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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살고 오래 울다간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강릉 허난설헌 생가

이광이 작가 2021.03.09
울창한 소나무 군락 속에 조성된 공원에는 허난설헌의 동상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울창한 소나무 군락 속에 조성된 공원에는 허난설헌의 동상과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맑고 넓은 가을호수에 푸른빛이 구슬처럼 빛나는데/ 연꽃 덮인 깊숙한 곳에 목란배를 매어두었네/ 임을 만나 물 건너로 연꽃을 따서 던지고는/ 행여 누가 보았을까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난설헌이 처녀 때 경포호가 내려다보이는 강릉에서 지은 시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초가을의 호수, 연꽃을 하나 따서 물 건너로 던지면, 그곳에 몰래 매어 둔 배가 있을 것이니, 내 님과 함께 노 저으며 호수 한 가운데로 나아가겠네. 행여 누가 보지 않았을까, 부끄러운 이 마음. 사랑을 꿈꿀 때의 혹은 사랑이 막 시작될 무렵의 설레고 순정한 마음을 시인이 옷깃을 열어 내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옛 길 옆에 초가집을 짓고/ 날마다 큰 강물을 바라다보네/ 거울에 새긴 난새 늙어가고/ 꽃동산의 나비도 가을 신세/ 차가운 모래 벌에 기러기 내려앉고/ 저녁 비에 홀로 떠가는 조각배…」

난설헌이 혼인 후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광주에 살면서 지은 시다. ‘거울에 새긴 난새(鸞鳥)’는 부부의 애정을 뜻하는 상징이다. 사랑은 늙어가고, 봄에 춤추던 나비도 가을이 되어 기력이 없다. 기러기는 날지 못하고 차가운 모래밭에 내려앉는다. 연꽃 덮인 깊숙한 곳에 매어 두었던 목란배는 ‘저녁 비에 홀로 떠가는 조각배’가 되었다. 혼인 전후가 이렇게 다르다. 아름답던 시절, 오래 꿈꾸던 사랑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외롭고 고독한 심사에 시인은 마음을 닫고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내부. 천재 여류시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내부. 천재 여류시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허초희(楚姬 1563~1589)는 호가 난설헌(蘭雪軒)으로 초당두부로 유명한 초당 허엽의 딸이다. 1579년 경상감사를 지낸 허엽은 첫 부인이 요절하자 둘째부인 강릉 김씨를 맞아 아들 봉, 딸 초희, 아들 균을 얻었다. 막내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다.

화담 서경덕의 제자인 초당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가풍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아들이 서자 출신의 문인 손곡 이달과 사귀는 것을 허락했으며 동생들이 그를 스승으로 공부하도록 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말처럼, 삼당시인으로 빼어난 시문을 남긴 손곡 밑에서 두 남매는 훗날 우리나라의 빼어난 문인으로 성장하는 토양을 닦았다. 이복오빠 허성은 1583년, 친오빠 허봉은 1572년, 동생 허균은 1594년 과거에 급제했다. 초희는 8세 때 이미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드러냈으며 문장에서 결코 형제들에 뒤지지 않았다. 자상한 부모와 우애 있는 형제들, 경제적인 여유, 사회적 명망 등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허난설헌은 15세에 문신 김성립과 혼인한다. 5대째 과거에 급제한 명문가로 시아버지가 친정 오빠 허봉의 친구였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삶은 불행했다. 남편과의 불화, 시어머니의 간섭, 친정 오빠의 유배와 사망 등 시련이 닥쳐온다.

허난설헌, 허균 생가. 남매는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글을 공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위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허난설헌, 허균 생가. 남매는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글을 공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위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제비는 처마 비스듬히 짝지어 날고/ 지는 꽃잎은 어지러이 비단 옷 위를 스치네/ 동방에서 보는 것 마다 마음 아프기만 한데/ 봄풀 푸르러도 강남 가신임은 여태 안 오시네」 제비는 짝지어 나는데 과거 공부한다고 떠난 남편은 봄풀이 푸르러도 오지를 않으시네, 오지 않는 것이 공부 때문인 줄 알았더니 다른 여자들과 노닌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아름다운 비단 한 필을 가지고 있어/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 몇 년을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가/ 오늘 아침 가져다가 임에게 드립니다/ 임의 옷 만드는 건 아깝지 않지만/ 다른 여인의 치마는 짓게 하지 마세요」 다른 여인의 치마는 짓게 하지 말라는 말 속에 그간의 형편이 다 담겨있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깊은 안방살이에 생각이 끊어질 듯/ 그 사람 그리움에 심장이 찢어지네/ 밤새껏 그리움에 잠 못 이룰제/ 새벽닭 울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네…」

행여 누가 볼까 부끄러워하던 처녀의 사랑은 그리움에 잠 못 이루고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사랑은 고통이 되어갔다. 남편과의 불화에 이어 시어머니 은진 송씨는 까다롭고 보수적인 성격이어서 글 쓰는 며느리를 곱게 볼 리가 없었으니 그의 삶이 얼마나 메마르고 황량했을지 짐작이 간다. 설상가상으로 여인으로서 고통 위에 어머니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참혹한 시련이 밀려온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올해에는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두 무덤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 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 무덤 위에 술잔을 붓노라/…하염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흘리면서 곡소리를 삼킨다」           
돌림병이었다고 한다. 쓸쓸한 바람이 부는 사시나무 숲에 자식 둘을 묻고, 난설헌은 셋째를 유산했다. 그녀에게 삶을 더 버텨낼 기운은 남아 있지 않았다. 1589년 육신을 내려놓으니, 두 아이 곁에 묻혔다. 향년 27세. 남편은 난설헌 사후 문과 말석인 병과로 급제한 뒤 재혼하여 둘째부인과 함께 묻혔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내부.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내부.

그녀는 죽기 전에 써 놓았던 시를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 전하는 것은 동생 허균 덕분이다. 누이에 대해 자부심이 컸던 허균은 자기가 암송하던 시와 고향집에 남아있던 시편들을 갖고 있다가 1598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에서 온 오명제에게 전해준다. 이 시가 명나라에서 편찬되어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의 책에 실렸다. 그 후 1606년 허균이 명나라 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재차 누이의 시를 전해주어 <난설헌집>이 명나라에서 간행되면서 격찬을 받았다. 이 시편들은 1711년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숱한 여인들의 눈물을 자아냈으며, 훗날 정조도 이를 읽고 감탄했다고 한다.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고 작품으로 「유선시(遊仙詩)」, 「곡자(哭子)」 등 142수가 전한다.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시인 허영숙은 시 「물가에 목란배를 매어두고」에서 「…연꽃 무성한 곳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한사람 기다리던 초희/ 아득한 행간을 당기고 밀며/ 산맥처럼 밤을 넘어간다… 잠깐 살고 오래 울다간 사람의 생가에서 바라본 경포호/ 저 물길에 마음을 놓아/ 일필로 저어가면/ 먼 바깥을 보고자 한 깊은 심사(心思)에 닿을까」라고 쓰고 있다. ‘잠깐 살고 오래 울다간 사람’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머문다. 허난설헌이 나고 자란 강릉시 초당동 생가 앞길이 ‘난설헌로’로 이름 지어졌고, 울창한 소나무 군락 옆에 공원과 기념관이 세워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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