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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淸白吏) 열전(列傳)]당론(黨論) · 당쟁(黨爭) 막고 국정쇄신한 명상(名相)

1993.08.26 국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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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蔡濟恭)

조선 정조때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이다.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당론(黨論) · 당쟁(黨爭)을 없애고 국정을 쇄신하는데 힘쓴 명상(名相)이다.

소년시절부터 돋보인 ‘당당한 기개(氣槪)’가 일화로 전한다.

그가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 집안형편이 먹을 양식마저 대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던 부귀한 집안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가 일쑤였지만 공부외에는 일체 개의하지 않았다.

섣달 그뭄이 되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각자시(詩) 한수씩을 짓기로 했다.

채제공은 ‘가을바람 스산한 고목에서 매가 새끼를 치고 차가운 달 눈덮힌 산에서는 범이 정기를 기른다’는 시를 써내려갔다.

이 시의 숨은 뜻을 알 리가 없는 이아들은 엉터리 시라면서 키득거릴뿐이었다.

학생중엔 당시 재상의 아들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가 채제공의 엉터리 시 얘기를 꺼냈다.

이를 들은 재상은 눈을 크게 뜨면서 “너는 글공부를 헛했구나. 모욕을 당하고도 모르니…. 가을에 친 매새끼는 매구실을 못하니 너희들을 비웃는 것이고 눈덮힌 산에서 범이 정기를 가름은 어려움속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라면서 혀를 찼다.

그뒤 어느날 채제공은 과거시험에서 쓸 붓과 먹을 살돈이 없어 그 재상을 찾아뵈었다.

평소부터 그를 눈여겨 본 재상은 붓과 먹을 선뜻 내어주며 가져가라했다.

채제공은 “저희집이 가난하여 비록 도움받으러 왔으나 제가 물건들을 직접 들고 가야합니까”라고 정색하며 물었다.

당시 풍속으로는 아무리 가난하여도 양반은 손수 물건을 들고 다니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재상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종을 시켜 보냈다.

채제공이 인사를 하고 막 물러서려는데 추위를 막으려고 홀저고리 등바지에 넣어다니던 개가죽이 빠져 떨어졌다.

주위에서 몹시 민망해 했으나 그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없이 주워넣고 의젓하게 물러갔다.

어린 사람의 큰 기개에 모두가 놀랐음은 물론이다.

채제공은 불과 15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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