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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의 속살, 울릉의 맛과 멋

[김준의 섬섬옥수] 울릉군 울릉도

2020.06.29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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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울릉도 쯤 밀려가고 묵호등대의 불빛이 힘을 잃을 때 쯤 짐을 챙겨 언덕배기를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택시를 타서 몰랐는데 짐을 들고 한계단 두계단 내려오는데 녹록치 않다. 명태와 오징어를 말리기 위해 질펀한 길을 오르내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오죽했으면 남편 없이도 마누라 없이도 살수 있지만 장화 없이는 못산다고 했을까.

묵호 어시장에 당일바리 어장 배들이 펄떡이는 고등어를 실고 들어왔다. 며칠 만에 뭍에 도착한 자망 배에는 얼음에 묻힌 꽁치가 가득하다. 노인은 바다가 옛날 같지 않다지만 비린내는 여전하다. 작은 배에서는 어제 쳐놓은 그물에서 따온 우러기(우럭) 열기 광어 볼래기(볼락)가 내려진다. 이렇게 바닷물고기의 육지여행이 시작될 때 울릉도와 독도를 찾아 동해로 나갔다.

꽁치물회, 지금은 울릉손꽁치를 만날 수 없지만 ‘꽁치물회’는 여전히 맛볼 수 있다.
꽁치물회, 지금은 울릉손꽁치를 만날 수 없지만 ‘꽁치물회’는 여전히 맛볼 수 있다.

섬과 바다가 내준 선물, 울릉의 맛

섬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받고 싶은 선물이 ‘섬 밥상’이다. 그것도 주민이 직접 차려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손이 많이 가고, 식재료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 울릉도에는 울릉산 식재료가 아직 남아 있다.

홍합, 따개비(삿갓조개), 꽁치, 오징어, 미역 등 바다밭에서 나는 것과 명이, 부지갱이, 고비, 전호, 삼나물, 감자, 더덕, 방풍, 두메부추, 물엉겅퀴 등 섬에서 나는 것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약소와 칡소까지 더하면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호박막걸리, 씨막걸리, 마가목주, 더덕주, 다래주와 다양한 차까지 완벽하다.

성인봉 자락에서 나는 두메부추, 물엉컹퀴, 전호, 부지갱이 등은 주민들의 집밥은 물론 여행객을 위한 식당에서도 볼 수 있는 산나물이다.
성인봉 자락에서 나는 두메부추, 물엉컹퀴, 전호, 부지갱이 등은 주민들의 집밥은 물론 여행객을 위한 식당에서도 볼 수 있는 산나물이다.

국제슬로푸드협회 생물다양성재단은 울릉도에서 나는 섬말라리, 칡소, 옥수수엿청주, 홍감자, 손꽁치, 긴잎돌김, 물엉컹퀴 등을 ‘맛의 방주(Ark of Taste)’로 지정했다. 맛의 방주는 글로벌음식으로 획일화 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토종종자와 지역음식을 지키고 나아가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활동이다. 맛의 방주에 지정된 울릉의 식재료는 꼭 지켜 미래세대에게도 물려줘야 할 음식문화유산이다. 다행스럽게 울릉군은 슬로푸드운동을 펼치는 민간단체와 함께 맛의 방주의 발굴 및 보존에 힘쓰고 있다.

뭍에서 식재료를 가져오기 쉽지 않던 시절에 손맛과 입맛으로 전해진 ‘울릉의 맛’이 많다. 여행객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홍합이나 따개비에 부지깽이를 넣은 밥, 다양한 산채나물, 오징어내장탕, 명이장아찌도 뭍에 보는 것과 다르다. 울릉도가 가진 제일 큰 매력이다. 울릉도의 가치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섬과 바다의 속살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쉽게 망가질 수도 있다.

울릉군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를 추진중인 ‘떼배 돌미역채취 어업’. 이제는 이를 재현할 주민도 한두 명 밖에 없는 형편이다.
울릉군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를 추진중인 ‘떼배 돌미역채취 어업’. 이제는 이를 재현할 주민도 한두 명 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손꽁치잡이’이는 하루 빨리 전승체계라도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작은 전통 떼배를 타고 타가 모자반 등 해조류가 많은 곳으로 산란을 위해 모여드는 꽁치를 손으로 잡았다. 이렇게 잡은 꽁치로 물회만 아니라 젓갈을 담고 김치를 담을 때 사용했다. 다행히 ‘떼배 돌미역채취 어업’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추진된다는 소식이다.

사람을 품은 울릉의 섬과 바다

제법 굵은 빗줄기의 환대를 받으며 운 좋게 독도까지 다녀왔다. 이런 행운이라면 내일 성인봉으로 가는 길에 비도 멈추고 햇살도 비출 것 같다. 다음날 새벽, 비는 그쳤지만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은 안개비가 내렸다. 행여 가는 길 잃을까 내내 선갈퀴 주름제비란 섬남성 큰두루미꽃 독도제비꽃 윤판나물아재비 등 울릉도를 지키는 꽃의 정령들이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정상을 2㎞ 정도 남겨놓았을 때 선물처럼 햇살이 섬단풍나무 사이로 내렸다.

성인봉 가는 길. 울릉의 여름은 초록이 가득하다.
성인봉 가는 길. 울릉의 여름은 초록이 가득하다.

울릉도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을 품었던 곳은 성인봉이었다. 파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나리분지처럼 성인봉 자락에 머물렀다. 울릉도는 화산섬 치고 물이 많고 좋았다. 바닷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미역 정도였고, 대부분 성인봉에서 먹을 것을 구했다.

지금도 도동이나 사동 등 여행객이 많이 머무는 곳을 제외하면 울릉사람들은 성인봉에서 명이나물, 산마늘, 고비 등을 얻고 고로쇠를 채취해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첨단기술이 의미가 없다. 처음 섬에 들어온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여전이 두발로 걷고 두 손으로 뜯을 뿐이다. 자연산 명이나물은 높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탓에 성인봉 깊은 산골에서 뜯다가 목숨을 잃은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산나물 채취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와달리에 있는 ‘염소폭포’. 해식애, 해식동 등이 발달한 주변 해안은 모두 국가지질공원이며 바다는 해양보호구역이다.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와달리에 있는 ‘염소폭포’. 해식애, 해식동 등이 발달한 주변 해안은 모두 국가지질공원이며 바다는 해양보호구역이다.

성인봉과 함께 울릉바다는 지금은 물론 미래에도 그 가치가 지속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이다. 해안절벽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는 ‘염소폭포’, 강치가 살았던 해식동, 삼선암과 관음암과 죽도 등 모두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주변 바다는 동해안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이다. 보전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남은 것인 섬주민들과 여행객의 몫이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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