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부터 달려온 성화봉송이 오늘 12월 11일 대전을 지났습니다. 과학의 도시 대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성화가 사흘간 머무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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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카이스트 구간 성화봉송이 시작하기 전 뜨거운 열기. |
아마 제일 이색적인 성화봉송이 아닐까 생각되는 장면이 오후 4시 30분쯤 대전 카이스트교 근처에서 벌어졌습니다. 바로 세계 최초로 로봇이 성화봉송을 하는 건데요, 역시 대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림픽기 하나 받아들고 저도 동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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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94번 주자 데니스 홍 교수. |
카이스트에서 진행된 이색 성화봉송은 94번 주자부터 카이스트교 앞에서 출발해 학교 내부로 들어간 뒤 오리연못을 지나 인포메이션센터까지 3km 정도를 달렸는데요. 94번 주자는 바로 데니스 홍 교수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기계공학과 교수로 로봇계의 다빈치라 불리는 데니스 홍 교수!
평창동계올림픽 옷과 모자 장갑까지 모두 갖춰 입은 젊은 청년들은 함께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사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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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로 이동 중인 데니스 홍 교수. |
뜨거운 환호 속에 채화를 마친 교수는 청년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람도 너무 많고 우르르 모든 사람이 함께 몰려가는데다가 도로 주변으로는 가까이 갈 수 없게 바리케이트를 쳐놨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러니 사진 찍는 건 정말 삐죽 하나씩!^^;;; 하늘에는 드론이 날아가면서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이 이렇게 인기 많다는 걸 실감했네요. 사람들을 헤치고 와서 보니 어!!! 그런데 어느 순간 차량에 탑승해서 이동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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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형 로봇 휴보가 운전한 자율주행차. |
그런데 교수가 내리고 나서 보니 이 차 운전석에는 앉아 있는 건 로봇이었어요. 휴보가 운전하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이동한 것이었습니다. 휴보는 지난 2015년 여기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세계재난로봇경진대회에서 우승한 로봇이거든요. 성화주자가 직접 두 다리로 달릴 뿐 아니라 이제는 로봇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다니!!! 과거 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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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형 로봇 FX-2를 타고 순서를 기다리는 97번 주자. |
중간에 연못이 있어서 좁은 다리를 지나는데 인파가 많아서 혹시나 사람에 밀려 사고 날까 걱정이 될 정도였어요. 일찍 가서 자리 잡지 못하면 아예 볼 수가 없기에 재빨리 더 앞으로 가서 다음 성화봉송 주자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앗 근데 이것은!!! 로봇에 한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아까 본 로봇 휴보가 인간형이라면 이 로봇 FX-2는 탑승형입니다.
가슴에 97번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이 친구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창작대회 우승팀 대표 이정재 군이랍니다. 성화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어서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모습이 딱 제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채화하고 달리고 몇 분 안걸리는데 이곳까지 오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는지 웅성이기도 하고... 너무 궁금했지만... 하지만 그 자리에서 꾸욱 참고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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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번 주자인 휴보의 아버지,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가 도착. |
드디어 96번 주자인 휴보의 아버지인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가 등장했습니다.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는 이 탑승형 로봇을 오 교수 연구팀이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환한 얼굴로 도착한 오 교수는 계단을 하나하나 올랐습니다. 로봇이 키가 크니 올라야겠죠? 크기는 무려 2.5m에 280kg짜리로 몸무게 70kg까지는 탈 수 있다고 하니 언젠가 저도 한번 타보고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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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치키스 후 환호하는 순간. |
드디어 토치키스가~~~~♥ 불꽃이 옮겨갈 때는 가슴 찡한 뭔가가 생기는 거 같았어요. 행여 바람이 불고 날이 춥고 불이 꺼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요. FX-2가 손을 움직이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마치 화이팅을 외치는 것 같지 않나요? 이제 새로운 주자에게로 옮겨간 불씨는 다시 한발한발 내딛습니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 로봇이라는데요, 오 교수팀은 얼마나 뿌듯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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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2의 움직임을 조종한 프로그래머. |
로봇의 움직임은 여기 바로 옆에서 조정했나봐요. 모니터에 보이는 로봇 그림만 봐도 우와~~ 하는 탄성이 나오더라고요. 과학의 도시 대전답게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원 카이스트답게 기술력의 극치를 보았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한 대전 카이스트 성화봉송은 97번 주자가 로봇을 타고 걸어가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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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로봇 휴보가 뚫고 성화를 전달한 벽. |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도 보고 한참을 아쉬움에 기웃거렸네요. 사람들이 빠지고 난 뒤 텅빈 도로에 벽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95번 주자인 휴보가 뚫고 간 벽이랍니다. 재난대응로봇답게 성화봉송하다가 벽을 만나자 드릴로 뚫고 봉을 오 교수에게 전달했거든요. 이때 잠시 넘어질 뻔 했다니 그래서 멀리서 탄성의 소리가 더 들렸었나봅니다.
이후 엑스포과학공원 한빛탑광장에서 로봇종묘제례악, 시립연정국악원, 마마무 공연 등 축하공연이 이어지며 대전 성화봉송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오늘 정말 추웠습니다. 바람도 불고 눈도 날리고 오후 늦은 시간이라 더 추웠지만 사방에서 들렸던 응원의 소리와 화이팅, 그리고 이 순간을 함께 하려고 찾은 같은 마음의 사람들 덕에 잠시 추위를 잊었답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현정 train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