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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용산’을 걷다

[국민과 함께 용산시대] 자유의 용산

2022.06.07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이봉창 의사 생가 인근에 건립된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이봉창 의사 생가 인근에 건립된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이봉창 의사 흉상
이봉창 의사 흉상.
▶마당 내 벤치. 이봉창 의사와 백범 김구선생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마당 내 벤치. 이봉창 의사와 백범 김구선생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용산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어둡고 시렸던 시기를 기록한 기념관이 여럿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의 역사를 품고 있는 효창공원과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등이 있고 5000년 민족사를 전쟁이라는 주제로 조망할 수 있는 전쟁기념관도 용산에 있다. 구국과 항일, 전쟁과 평화를 되새기게 하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코스_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백범김구기념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쟁기념관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_ 백범로 281-9

탐방길은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시작한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로 나와 몇 걸음 걷다가 만난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5분 남짓 걸으니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이 보인다. 여느 전시관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푸른 잔디밭에 정갈한 한옥이 자리하고 있다.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은 국민이 붙여준 이름을 달고 2020년 10월에 개관했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에 있는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가는 일본 국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한 후 체포돼 1932년 10월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는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났으나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의 죽음은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독립운동에 큰 획을 그었다.

전시관 안에 들어서니 이봉창 의사의 흉상이 반갑게 맞이한다. 흉상 앞의 발바닥 표시가 돼 있는 곳에 섰다. 한인애국단의 선서문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경건함과 비장함이 느껴진다.

왼쪽에 있는 키오스크에서는 화면을 통해 용산구 효창동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한다. 효창동 이름의 유래부터 변천사, 그리고 이봉창 의사와 연결고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무선 식별 시스템(RFID) 체험 공간이다. 옆에 꽂혀 있는 기사 자료를 홀더에 넣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 직후 보도된 당시의 신문 기사가 화면에 나온다. 예심 관련 기사, 사형선고 및 집행 기사, 유해 안장 기사 등이 지금의 독자가 읽기 쉽게 풀어 쓰여 있다.

이어 증강현실(AR) 체험 공간이다. 이봉창 의사의 어깨 쪽으로 손을 들면 사진이 찍히면서 한인애국단 단원이 됐음을 알려준다. 따로 사진이 나오지는 않는다. 양옆 벽면에는 한 평범한 청년이 민족 차별에 눈뜨고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기까지 이야기가 사진 자료와 함께 기록돼 있다.

그날의 의거 장면은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게 마련돼 있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던 의거 현장과 이봉창 의사가 체포되는 장면이 VR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나오는 길에 역사울림말 발권기도 잊지 말고 체험해보자. 화면에 띄운 질문에 답을 선택하면 기념 티켓이 나온다.

마당에 놓인 나무 벤치 위에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림자로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툇마루에 앉아 버튼을 눌렀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온다.

“군은 무엇인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과 이봉창 의사의 대화를 들어볼 수 있는 체험이다.

▶백범김구기념관 외부
백범김구기념관 외부.
▶효창공원 중앙에 자리한 의열사. 효창공원 묘역에 안장된 네 명의 임정 요인과 삼의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효창공원 중앙에 자리한 의열사. 효창공원 묘역에 안장된 네 명의 임정 요인과 삼의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_ 임정로 26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에서 숙명여대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백범김구기념관이다. 효창공원 안에 자리한 백범김구기념관은 웅장한 석조건물로 2002년 10월에 개관했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광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기념관에 들어서 마주한 백범 김구 선생의 좌상 뒤에 걸린 태극기에 쓰인 글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이던 김구 선생이 직접 쓴 ‘김구 서명문 태극기’다. 이곳은 기념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된 곳이다.

기념관 내부는 김구 선생의 업적을 총망라해 전시해놓고 있다. 1층은 백범 김구의 어린 시절부터 동학 의병 활동, 치하포 의거 등 상하이로 가기 전까지의 행적을 전시하고 2층은 백범을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의 활동과 귀국 이후 서거까지의 활동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을 나와 건물 왼쪽 옆으로 돌면 김구 선생 묘역이 있다. 1949년에 암살당한 김구 선생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리고 백범은 동지들이 있는 이곳 효창공원에 모셔졌다.

그렇다. 효창공원에는 백범과 연관된 인물들의 묘역이 조성돼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해방 이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봉환된 삼의사와 임정 요인의 묘역이다.

임정 요인 묘역에는 백범과 함께 임시정부를 이끌던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이 모셔져 있다. 삼의사 묘역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셨고 묘 왼편에는 아직 송환하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자리를 가묘로 남겨두었다.

사적 330호로 지정된 효창공원은 서울시에서 독립기념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백범 김구의 좌상. 뒤로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보인다.
백범 김구의 좌상. 뒤로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보인다.
▶백범 김구 묘역
백범 김구 묘역.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반민특위 터 표석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반민특위 터 표석.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식민지역사박물관_ 청파로47다길 27 서현빌딩

효창공원에서 숙명여대 정문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시민의 힘으로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2018년에 개관한 박물관은 명칭 그대로 일제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실체, 고통받던 민중, 항일과 구국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참여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조형물이 박물관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

1층에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의 산업유산 시설이 지워버린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의 역사를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증언하는 기획 전시다. 강제동원 피해자 19명의 증언 영상을 보고 있자니 영화 <군함도> 속 진실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 난다. 특별전은 7월 17일까지 볼 수 있다.

계단을 한 층 올라가 도착한 상설 전시관. 총 4부에 걸쳐 일제강점기와 친일에 대해 보여준다. 한편엔 그 시대의 암울함을 체험하는 3.3㎡(1평) 공간도 마련돼 있다.

나오는 길에 사람들의 염원과 부탁, 희망이 담긴 숱한 메모를 보면서 아직도 많은 일이 남아 있음을 다시금 상기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시민의 힘으로 세워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시민의 힘으로 세워졌다.
▶전쟁기념관 정문을 지나면 바로 6.25전쟁 조형물이 있고 그 뒤로 평화의 광장이 펼쳐지고 맞은편에 전시관 입구가 보인다.
전쟁기념관 정문을 지나면 바로 6.25전쟁 조형물이 있고 그 뒤로 평화의 광장이 펼쳐지고 맞은편에 전시관 입구가 보인다.

전쟁기념관_ 이태원로 29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가까이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의 아픈 과거와 냉엄한 현실을 담고 있는 곳이다. 삼각지역 12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전쟁기념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우뚝 솟아오른 청동검 형태의 탑이 가장 먼저 맞아준다. ‘6·25상징탑’이다. 그 아래 38명의 ‘호국군상’이 자리하고 있다. 호국군상은 6·25전쟁에 참여한 각계각층을 형상화한 것이다.

6·25상징탑에서 왼쪽으로 가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떠오르는 조형물이 보인다. ‘형제의 상’이다. 이 조각상은 6·25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던 사연을 재현한 조형물로 한국군 장교였던 형 박규철과 인민군 병사였던 아우 박용철이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난 형제의 비극이다.

6·25상징탑을 보며 오른쪽으로 가면 6·25전쟁 당시 사용한 장비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사용한 세계 각국의 항공기, 미사일, 장갑차, 전차 등 대형 무기 7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야외 전시장의 ‘전사자 명비’ 앞에 서니 숙연하고 먹먹해진다. 이 명비에는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이후부터 6·25전쟁, 베트남전쟁 외에도 각종 침투 작전 등에서 전사한 국군과 경찰 그리고 21개국 유엔군 참전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참전국 국빈이 가장 먼저 찾아와 추모하는 곳이기도 하다.

전쟁기념관은 드넓은 광장에 마련된 야외 전시장 그리고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실내 전시실로 조성돼 있다.

실내 전시실에서는 3만 4000여 점의 소장품 중 6300여 점을 전시 중이다. 1층부터 3층까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등 각각의 주제로 나눠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각종 호국 전쟁 자료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공훈 등이 전시돼 있다.

전쟁기념관에는 2014년 12월에 문을 연 어린이 전쟁박물관도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 역사를 콘텐츠로 하는 어린이 박물관으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구성해 전쟁의 교훈을 새기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곳이다.

전쟁기념관은 1994년 개관 이래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에게 단연 인기가 많은 방문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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