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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아이가 생겼어요”

아이가 있어 더욱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두 가정의 사연

2015.05.22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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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아이를 낳지 않고 커플끼리 즐기자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 맞벌이에 아이를 두지 않은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삶의 의미, 가치관, 혹은 경제적인 문제 등 아이를 낳지 않는 데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주는 인생의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퍼즐조각으로 맞춰진 우리의 인생에서 아이는 ‘마지막 퍼즐조각’ 역할을 한다는 것.

가정의 달 5월 <위클리 공감>에서는 아이가 있어 가정이 더욱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두 가정의 사연을 소개한다. 아이를 낳기 위해 5년 동안 노력한 끝에 소중한 딸을 얻은 전난임(가명) 씨와 부모가 없는 아이 3명을 입양해 사랑으로 가슴에 품은 이설아 씨의 특별한 아이 사랑 스토리!

 



결혼 6년 차인 전난임(34·가명) 씨는 현재 100일을 갓 넘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행복한 엄마다. 매일 자신을 향해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보면서 기쁘고 감격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전 씨는 이 순간을 위해 무려 5년 동안 힘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직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아이가 안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 씨. 임신 시도 이후 6개월,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인공수정·시험관 시술…길고 어려운 시간에 우울증

전 씨 부부는 계속 불안해하기보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 여자는 나팔관 검사, 남자는 정액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부부에게 문제는 없었다. 30대 초반이면 나이도 젊고 임신이 안 될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좀 더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자연 임신을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다시 1년 동안 기다렸는데, 또 아무 소식이 없었어요.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에서 시간만 계속 흐르니까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난임 전문병원을 찾아갔죠.”

교사로 재직 중이던 전 씨는 혹시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임신이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학교에 휴직서를 제출했다.

난임 전문병원에서 전 씨는 바로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인공수정을 위해 자신의 배에 손수 주사를 놓는 힘든 과정을 참아가며 임신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번의 인공수정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전 씨는 크게 실망했다.

“인공수정이 그래도 자연임신보다 확률이 높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안 됐다는 말을 들으니 상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확실한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보다 더 많은 인내력을 요구했다. 더 많은 주사를 배에 직접 놓아야 했고, 난자와 정자를 각각 따로 채취하고 자궁에 착상시키는 과정까지 더해졌다. 몸의 컨디션도 좋은 상태로 유지하면서 길고 어려운 시간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임신만 된다면 이런 고통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1차 시험관 시술 이후 떨리는 마음으로 임신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는데, ‘임신이 안 됐다’는 간호사의 말에 얼마나 좌절했는지 몰라요. 정신적으로 허탈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있는 기분이었죠. 주사는 몇백 번도 더 맞을 수 있는데, ‘내가 정말 임신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와 많이 울었어요.”

전 씨는 기대를 많이 했던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이 끝난 직후 두 번째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조심을 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이후 전 씨는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주변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친구들 만나기도 꺼려졌다. 누군가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고 듣는 것도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우울증으로 집에서 나오지 않던 전 씨에게 의사 선생님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착상이 안 되는 이유가 다른 데에 있을지 모르니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것. 검사 결과 평소 혈액순환이 잘 안 되던 게 문제였다. 배아가 자궁에 착상될 때 혈액 공급이 원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착상이 힘들었다는 이유를 찾았던 것. 문제점을 발견했으니 뭔가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전 씨는 다시 한번 시험관 시술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시술비 부담 덜어내고 임신에 성공…남편은 벌써 ‘딸바보’

“매일 같은 시간에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는 주사를 맞으면서 3차 시험관 시술을 받았어요. 3차 시술도 실패를 했지만 예전처럼 크게 좌절하진 않았어요. 혈액순환 주사를 계속 맞으면 다음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인공수정은 정부로부터 3회까지 회당 50만 원을 지원받고, 시험관 시술은 4회까지 180만 원(2014년 기준)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시험관 시술 비용이 총 300만~400만 원가량 들어간다고 봤을 때 전씨에게 시험관 시술 비용도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로 다가왔다. 게다가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쳐 있던 터라 잠시 쉴까도 생각했다.

그때 난임가족연합회에서 시험관 시술 비용 전액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운이 좋게도 전 씨는 시술비 전액을 지원받는 수혜자로 선정됐다.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 4차 시험관 시술을 진행한 전 씨. 드디어 결과를 들을 수 있는 D-데이가 다가왔다.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아침, 미리 임신테스트기를 해봤어요. 혹시 병원에서 ‘아니다’라고 말해도 덤덤하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임신테스트기에 ‘임신이 맞다’는 표시로 2줄이 생기는 거예요. 믿을 수가 없었죠. 펑펑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편도 그 소식을 듣고 울먹거리기만 하고 아무 말을 못 하더 라고요. 그날 저희 부부는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답니다.”

전 씨는 착상이 된 이후에도 출산할 때까지 혈액순환 주사를 매일 맞으며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임신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 1월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딸을 순산했다. 수유실에서 처음 만난 딸은 무척 작고 앙증맞았다.

“출산하고도 감격스러운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계속 눈물이 흘렀어요. 그리고 아이를 처음 만났는데 내가 낳은 아이가 맞는지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작고 귀여운 손과 발도 너무 신기하고,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줘서 대견하고, 천사 같은 모습으로 저희 부부에게 와준 사실이 감사하기만 했죠.”

남편은 벌써부터 ‘딸바보’ 아빠가 됐다. 하루 종일 아이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내달라고 조르는 것도 모자라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는 아이 얼굴만 쳐다본다.

“아이가 제 품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이제 갓 백일이 지난 터라 가끔 눈을 맞추고 반응하는 게 전부인데, 그 모습만 봐도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거든요. 주위에 아이 없이 사는 부부도 있는데, 그들이 이런 행복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무척 안타까워요. 아이는 지금 저희 부부가 살아가는 가장중요한 이유랍니다.”





자신의 자식도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하며 입양 전도사가 된 사람이 있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5월 9일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설아(41) 씨가 그 주인공이다.

서른한 살에 결혼을 한 이 씨는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않았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남편과 둘이 편하게 사는게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생의 말이 이 씨의 마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그 초등학생 아이는 엄마와 일찍 헤어져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선생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줬지만, ‘저 아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하구나’를 깨닫는 계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가 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는 막연히 부모가 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지 말까’라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그 학생의 말을 듣고 난 뒤로 ‘피가 안 섞인 아이와 가족이 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남편에게 한번 상의해봤는데, 남편이 의외로 쉽게 동의했어요. 낳는다고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길러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양가 부모는 펄쩍 뛰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느냐는 것. 특히 시댁에서는 밖에서 데리고 온 아이는 내 집에 절대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씨 부부의 생각은 확고했다. 양가 부모의 반대나 주위의 우려는 부부의 의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뒤 부부는 생후 1개월 된 아들, 주하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를 처음 키워본 터라 좌충우돌 힘들었어요. 새벽에 잠도 설치고 허둥댔지만 마음만은 정말 행복했어요. 주하가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예뻤거든요.”

남편 역시 주하가 예쁜 짓을 할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시댁 부모님들은 여전히 강경했다. 그래서 주하가 6개월이 됐을 무렵 아이를 데리고 시댁을 찾았다.

“시댁 부모님들은 냉랭하게 대하며 쳐다보지도 않으셨어요. 하지만 주하의 해맑은 얼굴을 보시더니 아이를 한번 안아보시더라고요. 그 뒤부터는 주하의 재롱에 눈을 못 떼시던데요?(웃음)”

주하가 세 살이 되던 어느 날. 이 씨는 주하가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외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주하에게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신생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연장아를 입양하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번에는 반대를 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길 기다렸다. 결국 아내의 강한 의지를 확인한 남편은 한발 양보했다.

“인천의 한 보육원에 5세 여자 아이가 있다고 해서 가봤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솔직히 그냥 포기하고 싶었어요.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많이 실망스러웠던 거예요.”

막내 완이를 서로 돌보려고 하는 미루와 주하.
막내 완이를 서로 돌보려고 하는 미루와 주하.

양가 부모 펄쩍 뛰며 반대…첫째 이어 둘째 집으로 데려와

그렇게 집에 돌아온 이후 이 씨는 미루라는 이름의 그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문제에 대해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를 안 데리고 오면 왠지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미루를 만나기 위해 보육원을 찾았다. 다음에는 주하를 데리고 미루를 만나러 갔다. 다행히 아이들끼리는 마음이 잘 맞았다. 내친김에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미루를 집으로 초대했다. 다행히 주하와 친해진 미루는 무척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집에 와서 놀던 미루에게 ‘보육원에 돌아갈 시간 됐다’고 말했더니, 미루가 체념한 표정으로 가방을 챙겨서 현관 앞으로 가더라고요. 다섯 살 어린아이인데 더 놀겠다고 떼도 안 쓰고, 덤덤한 듯 돌아갈 준비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요. 그래서 결심했죠. 이 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데리고 와야겠다고요.”

1년 동안 보육원을 왕래하며 미루와 친해진 이 씨 가족은 순조롭게 미루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그동안 주 양육자가 없었던 5세 여자아이 미루는 가족 구성원으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규칙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툭하면 싸우기 일쑤였고, 이 씨와 남편 역시 미루와 승강이가 끊이질 않았다. 미루가 이 씨 가족이 되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5세 아이는 말도 잘하고 자기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서로 맞춰서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생후 1년이 넘은 연장아일경우 입양을 많이 꺼리죠. 저는 미루가 저희 가족이 되는 과정을 매일 기록으로 남겼고, 입양 관련 커뮤니티에 그 일기를 올렸어요. 그랬더니 저처럼 연장아를 입양한 부모들의 문의와 쪽지글이 수십 통씩 오더라고요. 그들의 마음과 상황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자세한 상담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 키우는 일이 다 똑같다”며 입양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씨는 입양한 아이는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아이들은 이미 정서적으로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장아를 입양할 때는 그 아이가 우리 품으로 오기 전의 스토리를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것에 두려움이 있고, 무엇에 힘들어하고, 왜 잘못된 습관이 생겼는지 그 원인을 알면 좀 더 쉽게 풀어갈 수가 있거든요. 특히 아이들이 성장해 친엄마가 자기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엄청난 좌절과 상실감을 느끼거든요. 그 과정을 같이 겪으면서 아이와 함께 울고 마음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죠.”

지난해 9월 주하 생일에 조카, 세 아이들과 함께.
지난해 9월 주하 생일에 조카, 세 아이들과 함께.

“세 아이 입양 후 양육 고민도 함께 나눠요”

입양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이 씨는 1년 전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입양가족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기 위한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제가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면서 느꼈던 고민과 갈등을 입양부모들과 공유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입양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센터를 설립하게 됐어요. 사람들은 보통 입양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민하는데, 저는 입양 이후의 과정도 미리 알고 공부해야 빨리 자연스럽게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양 이후 아이와 생긴 갈등이나 고민에 대한 문의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 씨는 2년 전 돌이 지난 아들 완이까지 입양해 총 3명의 입양자녀를 두고 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사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몸은 10배 힘들다. 하지만 마음은 100배 행복하단다. 완이가 들어온 이후 주하와 미루는 스스로 완이를 챙기면서 든든하게 가족의 균형을 잡았다. 5명의 가족이 모두 다른 배에서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진짜 ‘가족’이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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