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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시골 초등학교의 아침조회 모습. |
인도 IIT의 경쟁력은 우수한 인재의 선발에 있다. 12억 인구의 인도 전역에서 날고 긴다는 인재들이 오직 IIT 입학을 목표로 밤새워 공부한다. IIT는 입학 그 자체가 미래의 성공을 보장받는 열쇠가 된다. 최정예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냉혹한 학부과정을 통과한 IIT 졸업생들에게는 연봉 수억원을 보장하는 기업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 사례는 인도에서 가장 낙후된 비하르 주의 교육에 관한 것이다. 비하르 주의 한 여자 중학교. 60여년전 지어진 이 학교 건물은 한마디로 비가 오면 지붕이 새는 등 폐허를 방불케 한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교실에 학생들은 맨 바닥에 앉아 수업을 받는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200명으로 학교정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점심시간에 많이 몰려오는데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점심을 받아먹기 위해서다.
비하르 주는 인도 28개 주 가운데 사회 인프라가 최악이다. 빈곤선 이하 주민 비율이 42.6%로 전국 평균 26.1%를 크게 웃돌고 있다. 아동들의 초등학교 입학률 역시 41%로 전국 평균 66%에 한참 뒤처진다. 취학 연령기의 아동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가축을 돌보거나 부모의 뜻에 따라 인근 대도시의 직조공장에서 일을 한다.
보다 많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비하르 주 도로변에 세운 마드라사(Madrasa) 초등학교. 시골의 취학 연령기 아동들은 학교 대신 가축을 돌보거나 인근 도시 직조공장에서 일을 한다. |
비하르 주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민계급, 무슬림, 하위 카스트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생존의 문제가 절박하다. 그들에게 자녀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교육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주의 하위 카스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은 것이 없다.
인도에도 한국 못지않은 교육열기가 있다. 뉴델리에 있는 중·고등학교 학기말 시험, 각종 학력경시대회, 대학 입학 시험일에는 학교 앞 도로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주요대학 입학시험 일정과 결과, 수석 합격자 등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뜨거운 교육 열기는 소위 명문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고 있는 중·상류층 가정의 경우에 해당한다.
인도 전역에는 단과대학 3877개, 종합대학 108개, 특수 실업대학 11개 등 4000여개의 대학이 있으며 학생 수는 300여만명이다. 대학 입학율은 4%에 불과한데 12억 전체 인구 비율을 놓고 보면 미미하기 그지없는 수치다. IIT, 네루대, 델리대 등 명문 대학 입학 비율만 따로 계산하면 그 수치는 한참 더 떨어진다.
흔히 인도를 인재와 인력이 풍부한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실제 수치는 허상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12억 인구 중에서 일부 잘 교육받고 훈련된 인원을 10%로 치더라도 1억명 이상이나 된다. 사람들은 그 1억이라는 수치를 주목하고 정작 다수인 나머지 11억명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85년 전통을 자랑하는 인도의 명문 델리대학 캠퍼스. |
이 소외되고 미래가 불투명한 다수는 그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인도 초등학교(6~11세)는 모든 주(州)가 무상교육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학과정(12~14세)은 대부분의 주(州)가 교육비를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중학교 취학율은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인도의 하위 카스트, 불가촉 천민 등 소외계급들은 기회의 균등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에서도 대학 입학시험 및 정부기관 취업에 하위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가 당면한 현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2006년 3월 인도 중앙정부는 당시 22.5%로 되어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는 정책을 입안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중·상위 카스트들의 전국적인 반발에 부딪쳐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 시행이 유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인도 유명대학의 의과 및 공과대학 학생들이 동 정책에 반대하는 극렬 시위를 주도했는데, 당시 이들이 내세운 구호는 ‘할당제 보다는 자질 우선을’(Reserve vs. Deserve), ‘1947년은 영국으로 부터의 자유를, 2006년은 카스트 정치로 부터의 자유를’(1947: Freedom from British, 2006: Freedom from Caste Politics) 등이었다.
각자의 수업일정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델리대학 학생들. |
인도의 어두운 교육 현실에는 정부, 특히 주(州) 정부의 무능하고 비능률적인 행정도 한몫을 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비하르 주에서 다년간 주 수상으로 일했던 ‘랄루 야답’(Lalu P. Yadav)은 무능하고 부패한 행정으로 인도 민주주의 최대 실패사례라고 조롱 받은바 있다.
랄루 야답 수상은 주(州)의 재정 상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이상적인 교육정책을 고집한 인물이다. 그는 산간오지 양치기들을 위한 산림학교(Forest School) 설립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대학 교수들의 봉급을 삭감하거나 수개월씩 지급을 유예해 비하르 주 대학 교수들이 6개월간이나 파업을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더 기상천외한 일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 유령 교사들이 인도 전체 초등학교 교사의 25%나 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국제교육계획연구소(IIEP)는 2007년 6월 발표한 ‘부패한 학교, 부패한 대학: 어찌해야 하나’라는 보고서에서 인도 초등학교 유령교사 비율이 가장 낮은 구자라트 주가 17%, 가장 높은 비하르 주는 무려 38%에 달한다는 한심한 병폐를 고발하기도 했다.
인도의 전반적인 교육현실은 빈곤과 원천적 차별의 악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하위 카스트, 불가촉 천민, 무슬림의 자녀들은 공평한 교육과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세상에 태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의지와 노력만으로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개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델리대학 중앙도서관 전경. |
다시 말하면 마라톤 경주에서 상위 카스트나 좋은 가문 출신의 자녀들이 이미 반환점에 서 있다고 한다면, 소외계층 자녀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공정 게임과 같은 이치이다. 인도 교육 불공정 게임의 근저에는 대부분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소수 상류계급이 독점하고, 이를 대를 이어 세습하려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이나 치유책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푸네 대학 총장이 쓴 ‘신(神)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우리의 주목을 끈바 있다. 이 책은 교육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달릿(불가촉 천민)의 후손이 인도사회의 온갖 차별과 냉대,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고 성공을 일구어 내는 눈물겨운 도전사를 그리고 있다. 책의 주인공 ‘나렌드라 자다브’(Narendra Jadhav)의 영웅적인 드라마 속에는 학교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한 그의 아버지의 희생과 한이 숨어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된 불가촉천민 출신 푸네대학 총장이 쓴 ‘신도 버린 사람들’의 책 표지. |
인도의 고대 힌두경전(마누법전)은 하위 카스트인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인 달릿은 ‘개와 당나귀’ 이외의 재산을 갖지 못하며,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고 규정하였다. 마누법전은 수드라와 달릿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규칙을 언급하기도 했다.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부을 것이요,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를 것이며, 베다를 기억하면 몸뚱이를 둘로 가를 것이다."
상당수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인도 하층민들은 여전히 구조적인 차별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뿌리 깊은 가난, 무지, 비능률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차이가 엄청난 교육의 양극화로 인해 공정한 경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교육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국가의 책임, 사회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제시하는 3불정책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교육과 대학 발전을 이유로 고등학교까지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일부 한국 대학들의 오만한 태도는 인도의 비인간적인 교육 양극화를 연상시켜 씁쓸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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