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했다면 익숙할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의병’과 ‘독립군’입니다. 언뜻 보이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단어는 어떻게 다를까요?
지난 4월 11일, 서울역 광장 카페 ‘자리’에서 열린 ‘역사다방’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다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쇼로, 이날의 역사다방은 ‘임시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라는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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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다방이 열린 서울역 광장의 모습. |
이번 서울 편에는 박광일 역사기행작가, 알파고 시나씨 아시아N 편집장, ‘조승연의 굿모닝팝스’ MC 조승연 작가,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패널로 참석했는데요.
박광일 작가에 따르면, 의병은 조선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봉기했던 세력이고, 독립군은 공화국을 만드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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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다방 서울 편 팸플릿. |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박광일 작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조선으로의 회귀가 아닌 민주공화국을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알파고 시나씨 편집장은 “임시정부 시기는 국민들이 백성에서 시민으로 변한 시기”라고 했고, 조승연 작가는 “당시의 강대국인 대영제국, 러시아, 독일 역시 왕국인 상황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체제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27년간 나라를 끌어온 정부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독립국’이며, 우리 국민을 ‘자주민’ 이라고 표현하는 놀라운 진보를 이뤄낸 정부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꿈은 독립뿐만이 아니라 독립 이후에 새로운 민주공화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시작을 과감히 결정한 용기가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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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다방 서울 편에서 강연 중인 박광일 작가. |
임시정부, 대한민국 넘어 동아시아 역사로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생각하면 중국 상해(상하이)에 위치한 상해 임시정부를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임시정부가 상해 임시정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상해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본 후 상해 임시정부가 임시정부의 한 시기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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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임시정부 기념관에 소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상해 임시정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는 크게 상해 시기, 이동 시기, 중경(충칭) 시기로 나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국내외 각지에서 모인 인사들과 함께 상해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고,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상해를 떠나 항주를 거쳐 장사(창사), 광주(광저우), 유주(류저우) 등 여러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펼치다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긴긴 임시정부의 여정을 본다면 상해 임시정부가 임시정부 역사의 전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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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항저우) 임시정부에 걸려있는 김구 선생의 사진과 서예 작품. |
박광일 작가는 “임시정부를 너무 좁게도, 너무 넓게도 보지 말자”며 “임시정부라고 하면 보통 김구 선생을 생각하는데, 김구 선생이 주석이라는 지휘로 임시정부를 통괄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 이후다. 여기에만 주목을 하게 되면 상해 임시정부 시기와 임시정부 이동 시기를 놓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너무 넓게 보면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세력의 전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임시정부는 하나의 정부를 지향하며 모든 독립운동 조직을 이으려 했던 독립운동의 한 조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임시정부가 있어 가능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중경에서 광복군을 창설해 인정받았고,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외교를 통해 카이로 회담에서 독립 확인을 받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독립 후에도 중국 남경(난징)에 남아 우리나라 교민들을 위해 주중대사관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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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붙어 있는 임시정부 표식. |
아쉬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독립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은 정부 관계자 자격으로 입국할 수 없었습니다. 미 군정에서 임시정부 관계자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들어오라고 조건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입국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전혀 알 수 없었고, 요인들은 넉 달이 지나서야 국민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광일 작가는 임시정부가 미완성인 채로 마감하게 되었지만, 이를 ‘위대한 미완성’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박광일 작가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살아 계신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은 아마 “행복해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여길 수 있는 나라가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조승연 작가 또한 “독립운동가 분들이 바라는 나라가 여권을 가지고 어느 나라나 갈 수 있는 현재가 아닐까”라며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이 오늘의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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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들이 붙인 질문지를 고르고 있는 패널들. |
이날 역사다방에서는 강연 후에도 청중들의 의견과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황찬우 학생(12)은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일본이 망해도 독립이 될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 인상 깊었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역사이지만 임시정부의 역사를 보면 선조들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역사다방 서울 편은 임시정부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배우고,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역사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살아가는 이 나라가 많은 분들의 피와 땀 위에서 세워진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생한 정책현장을 전하는 정책기자단 박수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