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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만 처방해선 안 됩니다. 치매환자의 삶을 돌봐야죠"

치매관리주치의 허선 목포시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

2026.09.10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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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선 과장은 치매관리주치의로 활동하며 환자가 살던 곳에서 전문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목포시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선 과장은 치매관리주치의로 활동하며 환자가 살던 곳에서 전문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아버지가 의사 선생님 앞에서 눈물 흘리시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가족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속마음을 선생님께서 알아봐 주시니 감정이 복받쳐 올랐던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에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지난 2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청 누리집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는 목포시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선 과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남겼다. 

허 과장은 2024년 9월부터 '치매관리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치매관리주치의는 지역사회에서 치매환자의 증상뿐 아니라 만성질환과 생활습관, 돌봄 환경까지 함께 살피는 의사다. 2024년 7월 시범사업으로 도입됐다. 정부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에 따라 2028년 전국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환자가 살던 곳에서 전문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목포시의료원의 치매환자 수는 약 1170명. 허 과장은 치매안심센터를 거쳐 내원한 '치매 의심 환자'를 대상으로 혈액검사와 인지검사 등을 진행한 뒤 환자와 보호자에게 평균 50분 동안 검사 결과와 치료 방향을 설명한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 관리부터 식습관과 운동, 수면법 등을 상담하고 한두 달 간격으로 환자를 만나 생활관리 상태를 점검한다.

허 과장은 치매의 치료 못지않게 예방과 생활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인지기능이 저하된 '경도인지장애' 단계는 치매 진행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그는 치매를 "환자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던 세상을 함께 잃어가는 병"이라고 말했다. 치매환자의 삶을 돌보는 의사로서 바라보는 치매와 지역사회 돌봄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치매는 어떤 질환인가요.

의학적으로는 기억력과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인지기능이 감소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임상 증후군입니다. 하지만 의학 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환자 자신과 자신 외의 세상을 동시에 잃어가는 질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 진행되면 위생관리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어려워지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무너집니다. 말기에 이르면 '나'라는 정체성마저 희미해지기도 하고요. 동시에 사회적·직업적 기능이 저하되면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하나둘 끊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슬픈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력 저하 증상만 나타나는 게 아니군요.

실제로는 훨씬 복합적인 질환입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대표적인 증상일 뿐입니다. 우울감이나 불안감, 초조함, 불면을 호소하는 분도 많고 화를 참지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치매가 악화되면 환청이나 환시를 경험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는 망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를 치매의 행동심리증상(BPSD)이라고 합니다. 보호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치매관리주치의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지역사회에서 많은 고령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상당수의 치매환자가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을 함께 앓고 있었고 생활습관도 무너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구 결과로만 접했던 내용을 실제 진료 현장에서 보니 만성질환과 치매의 연관성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약만 처방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마침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을 알게 됐고 환자를 맞춤형으로 관리한다는 취지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진료 방향과 맞아 참여하게 됐습니다.

기존 치매 진료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기존 진료가 진단과 약물 처방에 무게를 뒀다면 치매관리주치의는 환자의 생활 전반을 들여다보고 관리하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료진이 일방적으로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쌍방향 소통을 해나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외래진료는 시간 제약이 있기 때문에 약물 처방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관리주치의 제도는 이런 한계를 보완해 환자 스스로 치료와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직접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나요.

전화 상담으로 상태를 확인하기도 하고 개인 의원에서는 직접 방문진료를 하기도 합니다. 최근 시행된 통합돌봄 서비스와 연계해 의료진이 돌봄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고요. 다만 병원급 의료기관은 방문진료에 제약이 있어 현재는 병원을 중심으로 진료와 상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치매관리주치의 제도의 한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령 환자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적지 않습니다.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해 진료를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부담금이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혼자 생활하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취지의 제도인 만큼 비용 부담을 조금 더 줄여준다면 사업이 지속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선 과장은 치료 방향을 설명하고 한두 달 간격으로 환자를 만나 식습관과 수면법 등 생활관리 상태도 점검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허선 과장은 치료 방향을 설명하고 한두 달 간격으로 환자를 만나 식습관과 수면법 등 생활관리 상태도 점검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정부는 치매 조기발견을 위해 치매 검진체계를 개편하고 있다. 경도인지장애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도구를 개발해 2028년부터 치매안심센터에 적용할 계획이다. 허 과장 역시 치매 예방의 핵심은 조기발견과 꾸준한 생활관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치매관리주치의의 멘토링과 코칭을 통한 치매 위험요인의 지속적인 관리가 치매 악화를 예방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의 관리가 왜 중요한가요.

경도인지장애는 정상적인 노화와 치매 사이의 단계입니다. 기억력이 다소 떨어졌더라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면 이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약 10~15%가 매년 치매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노인의 치매 발생률이 연간 1~2%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죠. 이 시기에는 생활 속에서 조절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유산소운동, 균형 잡힌 식습관, 두뇌 활동과 사회적 교류, 양질의 수면이 모두 도움이 됩니다.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 없습니까.

현재로서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약들은 기억력 저하 속도를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치매의 원인물질로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도 나왔지만 기억력을 회복시키거나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조기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60세 이상이라면 치매안심센터에서 1년에 한 번씩 선별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보호자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치매를 질환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환자의 행동을 의지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화를 내거나 다그치게 되는데 그런 반응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보호자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치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환자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함께 배우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치매관리주치의의 필요성을 실감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따님과 함께 오신 고령의 환자분이 기억납니다. 기억력이 크게 떨어지고 일상생활도 어려워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감과 두려움이 큰 상태였습니다. 검사 결과와 약물치료, 부작용, 생활관리 방법까지 40분 정도 차근차근 설명해드렸습니다. 설명을 다 들으신 뒤 환자분께서 "너무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치매환자에게는 약만큼이나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설명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저에게도 치매관리주치의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정부는 '치매가 있어도 일상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의료진과 지역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가능한 한 살던 곳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의원은 치매안심센터와 치매관리주치의 제도를 통해 환자의 생활 전반을 꾸준히 관리하고 지역사회는 장기요양보험과 요양보호사, 주간보호센터 같은 돌봄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연결해야 합니다. 이제 의료는 진단과 처방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환자와 가족이 필요한 복지와 돌봄을 알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 의료진과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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