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병원에 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이번엔 전문의약품의 도움 없이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 시간을 내어 병원을 찾았다.
지도 앱을 실행해 이비인후과를 검색하니 반경 3km 이내에 16개의 병원이 검색됐고, 그중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사람이 그나마 많지 않을 것 같은 평일 오전 10시.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는 이미 마스크를 쓴 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방문한 날 내가 기다린 시간은 약 1시간.
단순한 감기로 약 5분간의 진료를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 기다림도 친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방 공기업에서 근무하던 친구는 지난달 새벽 갑자기 구토와 오한으로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다지 위급하지 않다는 판단 속에 병원 몇 곳을 돌다가 가까스로 한 응급실을 찾을 수 있었고, 거기서도 2시간을 더 기다린 뒤에야 수액 등의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응급실을 전전하다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례들이 계속 들려오는 오늘날, 모든 국민이 건강과 안전을 보장받을 방법은 없을까?
모든 국민의 건강권을 위한 기본적인 의료시설인 보건소. 내가 거주하는 수원시에는 네 개의 구 모두 상당한 규모의 보건소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상 진료 체계 점검과 거점지역 의료 센터 확대 등을 적극 추진 중이고, 더 안정적인 지역 의료 체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시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지역필수의사제'다.
마침, 이 시범 사업을 시행 중인 네 개 지자체 중 하나인 강원특별자치도의 담당자를 직접 만나 지역 공공의료의 현주소와 지역필수의사제 시범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생겨,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도청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지역필수의사제에 대해 먼저 알아보았다.
우선 이 제도는 명칭이 비슷한 지역의사제와는 다른 정책이다.
현재 뜨거운 감자가 되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지역의사제는 지역 거점 의과대학 신입생 중 일정 비율을 사전형으로 선발해 학비 등을 지원하고, 졸업 후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게 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현재 정부와 의료 단체 등을 중심으로 소통이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의 주제인 지역필수의사제는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시범 사업으로, 지역 의사 양성이라는 취지는 같지만, 지원 방식과 내용, 의료 활동 기간 등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지역필수의사제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해당 화면은 지난 2월 10일 자 지역필수의사제 시범공모 참여 시작에 관한 뉴스이다. (출처=KTV 국민방송)
정부는 시범 사업을 위해 지난 2~3월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해, 4월 1일 강원특별자치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 네 곳을 선정했다.
선정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필수의사제를 운영하며 시범 사업에 참여한 의사에게 지역 근무 수당과 정주 여건을 지원한다.
근무 수당은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하며, 정주 여건은 지자체별 여건에 따라 다르게 제공된다.
그렇다면 강원도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인터뷰 당일, 공공의료과 필수 의료지원 팀장인 강의현 팀장을 만나 강원 지역의 지역필수의사제와 공공의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이날 인터뷰 주제인 지역필수의사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도)의 공공의료에 대해 질문했다.
지금은 이사했지만, 그래도 내가 거주하는 곳에서 차로 20분 이내에 상급 종합병원 세 곳이 운영 중이다. 그중 한 곳은 권역외상센터와 거점응급의료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강원도를 비롯한 타 시도는 비교적 비슷한 수준의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필수 의료 과목 인력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한다.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지역의 필수 의료 부족은 현재 진행형" 이라고 했다.
지방 의료 인력 부족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제한되고, 건강 수준 격차가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지역필수의사제.
정부는 지역의료 전문의 인력 확보를 위해 작년에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추진방안을 마련했고 올해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강원도청 공공의료과 강의현 팀장. 지역 필수 의사제의 시행 배경과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 중이다.
대상은 5년 차 이내인 저 연차 전문의로, 지역에 필요한 의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유인책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지역필수의사제는 총 4개의 지방자치단체, 16개의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필수 의료 과목으로 분류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 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과목의 의사가 대상이라고 했다.
강원도는 이번 시범 사업에 배정된 24명의 의사 모집이 모두 완료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참고로 강원도에서는 지역 필수 의사제에 참여한 의사들에게 지급되는 400만 원의 근무 수당 외에도 100~200만 원 상당의 현금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수한 관광 인프라를 활용해 도내 리조트 무료 숙박 및 시설 할인 등, 가족 여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기관과의 협약 체결과 혜택 확대를 위한 발굴을 지속하고 있다고도 했다.
현장의 반응을 물어보니 아직 시행 초기 단계여서 참여한 의사들의 만족도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지역필수의사제에 관한 관심은 상당하다고 한다.
"도내 참여 병원 일부에서는 TO를 더 늘릴 수 없는지 문의하는 등 현장의 반응은 좋은 편인 것 같다." 라는 답변에서 지역 필수 의사제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지역필수의사제와 같은 정책이 지방 공공의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강 팀장은 현재 시범 사업으로 시행 중인 지역필수의사제뿐 아니라 시니어 의사제, 공공 거점병원 등 지방 공공의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들 모두 일정 부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라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역의사제를 예로 들며, 실제로 지방에서는 특정 진료과가 아예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응급 의료시설 부족으로 생명을 잃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오랜 기간 꾸준히 의료에 힘쓸 의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집에서 가까운 상급 종합병원의 외관.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항상 방문객으로 가득하다. 나에게 익숙한 이런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 않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생활 여건이 좋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지역에서 봉사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 의사에게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국민의 소중한 세금인 한정된 예산으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만큼 두 가지 균형을 고려하며 보다 나은 공공의료 환경 조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작은 프로젝트나 캠페인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에게 인간적인 존중이 기반이 된 환경을 만들고, 오랜 기간 지역에 봉사하는 의사를 지역사회가 예우하는 방안에 대해 지속해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강의현 팀장은 지역 필수 의사제를 넘어 의사가 지역을 찾아오고, 지역에서는 의사를 존중하는 선순환 구조의 문화 정착의 중요성에대해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시골의 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돈을 내고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을 넘어, 지역에 오랫동안 근무하는 의사들을 기억하고 배려한다면 또 다른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라고 말하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계속 고민해 보겠다고 웃어 보였다.
실제로 강 팀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참여 의사들의 정주여건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수도권에서 활동하던 의사가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사명감으로 지역에 봉사하는 의사를 위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자주 언급했다.
자연스럽게 나 역시 더 나은 공공의료 환경은 어떤 모습일지 함께 상상하게 되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이야기를 하며 지방 의료의 현실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방이라고 할 지라도 의료 인프라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표준화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와 필수 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지역 필수 의사제라는 정책 하나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과 홍보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역필수의사제는 2026년 6개 시·도로 대상을 넓혀 확대할 계획이다.
정책의 이름처럼 지역에 꼭 필요한 '필수' 의사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인 지역필수의사제,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누려온 내가 '건강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의사가 없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국민이 있다.
의료 선진국으로 불리며 의료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대한민국에서, 공공의료에 관한 관심을 조금 더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더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진료받을 병원과 의사가 없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