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단칸방에 사는 A씨는 소득이 없어 생계가 어렵지만 월 5만 원의 건보료를 낸다.’
‘B씨는 은퇴 후 넉넉한 살림에도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퇴직한 C씨는 소득이 줄었지만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는 오히려 10만 원이나 올랐다.’
‘월급 외에도 월급 수준의 임대소득을 받는 D씨는 부수적인 수입이 없는 직장 동료와 동일한 보험료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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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건강보험료 정부 개편안이 공식 발표됐다.(이하 사진출처=국민건강보험공단) |
■ 불합리한 기준으로 형평성 논란 일던 건보료 부과체계
2014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송파 세 모녀’가 방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질병에 시달리면서 소득도 없는 상태였는데 매달 4만8천 원가량의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가 부과돼 논란이 됐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건보료가 부과된 것은 연소득 500만 원 이하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불합리한 부과기준 때문이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 채 50만 원짜리 월셋방에 부과된 재산 보험료(1만2천 원)와 성별과 연령에 따라 부과된 평가소득 보험료(3만6천 원)를 내왔다.
반면 퇴직 후 연금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억대의 재산까지 보유한 사람들이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전혀 부담하지 않았다.
건강보험료는 지역가입자뿐만 아니라 직장가입자 사이에서도 불합리한 기준이 적용돼왔다. 월급 외에 임대료나 이자, 배당 소득 등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동일한 소득을 받는 동료와 같은 액수의 건보료를 냈다. 월급 외 소득이 7,200만 원을 넘는 경우에만 건보료가 추가로 부과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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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안 시행 전후. |
■ ‘소득중심 부과’와 ‘단계적 적용’이 골자인 정부안 마련
그간 불합리한 부과기준이 문제됐던 건보료가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1977년 처음 시작돼 1989년에 현행 체계를 갖춘 뒤 큰 개편 없이 유지됐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변화된 현실에 발맞춰 대폭 수정된다.
지난 23일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은 서민들의 부담을 덜고, 가입자간 형평을 제고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생계가 어려운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낮추고 소득있는 피부양자와 고소득자에게는 적정한 부담을 지운다. 다만 개편안을 급진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3단계로 나눠 각 단계를 3년씩 시행한 뒤 다음단계로 넘어간다.
■ 가입 대상자별로 개편안 살펴보니
△ 지역가입자
연소득 500만 원 이하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성별과 연령에 따라 자동으로 부과됐던 ‘평가소득 보험료’가 사라지고, 자동차와 재산에 대한 보혐료도 단계적으로 인하된다. 연소득 100만 원 이하 가입자는 ‘최저보험료’인 월 1만3,100원만 내면된다. 반면 소득 상위 2%(연소득 3,860만 원 이상)와 재산 상위 3%(재산 12억 원 이상)인 고소득자와 자산가는 보험료가 인상된다.
정부안대로라면 소득이 높은 지역가입자 상위 4%는 보험료가 평균 5만3,000원 인상될 수 있다. 종합과세소득이 올라감에 따라 보험료도 정률로 상승하는 정률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다만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인하로 인해 인상폭은 완화될 수 있다.
△ 피부양자
소득이 높고 재산도 많지만 직장인 자녀나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우선 1단계 적용대상은 연간 종합과세소득이 연 3,400만 원을 초과하거나 시가 약 11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면서 연 1,00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약 10만 명 정도다. 이들은 소득과 재산에 따라 약 월 9만 원에서 66만 원(월 평균 18만6,000원)의 보험료를 지불하게 된다. 피부양자의 인정범위도 1단계에서는 변동이 없지만 최종적으로 형제와 자매는 제외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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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가입자 개편안 전후. |
△ 직장가입자
직장인의 99.2%는 보험료에 변동이 없다. 상위 1%의 월급 고소득자와 월급 외 고소득자의 보험료만 단계적으로 인상된다.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처럼 월급 이외의 소득이 많은 경우 그 소득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부과해 형평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월급 고소득자의 월 보험료 상한선이 월 239만 원에서 월 301만5,000원으로 높아지며, 보수 외 종합과세소득 기준액은 대폭 낮아져 임대 등으로 고소득을 얻는 직장인의 보험료 부과대상이 확대된다.
월급 고소득자와 월급 외 고소득자(2017년 기준)는 월급이 월 7,810만 원 이상(세전 소득)이거나 월급 이외에 임대, 이자, 배당소득 등 연간 종합과세소득이 연 3,4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는 월급 외 소득이 7,400만 원 이상일 경우에만 부과대상이 됐지만, 종합과세소득 기준액이 3,400만 원(1단계), 2,700만 원(2단계), 2,000만 원(3단계)으로 점진적으로 낮아진다. 다만 보수 외 종합과세소득에서 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현행대로라면 7,400만 원 이상인 전체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했다면 개편안에서는 보험료 부과 기준액을 공제한 뒤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개편안에 따르면 전체 직장인 가입자의 1%에 해당하는 13만 세대의 건보료가 월 평균 13만 원 인상된 52만 원이 된다.
△ 퇴직 또는 이직을 앞둔 직장인
직장가입자는 퇴직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데 양 대상의 건보료 부과기준이 달라 퇴직 후 일명 ‘건보료 폭탄’을 맞는 사례가 있었다. 건보료 부과체계가 개편되면 소득이 낮은 퇴직자는 재산과 자동차 보험료가 인하돼 건보료가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다.
월 보험료가 인상되는 경우에도 ‘임의계속 가입제도’를 이용하면 퇴직 후 2년 간 퇴직 전과 같은 건보료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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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해 형평성을 제고한다. |
■ 현실적합성 고려한 개편 건보료 부과체계
정부의 건보료 개편안에 따르면 소득이 거의 없는 지역가입자인 ‘송파 세모녀’는 최저 보험료 대상자로 1만3,100원만 내면 된다. 현행보다 3만5,000원 가량 인하된 셈이다. 대신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피부양자와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소득에 비례한 건보료가 부과된다.
정부 개편안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구분하는 이원화된 체계를 따르고,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를 부과하되 소득파악이 어려운 지역가입자에 한해 보조적으로 자동차와 재산에 대신 보험료를 부과하는 현행 부과체계를 유지한다.
피부양자 등록제도 여전히 유효하며, 연금 소득자와 같은 신규부담자의 가계 형편을 고려해 부과비율을 조정한다. 또한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단계별로 3년간 3단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적용된다. 현실을 고려한 절충안인 셈이다.
정부안은 각계의 여론을 수렴해 오는 5월 경 공식 법안으로 제출되며, 법안이 올해 상반기에 통과되면 1년 여 간의 준비기간을 두고 2018년 하반기에 시행될 예정이다.
2월부터 국민건강관리공단은 정부 개편안으로 달라지는 건보료를 개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보료 예측서비스’(www.nhis.or.kr)를 제공한다. 가입자가 자신의 소득, 자동차, 재산 등의 정보를 서비스에 입력하면 현행 부과체계에 따른 보험료와 개편 이후 달라지는 보험료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정책은 정부와 민간을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을 합니다. 좋은 정책과 실제로 정책이 적용되는 현장을 소개하면서, 대한민국이 아름답게 성장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