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을 며칠 앞두고 있던 날, 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점수가 높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했다는 아들. 평소보다 유달리 서론이 길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해보라고 했더니 새로운 휴대전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새로운 휴대전화가 왜 필요한지 다시 물어보자, 터치가 잘되지 않고 데이터 속도도 친구들보다 많이 느리다는 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처음 휴대전화를 사준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당시에도 최신 기종을 구매해 준 것은 아니었기에, 인터넷 사용이 잦은 요즘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하면 불편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고민해 보겠다고 답한 뒤, 이튿날 몇 곳의 대리점을 직접 찾았다.
현명하게 휴대전화를 구매하려면 발품을 파는 것이 필수라고들 한다. 흔히 '성지'라고 불리는 곳까지 찾아다닐 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은 아니지만, 관내 대리점 서너 곳을 돌아다니며 할부원금과 부가서비스 유지 조건 등을 비교한 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에서 휴대전화를 바꾸곤 했다.
번화가에 있는 휴대폰 상점. 오는 3월 말부터는 개통 전 안면인식을 통한 본인인증이 필수화된다.
그렇게 첫 번째 대리점에서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 예상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한 발짝 떨어진 채 응대를 기다렸다. 내 앞에서는 휴대폰 개통 시 왜 안면인식을 해야 하느냐며 대리점 직원에게 항의하는 고객이 있었고, 직원들 역시 난처한 듯 "조금 더 알아보겠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인터넷 언론을 통해 앞으로 휴대전화 개통 시 안면인식이 필수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해당 기사 댓글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부터, 국가가 생체 정보 수집을 일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가득했다. 당시에는 나 역시 왜 굳이 개통 과정에서 생체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당장 나나 가족이 휴대폰을 바꿀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해 가볍게 넘겼던 것 같다.
정부에서 발표한 휴대전화 개통 시 강화된 본인인증 방법. 개통 전 신분증과 본인 생체 정보를 비교하는 절차가 추가된다.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책뉴스 2025.12.19)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아이의 휴대전화를 바꿔야 했고, 때에 따라 나 역시 2년 넘게 사용한 휴대폰을 교체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시행하려는 정책이 무엇인지, 왜 추진되는지, 국민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자리를 옮겨 카페로 이동한 뒤 해당 정책의 내용과 시행 배경을 먼저 찾아보았다.
정부가 본격적인 시행을 예고한 정책은 '휴대전화 개통 시 본인인증 강화'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 단순히 생체인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통 시 제출한 신분증 사진과 실제 인물이 동일인인지 실시간으로 대조하는 안면 인증 절차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개통 절차가 강화되는 것이다.
대리점에 방문해 대면 개통을 할 때의 시나리오. PASS 앱을 통해 실물과 본인 생체 정보를 비교하는 과정이 의무적으로 더해진다.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안면인증 이용 시나리오 배포 자료)
대리점 등을 방문해 개통하는 대면 개통의 경우, 기존에는 요금제와 휴대전화를 선택한 뒤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출하면 대리점에서 스캐너를 통해 신분증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개통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분증 제출 이후 진위 확인 과정에서 안면인증을 통한 본인 확인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로서는 휴대전화 개통 과정이 길어져 다소 불편해졌다고 느낄 수 있는 이 정책, 도대체 왜 시행되는 것일까? 정부 보도자료와 관계 부처 설명을 종합해 본 결과, 본인인증 강화의 가장 큰 이유는 보이스 피싱을 비롯한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각종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이스 피싱을 비롯한 각종 피싱, 문자결제사기 범죄는 분기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대규모 조직이 검거되었다는 소식도 자주 들려올 만큼, 관련 범죄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퍼진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보이스 피싱 피해액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하자,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고민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생체인식을 통한 본인확인 강화는 지난 3월 발표된 보이스 피싱 범죄 대응 강화 방안과 8월 정부 합동 발표인 보이스 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이행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며, 국정과제 23번 '국민의 안전과 보편적 삶의 질 제고를 위한 AI 기본 사회 실현' 중 '피싱, 문자결제사기 등 디지털 민생범죄 대응 강화'에 따라 시행되는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보이스 피싱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아본 경험이 있고, 언론을 통해 접한 피해 사례들을 심각하게 느껴왔기에 정부의 본인확인 강화 취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개통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직원들과 국민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공감대가 크지 않아 보였다.
앞서 언급했듯 안면인식을 왜 해야 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부터, 휴대전화를 개통하려면 반드시 안면인식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계도기간이라 원하지 않으시면 오류 등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해 기존 방식으로 개통을 도와드릴 수 있다"라고 답하는 대리점 직원까지, 아직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원역 지하상가의 휴대전화 매장. 내국인보다 외국인의 개통이 특히 많은 곳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부정적인 반응이 특히 많았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만 인증 대상에 포함되어 해당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은 제도에서 배제된다는 점, 그리고 정부가 근절해야 할 범죄 예방의 부담을 국민에게 과도하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띄었다. 참고로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국가보훈증, 장애인등록증, 외국인등록증 등으로 인증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는 한 대리점의 이슈 상황으로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아이와 내 휴대전화를 교체할 수 있었다. 개통을 마치며 현장 직원에게 본인확인 강화 제도에 대한 분위기를 묻자, 하루에도 열 명 정도는 인증 여부를 문제 삼으며 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개통을 서두르는 경우가 있다며, "본격 시행 전 계도기간인 만큼 충분한 홍보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라는 개인적인 의견을 전했다.
아이와 함께 나의 휴대전화도 바꿨다. 별도의 인증절차는 거치지 않았지만, 오는 3월 말부터는 의무적으로 인증을 거쳐야 한다.
과거 정책 관련 세미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보편적인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일수록 시행 취지와 필요성, 영향에 따라 추진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속한 추진이 필요한 정책도 있지만,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전제로 해야 하는 정책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휴대전화 개통 시 본인확인 강화 방침이 이러한 공감대를 충분히 얻은 후 시행되었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개인정보 유출 관련 기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신분증 사진과 실제 인물이 동일한지 확인한 뒤 결괏값만 저장하고 생체 정보는 별도로 보관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설명은 다소 아쉽다.
오는 3월 23일부터 본격 도입될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시행하는지, 여러 대안 중 왜 생체 정보를 활용해야 하는지, 혹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더 친절한 설명이 뒷받침되면 좋겠다. 실제로 일선 대리점 직원들조차 정책 시행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홍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포폰 개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보이스 피싱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분명한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남은 계도기간 동안 정부 주도의 충분한 설명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얻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제도의 변화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탑승할 국민이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