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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을 통해 내면세계로 초대하는 예술가들

[클래식에 빠지다] 쇼팽(Chopin)과 고흐(Gogh)

2022.09.22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감정의 이입은 우리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감정에 동화될 때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설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실제로 상대방의 감정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은 직관을 요하는 문제인데, 상황극처럼 역할 바꾸기는 치료의 목적으로 정신과 등에서도 쓰이고 있다.

한편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감정이입을 통해야만 가능하고, 절대적인 진리는 오직 직관에 의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직관은 공감적인 직관을 뜻하며 감정이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감정이입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한 필수요소다. 예술가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직업 중 하나이며 훌륭한 예술가들은 관객을 설득시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설득돼야 한다고 말한다.

칼 필립 엠마뉴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는 “음악가는 스스로 감동하지 않으면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말했고,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은 “춤은 사람들의 몸 속에 감정이입 기제를 자극해 그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9세기 위대한 예술가로 손꼽히는 쇼팽(Frederic Chopin)과 고흐(Vincent van Gogh)는 내적 자아와의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정이입을 통해 청중과 관객을 자신의 내면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그들의 예술세계에 우리가 설득 당하고 감명받고 있는 요인은 어떤 것일까.

◆ 나르시시즘(Narcissism)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 전경.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 전경.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인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얼굴임을 알게 된 나르키소스는 슬픔에 빠져 자살하는데, 나르시시즘은 나르키소스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보통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 한다.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지만, 나르시시즘의 스팩트럼은 상당히 넓으며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 중 하나로 학계에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자 조너선 브라운(Jonathan Brown)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하고 독특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런 성향은 어느 정도 삶과 자기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쇼팽의 음악과 고흐의 그림에도 자기애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가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성향이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쇼팽의 음악은 바그너나 여타 오페라 작곡가들과는 달리 내성적이며, 자기 안의 내밀한 감정에 많이 집중하고 있다. 그의 음악을 두고 대 문호 톨스토이는 “쇼팽은 간결할 때에도 경박한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복잡할 때에도 여전히 지적이다”고 했다.

쇼팽의 협주곡들을 보면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오페라 작곡가들처럼 요란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악보 위에 조심스럽고 함축적으로 내보이는 듯 하다.

라이벌이었던 리스트는 자신의 저서 <내 친구 쇼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상아 건반 위에 옮기는데 만족했다. 합창이나 합주의 효과, 무대 미술가의 수완을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힘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의 목표에 도달했다”고.

쇼팽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의 섬세함과 서정성이 느껴지는데, 그의 멜로디 속에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고생한 쇼팽의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다. 그는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 안의 특별함을 믿으며,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음악은 잠시만 들어보아도 쇼팽 자신의 것인 줄 알 수가 있는데 이는 그가 가진 나르시시즘이 음악에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고흐의 예술성에도 나르시시즘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때 성직자를 꿈꿨던 고흐는 26살 나이에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예민하며 불 같은 성격을 가졌던 고흐는 부모님으로부터 장남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관점이 뚜렷했던 그는 가족과 오랜 친구의 조언보다는 자신의 열정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글귀를 적었다. “한 사람이 여러 성격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자기애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자화상 작품이 고흐에게 많다는 것은 그의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르시시즘은 지나치면 이해심이 부족해 인간관계나 사회적으로 큰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에 거침없이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이방인(Gentile)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방인의 삶은 불안함과 외로움의 연속이다. 토착민과 방랑자의 특성을 모두 공유하고 있는 이방인은 언제라도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착화 되어있는 현지인들이 볼 수 없는 자신만의 객관적인 시각과 생각으로 사회와 문화에 활력과 신선함을 더해준다.

쇼팽과 고흐는 각각 자신이 태어난 고향 폴란드와 네덜란드를 떠나 이방인의 삶을 살아갔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비엔나로 떠난 스무 살 청년 쇼팽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국 폴란드의 봉기 소식을 듣는다.

러시아 지배에 맞서 항거하는 동포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를 친구들은 피아노로 조국에 충성하라고 말렸다.

하지만 폴란드 분할에 관여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폴란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신의 실수”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했고,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Carl Czerny)와 빈(Wien)의 친했던 인사들도 점점 차갑게 돌변했다.

결국 그의 연주회에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자 쇼팽은 화려한 비엔나를 뒤로하고 파리로 떠나게 된다. 도착한 파리에서도 큰 호응을 못 얻었지만 이후 고향친구의 소개로 유명인사들의 장소였던 살롱에서 연주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어 연인 상드를 만나면서 많은 명곡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수줍음이 많았던 그는 거절할 때 항상 편지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고, 고향에서부터 알던 지인이 아니면 항상 거리감을 유지했다. 리스트(Franz Liszt)는 “그는 모든 것을 주려 했지만 자기 자신만은 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엔나 시절 이방인으로서 상처받았던 쇼팽은 특유의 기질과 맞물리며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방인으로써 느꼈던 비엔나의 왈츠는 그만의 아름다운 형식으로 진화했다.

늦은 시간에 끝났던 살롱의 모임 이후에 찾아온 도시의 외로움과 적막감은 ‘녹턴(Nocturne)’이라는 장르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고흐 역시 이방인으로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 네덜란드 준데르트(Zundert)의 독실한 칼뱅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고흐는 자신의 삶의 목표를 찾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영국과 벨기에, 프랑스를 떠돌며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 고흐는 상당한 수준의 교양인이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독일어를 읽는데 능숙했으며, 독서량 또한 어마 어마했다.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슨(Charles Dickens), 에밀 졸라(Emile Zola) 등을 탐독했던 고흐에게 도시와 나라는 큰 제약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를 이방인처럼 느끼게 한 것은 아마 그의 부모님과 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동료 예술가였을 것이다.

고흐는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있어서 좋은 점은 모두가 환자라는 점이다. 적어도 혼자라는 기분은 들지 않거든”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젤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때만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평소에 느꼈을 외로움과 고독감이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벨기에의 보리나주 탄광촌에서 그는 자신의 소묘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고, 밀레의 기법을 묘사하며 성장했다. 또한 파리에서는 우끼요에와 램브란트에 영감을 받아 밝고 다양한 색감의 자화상들이 탄생됐다.

예술 공동체를 꿈꿨던 아를 (Arles)지방과 마지막 2년을 보낸 생 레미(Saint Remy), 오베르 우와즈(Auvers-sur-Oise) 마을에서 고흐의 걸작들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들로 가득차 있다.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쇼팽과 고흐는 모두 30대 후반 프랑스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들은 위대한 유산을 후세에 남겨준 혁신가이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창조자이기도 하다.

피아노 음악은 쇼팽 이 전과 이 후로 나뉠 수 있다. 그는 200여곡의 작품을 남겼는데, 폴란드 춤곡인 마주르카나(Mazurka), 빈의 왈츠, 발라드, 녹턴 등을 피아노의 한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단순 연습곡인 에뛰드(etude)를 하나의 작품으로 격상시켰다.

작곡가 드뷔시(C.Debussy)는 “쇼팽은 피아노로 모든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의 루바토(Rubato, 의도적으로 템포를 변화함)나 페달을 이용한 음색의 변화는 인상주의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은 쇼팽의 음악은 리스트처럼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의 짧은 소품은 리스트의 긴 음악보다 힘들다고 했다.

고흐의 유산 또한 인상주의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그림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 주관적인 색상 등을 화폭에 담았으며 이후 뭉크, 클림트,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 표현주의와 야수파에 영향을 미쳤다.

쇼팽과 고흐의 죽음은 쓸쓸했지만 그들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다. 살아생전 한 점밖에 그림을 팔지 못한 고흐지만 아방가르드 예술계에서 그는 나름의 위치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장례식에는 모네(C.Monet), 로트렉(Toulouse-Lautrec), 피사로(Camille Pissarro)등 동료화가들의 조문과 애도의 메시지 등이 줄을 이었다.

쇼팽의 장례식에도 3000여명의 조문객이 파리 마들렌 대성당에 모였으며, 오르간으로 연주된 그의 프렐류드와 모차르트 레퀴엠은 자신의 바람대로 장례식장에서 연주됐다.

고흐의 선배인 플랑드르 지역의 화가들은 바니타스(Vanitas, 허무주의) 화풍으로 꽃을 그리곤 했다. 꽃은 곧 시들 수 있다는 의미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고흐의 “해바라기”에는 수 많은 씨앗을 지니고 있는 영원한 생명력과 황금빛 정열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 쇼팽과 고흐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의 기억이 아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력의 메멘토 모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추천음반

쇼팽 음반에 관해 수 많은 스페셜리스트와 명반이 있지만 모두 나열할 수는 없고,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피아니스트들을 소개한다.

먼저 올드 레코딩으로, 앞서 언급한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의 연주를 추천한다. 이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Vladimir Sofronitsky)와 상송 프랑수와(Samson Francois)를 권한다. 

현대적 레코딩으로는 짐머만(Krystian Zimerman)과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ao Pires), 그리고 백건우 선생님의 음반도 가을에 듣기 좋은 음반이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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