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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만큼 아는 만큼, 아! 아름다워~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문화예술에서 아름다움

2017.05.31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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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과 같은…’, ‘인형의…’, ‘완벽한…’. 요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을 들여다 보면, 이런 종류의 제목 혹은 문구들을 쉬 접할 수 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아름다움 혹은 미모 등을 강조하는 표현들이다.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기대어 관심을 끌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실상 아름다움이란 요소를 배제한 문화는 상상하기 힘들다. 세태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문화든 혹은 미술이나 음악, 드라마, 영화나 각종 공연 등을 포괄하는 좁은 의미에서 문화예술이든 마찬가지이다. 미는 어쩌면 문화의 단순한 요소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의 고갱이일 수도 있다.

이란의 한 회교 사원 장식. 대칭과 안정된 균형 등이 아름답게 인식되는 요소이다.(사진=필립 마이월트)
이란의 한 회교 사원 장식. 대칭과 안정된 균형 등이 아름답게 인식되는 요소이다.(사진=필립 마이월트)

아름다움이나 멋의 추구에 남녀노소 혹은 동서고금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미를 좇는 건 그래서 자손번식 등과 맞먹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의 영역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 등은 모든 인류의 기초를 형성하는 감각 혹은 인지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미를 추구하는 인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처럼 구체성을 드러내 보이기 힘든 관념 혹은 개념도 드물다. 저마다 잣대가 또는 보는 눈이 다른 탓이다. 예컨대 똑같은 선율에 대해 느끼는 아름다움의 차원 혹은 정도가 각자 다를 수 있고, 멋진 풍광이나 경치를 대할 때 드는 아름다움의 느낌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도대체가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인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결코 아니다. 아름다움의 대상은 사람, 사물, 무형의 그 어떤 것들, 자연, 행위, 동작 등에만 한정 되지 않는다.  그만큼 대상이 다양한 것이다.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다 실감나게 이해하기 위해, 사람, 그 가운데서도 행위나 마음씨 등이 아니라 외모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보자. 예를 들어, 아름다운 얼굴이란 무엇일까? 용모를 두고 미녀니 미남이니 하는 수식어를 쓰는 건, 용모에 미추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용모가 어떠해야 ‘미’라는 글자를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의 아름다움은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이뤄진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평균치에 가까울수록 일반적으로 “잘생겼다” 혹은 “아름답다”고 인식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코의 길이, 미간의 폭, 코와 입 사이의 거리, 눈과 귀 사이의 간격, 이마의 크기와 모양새 등등, 이목구비의 사이즈와 간격이 평균치에 가까울수록 아름다운 얼굴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 과학의 힘을 빌어 연구가 이뤄지기 전에도 부지불식 간에 평균치가 가장 아름답게 인식된다는 힌트는 있었다.

한 예로 진화학자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갤턴은 1883년 채식주의자와 범죄자의 얼굴을 연구하면서, 평균치 얼굴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갤턴은 당초 채식주의자와 범죄자들의 얼굴 모습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헌데 이들의 얼굴을 뒤섞은 합성 이미지가 그 어느 개인보다도 매력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우연히 밝혀낸 것이었다. 

문화권역마다 혹은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느 정도 다르고 또 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모의 미적 기준은 당대 사람들의 평균치에서 대체로 벗어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추론한다.

왜 평균치가 가장 아름답게 인식될까? 인문학적 혹은 사회학적으로 명쾌하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평균치=아름다움의 기준치’라는 일종의 수학적 등식에 대해 과학은 그 나름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평균적인 외모는 유전적 결함 등이 가장 적다는 점을 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론을 다소 비약하자면, 지나치게 코나 입 귀가 크거나 작다면 유전적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풀이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인근의 풍광. 아름다움의 체험은 흔히 사고(생각)를 요하며, 이 때문에 같은 풍광을 보더라도 느끼는 아름다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인근의 풍광. 아름다움의 체험은 흔히 사고(생각)를 요하며, 이 때문에 같은 풍광을 보더라도 느끼는 아름다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외모가 빼어난 여성 혹은 남성이 더 많은 이성들의 관심을 유발한다는 건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면, 잘생긴 사람들이 보다 광범위하게 호감을 사는 건 ‘아름다움=유전적 우월’이라는 식으로 과학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 같은 사실은 부분적으로 미국 연구팀에 의해 입증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여성들의 허리 가슴 엉덩이 사이즈를 측정, 이를 여성 호르몬 분비량과 연계해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여성들의 허리 둘레는 엉덩이 사이즈의 평균 0.72 수준인데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가 클수록 여성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허리둘레 기준으로 가슴둘레 비율이 클수록 역시 가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요컨대 이른바 개미허리에,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할수록 아름답게 인식되는 데는 이런 생물학학적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이처럼 아름다움의 ‘공식화’에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미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을 최소한 가까운 장래에는 과학적 혹은 기술적 접근을 통해 예측할 수는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왜냐면 아름다움은 이를 체험하거나 관찰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의존하는 탓이다.

최근 미국 뉴욕대 연구팀은 ‘아름다움은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명제를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증명해 보였다. 이 대학 연구진은 피험자들을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피험자들이 아름답다고 꼽은 이미지를 실제 어떻게 평가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광도 주의가 산만해져 충분히 사고(생각)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다지 아름답게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개개인의 사고(방식)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녹음으로 우거진 여름철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그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대의 이번 실험은 칸트의 또 다른 진단, 즉 ‘관능적인 즐거움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주장은 배척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관능적으로 강한 즐거움 또한 사람들은 아름다움으로 인식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쾌락이나 희열도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을 핵심요소로 하는 문화 혹은 문화활동은 공급과 수요 관점에서 보자면, 제공하는 측과 수용하는 측으로 대별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의 제공자들은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평균치적 접근을 할 수도 있다. 외양의 아름다움이 평균치에서 가장 돋보이듯, 가장 많은 수용자들에게 아름답게 보여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평균값에 근사할 필요가 있다.

순천만 생태공원 호수공원
순천만 정원-호수정원. (제공=전라남도청)

이를 예컨대 영화에 대입할 경우, 시나리오부터 연출 감독에 이르기까지 균형과 조화가 긴요할 것이다. 사람 이목구비의 평균치적인 조화가 가장 아름답게 인식되듯 예술작품은 조화와 균형, 달리 말하면 전반적인 짜임새가 아름다움의 선결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의 영역을 넘어서 세상사 아름다움의 상당부분은 기실 조화와 짜임새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조화로운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균형 잡혔으면서도 나아가 중용지덕까지 갖춘 정치나 정책 역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물학적인 미가 생존과 자손번식에 유리하듯, 문화적 관점에서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의 함양은 한 사회의 건강과 지속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문화의 수용자 측면에서는 조화롭고 균형 잡힌 감각, 혹은 평균적인 감수성과 공감능력, 판단력 등의 배양이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한층 고양시킬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아름다움 또한 느끼기 나름’이 아닐까.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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