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갈등은 늘 필연적이나 남북관계라는 주제만큼 국민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분야가 있을까 싶다.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포함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국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힘든 영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토론하고 국민들이 만들어가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진행 중에 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가 10월 26~27일 이틀간 경기도 화성 YBM연수원 4층 컨벤션홀에서 전국 160여명의 국민참여단 주도 속에 ‘대북 인도적 지원’ 정책에 대한 종합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통일비전시민회의가 주최하고, 한국리서치 주관, 통일부와 서울시 후원으로 열렸다.
 |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 종합토론회’가 10월 26~27일 이틀간 경기도 화성 YBM연수원 4층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
올해 권역별 4차례 치러진 토론회 토대 위에 종합토론회가 개최됐다. 권역별 토론회에는 남녀 균등 200명씩, 20~60대 이상까지 연령별, 정치성향별로 균등하게 모인 762명의 일반시민이 참여해 집중적인 숙의토론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 사회적 대화가 더 의미있는 것은 비단 시민들이 참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민들이 직접 정책의 문안을 만들고, 다수결이 아닌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
전국에서 선발된 160여명의 국민참여단의 주도 속에 ‘대북 인도적 지원’ 정책에 대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
종합토론회는 평화통일문제 전반에 관한 합의에 앞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대화와 합의를 시도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앞으로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시민사회 차원의 통일국민협약 기본안을 마련하게 되며 이후 국회 및 정부 등과 논의를 거쳐 통일·대북정책에 대한 사회적 협약의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시민참여단들은 모두 15개의 조로 나뉘어 1박2일간 분임토의의 시간을 가졌다.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각 조에는 퍼실리테이터가 진행자로 참가하고 기록원이 동석했다. 인도적 지원 개념과 대북 인도적 지원 현황에 대한 전문가 발제와 질의응답 후 대북 인도적 지원의 긍정·부정 효과와 해법에 대해 분임토의를 진행했다.
 |
토론자들이 분임토의를 통해 안건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
개개인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한 후 공통점에 초점을 두고 차이를 이해하며 각 조의 분임 합의안을 취합해 나갔다. 1차 투표와 2차 투표를 통해 각 조의 분임 합의안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토론자들의 손에는 각 안건에 대한 동의안과 반대가 표시된 총 6개의 비표가 들려있었다. 이들은 이 비표를 통해 합의안을 모아나갔다.
모든 참여단의 만장일치 합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며 ‘전적으로 동의’만 만장일치로 인정할지 아니면 ‘대체로 동의’까지 포함할지 등의 만장일치 수준도 토론자들의 합의에 맡겼다. 이토록 무겁고 중요한 주제를 이렇게 소수의 의견 하나하나까지 존중하며 진행해본 적이 있을까? 대화와 경청, 토론의 힘은 놀라웠다.
.JPG) |
6개의 비표로 최종 분임토의 합의안을 결정 중인 토론자들. |
60대 참가자 이호용 씨는 “이념갈등만 하고 싸움만 하는 것 같아 그동안 통일에 특별히 관심이 많진 않았다. 뉴스에서 말하는 것 말고 시민들의 의견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구나 싶어 참석했다. 서로 대화를 하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신기했다. 자신이 접했던 정보에만 의존하던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사회적 대화가 남북정책 뿐 아니라 남남갈등을 줄이는 좋은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고 참여 소감을 말했다.
.JPG) |
분임토의 합의안을 발표 중인 이호용 씨. |
20대 참가자 강수정 씨도 “처음엔 과연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나 합의가 가능할까, 내 의견을 들어줄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참여해 보니 세대 차이에 대한 걱정도 기우였다. 놀랍게도 서로 솔직한 의견을 피력하며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이번 자리가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이 됐다. 통일에 대한 생각도 더욱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이번 토론회가 더 반가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회적 대화는 시민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체계로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에는 보수, 진보, 중도, 종교계 등 600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
분임토의안을 바탕으로 종합 합의안을 정리 중인 토론자들. |
현장에서 만난 이태호 공동운영위원장은 “대북정책은 논쟁도 심하고 변화폭도 심하여 일관성과 지속성 있는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확고한 사회적 합의안을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남북 신뢰도 더 가능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는 도출도 어렵지만 단기적인 시각으로는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비난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결정을 내리며 존중하는 토론 과정은 사회적 대화 이상의 효과를 남긴다”고 덧붙였다.
 |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앞으로도 남북정책의 민관협력시스템을 키워나가는데 앞장 설 예정이다. |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전국에서 활성화되어 장기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사회적 대화의 개최 뿐 아니라 꾸준히 토론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를 위한 의제 설명 자료집을 제작해 지자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자료집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찬성, 반대 의견을 함께 담을 계획이다.
이날 전원 합의에 이른 합의안은 탄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사회의 주체와 새로운 민관협력시스템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사회적 대화의 경험을 통해 토론 문화가 마련된다면 우리 사회에 끼칠 효과는 더 커질 터! 남북대화의 시계추가 때로 천천히 흐른다고 하여 시민이 멈춰있을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