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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투자의 성패, 실행에 달렸다

한국의 대미투자는 지난해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서 시작됐다. 자동차 같은 주력 상품의 미국 시장 접근을 지키고 수출과 고용 충격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일본과 유럽이 먼저 협상의 큰 틀에 합의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만 높은 관세를 떠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를 약속했느냐가 아니라, 투자금을 어떻게 돌려받고 우리 산업의 실익으로 연결하느냐다.
10월 1일 한미 양국은 투자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텍사스 가스복합발전소가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첫 사업으로 확정됐다.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짓는 협력의 틀에도 합의했다. 이는 한국형 원전이 미국에 처음 진출하는 계기이자 제3국 수주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다만 개별 원전사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알래스카 LNG는 검토를 시작하는 단계다. 정부는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사업에만 투자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이번 합의에서 눈여겨볼 점은 우산형 투자 구조다. 일본은 사업별로 수익을 정산하지만 한국은 여러 사업의 자금 조달과 수익 배분을 통합 관리한다. 여러 가게에서 번 돈을 모아 전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과 같다. 한국이 전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때까지는 모든 사업의 수익을 한미가 5대5로 나누고, 이후 미국 몫이 늘어난다. 사업별로 정산하면 원리금을 먼저 회수한 사업부터 투자국 몫이 줄 수 있다. 반면 우산형 구조에서는 다른 사업의 미회수분이 남아 있는 동안 수익이 좋은 사업에서도 한국이 절반의 몫을 유지한다. 잘되는 사업의 성과를 전체 투자금 회수에 활용하는 셈이다. 다만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일 뿐 손실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회수 방식만큼 투자 부담을 관리할 조건도 중요하다. 정부는 연간 투자금에 200억 달러의 상한을 두어 외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위험을 줄였다. 이런 상한이 없는 일본에서는 달러 조달 부담이 문제로 떠올랐다. 사업성이 나빠지면 정부 간 협의로 사업계획과 수익 배분비율을 조정할 수 있고, 원전 건설비가 정해진 한도를 넘어도 전략투자기금은 추가로 부담하지 않도록 했다. 투자 수익에 세금이 붙어도 한국이 받기로 한 몫은 줄지 않도록 했다. 투자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중요한 사업 변경에 동의할 권리도 확보했다. 이런 조건을 운영계약에 담기로 한 것은 정부의 협상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이제는 확보한 조건이 계약에 그대로 담기는지 확인하고 사업에서 활용해야 한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누가 얼마에 얼마나 오래 구매할지 살피고, 수요나 가격이 예상보다 낮아져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공사비가 늘거나 공사가 늦어질 때 누가 얼마나 책임질지도 정해 두어야 한다. 알래스카 LNG는 수익성과 한국 기업의 참여 조건을 충분히 확인한 뒤 판단해야 한다. 사업 진행을 살피며 여건이 달라지면 조건을 보완해야 성과가 회수로 이어진다.
국내 산업의 실익은 참여 기회를 실제 수주로 바꿀 때 나온다. 텍사스 발전소의 기자재 공급과 설계·시공, 운영·정비는 물론 한국형 원전 건설에도 우리 기업이 참여할 길이 열렸다. 미국도 터빈 같은 한국산 기자재를 다른 사업에 공급할 기회를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사업 단계마다 우리 기업의 수주 여건을 챙겨야 한다. 기업도 미국 에너지 시장에 장기적 사업 기반을 쌓고, 대기업의 수주가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참여와 국내 생산·수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미국 역시 필수 기자재의 관세 부담을 줄이고 기술인력이 제때 투입되도록 도와야 에너지 시설을 적기에 확보할 수 있다.
대미투자의 성과는 합의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사업성을 꼼꼼히 따져 위험을 줄이고, 우리 기업이 실제로 일할 기회를 계약에 담아낸다면, 관세 압박 속에서 시작된 투자도 우리 산업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
◆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연세대 경제학과와 KDI대학원(MBA)을 거쳐 건국대에서 무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무역협회 입사 후 30년 이상 수출입 동향분석과 글로벌 통상전략 수립을 주도해온 무역 전문가다. 현재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으로서 수출경쟁력 강화, 산업별 공급망 안보, 신통상질서 대응 등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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