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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간 토갓마을에 청년들 목소리가 울려 퍼진 이후

2026.01.13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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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봄 거대한 산불이 경북 안동시 원림2리 토갓마을을 휩쓸고 갔다.
2025년 봄 거대한 산불이 경북 안동시 원림2리 토갓마을을 휩쓸고 갔다.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임시주택 간판이 토갓마을 초입에 세워져 있다.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임시주택 간판이 토갓마을 초입에 세워져 있다.

"할머니~ 어제 보고 또 보네요!"
병오년 새해를 며칠 앞둔 평일, 경북 안동 남선면 원림2리 토갓마을 마을회관이 여느 때와 달리 시끌벅적했다. 조순자 이장을 포함해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을 불러들인 주인공은 '로컬그라피 오월' 소속 최민지 활동가와 이재각 사진가다. 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어르신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들도 친손주처럼 이들을 붙잡고 밀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최민지 활동가와 이재각 사진가를 포함한 로컬그라피 오월 소속 팀원 여섯 명은 2025년 3월 경북 지역 초대형 산불로 마을 전체가 소멸된 토갓마을을 지난해 늦여름부터 방문했다. 로컬그라피 오월은 '지역을 기록하겠다'는 뜻을 함께하는 안동 지역 청년들이 2018년 결성한 사진 동호회다. 이전부터 안동 인근 마을을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던 이들은 행정안전부 '산불재난지역대상 지역청년공동체 활성화사업'을 통해 토갓마을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행안부는 2025년 9월부터 화마가 덮치고 간 경북·경남·울산·강원 지역을 대상으로 '산불재난지역대상 지역청년공동체 활성화사업'을 추진했다. 지역의 청년공동체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주민들의 일상 회복과 마을공동체 재건을 돕고 청년들의 마을 정착 기반 마련에도 도움을 주자는 취지였다. 지원 대상으로 청년공동체 10개 팀이 선정됐는데 로컬그라피 오월이 그중 하나다. 이들은 피해 지역 마을을 방문해 연말까지 이재민 지원, 재난 기록 및 아카이빙, 마을 정비, 심리·문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지역이 스스로 일어서는 과정에 청년공동체가 힘을 보탠 것이다.

'로컬그라피 오월' 소속 최민지 활동가와 이재각 사진가가 2025년 12월 1일 오후 토갓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컬그라피 오월' 소속 최민지 활동가와 이재각 사진가가 2025년 12월 1일 오후 토갓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한두 번 오다 끝날 줄 알았어요"
2025년 3월 22일 발생한 '경북 산불'은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5개 시군에 걸쳐 9만9289ha(헥타르)를 초토화했다. 토갓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행히 주민들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마을 전체가 잿더미가 됐다. 온전한 건물은 마을회관뿐이었다. 정부에서 임시거처를 제공했지만 주민 40여 명은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회관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며 하루라도 빨리 복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주민들 앞에서 로컬그라피 오월 청년들이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최민지 활동가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조심스러웠습니다. 혹여 아픔을 건드릴까 봐 말을 건네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밥부터 함께 먹으면서 서서히 주민들께 다가갔습니다. 팀원들 모두 직장이 있어 바빴지만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 마을을 찾았습니다. 꾸준히 오다 보니 주민들께서도 마음을 열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되면서 토갓마을에도 물자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고 수많은 사람이 들고나다 보니 주민들은 로컬그라피 오월도 한두 번 오다 말겠거니 했다.

조순자 이장은 "처음엔 큰 기대를 안 했죠. 솔직히 한두 번에서 끝날 줄 알았어요. 한 번 오고 마는 경우가 수없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 청년들은 꾸준하더라고요. 다들 바쁠 텐데 계속 와서 살갑게 인사하고 말 걸어주니까 나중엔 기다려지더라고요. 이젠 서로 누가 누구인지 다 알아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주민들에게 다가간 청년들은 먼저 사진 촬영과 그림 그리기에 나섰다. 집을 잃은 어르신들의 기억을 벗 삼아 어르신들의 집을 그림으로나마 되살려냈고 마을 복구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폐허가 된 마을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무너졌던 사람들이 어떻게 일어서는지 카메라 렌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더디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들이 차곡차곡 사진으로 남았다.

토갓마을과 로컬그라피 오월의 전시 준비 과정
사진 로컬그라피 오월


마을 회복 과정 그림으로 사진으로 남겨
사진관을 빌리고 임시 촬영 세트를 만들고 한복도 빌려와 주민들 얼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앞에 제대로 서본 적 없던 어르신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모델이 됐다. 한 어르신은 사진 찍던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점심도 차려주고 구경도 시켜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옷도 예쁘게 입혀주고 사진까지 찍어주더라고. 내 얼굴만 봐도 예쁘대요. 참 고마웠어요."

'나의 집'을 주제로 함께 그림도 그렸다. 산불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주민들에게 그림 그리기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최 활동가가 기억하는 주민들은 큰 재난 앞에서도 담담하고 긍정적이었다. "사라진 집을 떠올리게 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어요. 어르신들께 '그날, 집에 두고 나오신 것 중에 뭐가 가장 아까우세요?'라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어요. 귀중품이나 값비싼 물건 같은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 영감님 베트남 참전 사진', '아들 돌 사진', '딸 결혼 사진'이라고 답한 분이 많았어요. '떠날 때 입고 가려 했던 옷'이라고 답한 분도 계셨고요. 그분들을 통해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청년들의 목소리가 마을에 채워지면서 마을 분위기도 달라졌다. 조순자 이장은 "복구작업이 막막하다 보니 마을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와서 '안녕하세요~' 목소리를 높이고 동네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어르신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하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마을에 생동감이 넘치고 어르신들 얼굴에도 웃음이 살아났어요. 우리한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준 거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토갓마을과 3개월여 함께한 청년들은 11월의 마지막 주말, 주민들과 함께 그린 그림과 사진으로 안동 시내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전시를 관람하고 함께 식사도 했다. 전시장에 자신이 그린 그림과 자신의 얼굴 사진이 걸린 것을 본 주민들은 신기해하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잊지 말고 계속 관심 가져주길"
여기까지가 로컬그라피 오월과 토갓마을의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하지만 토갓마을과 청년들에게 남은 건 그림과 사진뿐이 아니었다. 더 소중한 것이 남았다. 바로 '이음'이다. 매주 함께하면서 친손주처럼 가까워진 청년들과의 이음을 통해 토갓마을 주민들의 마음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최 활동가도 "일이 아니라 놀러 오는 마음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마을의 이야기를 알고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산불 문제를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마을의 이야기를 꺼내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전시회를 연 것도 같은 취지였다. "산불이 봄에 났으니까 1년도 안 지났는데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시내에서 전시를 열고 이 문제를 잊지 말아 달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로컬그라피 오월 청년들과 시골 마을의 '이음'은 2026년에도 계속된다. 이들은 토갓마을을 포함해 안동 지역에 있는 산불 피해 마을의 기록을 더 모아 더 큰 전시를 열 계획이다. 최 활동가는 "계속해서 토갓마을은 물론이고 다른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라며 "2026년 하반기에 본격적인 전시를 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역청년공동체 사업은 끝났지만 마을을 향한 청년들의 발길은 더 잦아지고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일정을 마치고 마을을 떠나면서 청년들이 어르신들을 향해 외쳤다.

"또 오겠습니다!"

<K-공감 오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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