰촉(中石沒鏃),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불퇴전의 각오를 다짐하는 파부침주(破釜沈舟)가 등장했다. 느슨해진 거문고의 줄을 바꿔 맨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유수불부(流水不腐), 우직한 노력을 강조한 우공이산(愚公移山), 날마다 새로워지자는 시내일신(時乃日新)도 눈에 띄었다.

초윤장산(礎潤張傘), 주춧돌이 촉촉이 젖어 있으면 큰 비가 올 것에 대비해 우산을 갖춰야 한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잘 보지 못한 문자인데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장산(張傘)은 우산을 편다는 말이지만 평상시 위험에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처럼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비가 오기 전에 창문을 고친다는 미우주무(未雨綢繆)도 비슷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TV드라마 ‘미생’의 인기를 반영하듯 올해에는 완생동행(完生同行)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원래 바둑에서 곤마(困馬)는 동행하라고 했으니 완생을 지향하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뜻에서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한자권인데도 중국 일본 대만은 우리와 달리 한 글자로 ‘올해의 한자’를 선정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촌철살인의 의미가 더 커지고 선정하기가 한결 쉬워질까? 중국의 경우 ‘2014년의 한자’로 법(法)이 선정됐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주도로 대대적 사회정화운동을 벌이면서 ‘호랑이(고위관리)’부터 ‘파리(하급관리)’까지 부정부패 사범을 엄벌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신년사에서도 의법치국(依法治國)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올해의 한자’로 세(稅)가 선정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한 데 따른 것이다. 대만에서는 ‘흑(黑)’자가 뽑혔는데, 가죽공장과 도살장에서 흘러나온 기름 등을 하수구에서 건져 올려 식용유 수백 톤을 만들어 판 일당이 검거되면서 국민이 충격에 빠진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

사자성어의 맛과 멋은 함축과 비유에서 우러난다. 네 글자 속에 시대정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러니 사자성어를 쓰려면 시대와 정서에 맞는 글자를 골라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한자어를 좋아하느냐고 반감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양문화권에서의 한자의 역할이나 우리 어문생활 전통을 생각할 때 배척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자성어를 쓰려면 앞뒤가 맞아야 한다. 평소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던 말을 갑자기 새해가 되면 어디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그럴듯하게 내세우는 건 우스운 일이다. 자기가 선정했다는 사자성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버벅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쓰려면 평소 공부를 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의 고사성어만 챙길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일에서도 필요한 언어를 발굴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매년 신년 사자성어를 발표하곤 했다. 때로는 너무 어려운 말을 골라 생경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이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이 어색한 ‘사자성어 정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

임철순

◆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논설고문으로 ‘임철순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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