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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작가
더하고 뺄 것 없는 강건한 문체로 여성해방을 노래하다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시인 고정희 생가/해남
고정희 시인(1948~1991)의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김남주 시인(1946~1994)의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로 10분 거리 이웃마을이다. 매년 6월 고정희 생가에서는 고정희문화제가, 11월 김남주 생가에서는 김남주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길을 가다가 불현 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시집 지리산의 봄(1987)에 실린 고정희의 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의 부분이다. 퇴계의 사랑 두향을 생각하며 지은 시라고 한다. 퇴계는 48세, 단양군수를 하던 시절 18세의 관기 두향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퇴임하던 날 퇴계는 치마폭에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시 한수를 남기고 두향의 이별선물 분매(盆梅)를 들고 귀향한다. 22년이 흘러 일흔 살의 아침에 퇴계는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고, 두향은 강물을 몸을 던져 그 뒤를 따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땀이 밴 옷처럼 진한 슬픔이 배어나오는 사랑의 절창이다.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생가의 방. 한 편 더 읽어보자. 「가까이 오라, 죽음이여/ 동구 밖에 당도하는 새벽 기차를 위하여/ 힘이 끝난 폐차처럼 누워 있는 아득한 철길 위에/ 새로운 각목으로 누워야 하리/ 거친 바람 속에서 밤이 깊었고/ 겨울 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모닥불이 어둠을 둥글게 자른 뒤/ 원으로 깍지 낀 사람들의 등 뒤에서/ 무수한 설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서걱거린다」 같은 시집의 시 땅의 사람들 1, 죽음과 폐차와 어둠을 새벽과 각목과 모닥불로, 거뜬하게 이겨내는 살아남은 자의 리듬 넘치는 시어들.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같은 면 봉학리로 10분 거리 이웃마을이다. 김 시인은 1946년, 고 시인은 1948년생으로 두 살 차이다. 김 시인은 1994년 48세에 췌장암으로, 고 시인은 1991년 43세에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 타계하였으니, 두 사람의 향년과 생몰연대도 비슷하다. 한 동네에서 걸출한 두 시인이 태어난 것도 그렇고, 1980년 광주의 5월을 함께 관통하였으며, 시대의 맨 앞에 서서 한 사람은 민족해방 전사로, 또 한사람은 여성해방 전사로, 시인이면서 전사(戰士)의 별칭으로 얻고 있는 점도 그렇다. 자그마하고 깡마른 몸집에 커다란 두 눈, 연약하면서도 완강한 조선여자의 골상(차미례)을 가진 페미니즘 시인이며 민중 시인이며 서정 시인이었던 고정희. 고정희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무렵이다. 1970년 광주의 새 전남, 주간 전남의 기자로 일하면서 시대의식과 여성문제에 눈을 떴다.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 등을 추천(박남수) 받아 등단했다. 1979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김준태, 송수권 등과 목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 분과위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4년 기독교 신문사, 크리스천 아카데미 출판간사를 지내고,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자그마하고 깡마른 몸집에 커다란 두 눈, 연약하면서도 완강한 조선여자의 골상(차미례)을 가진 시인은 남녀평등의 대안사회를 모색한 여성주의 공동체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초기 여성운동에 큰 발걸음을 남겼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 낳았지//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사랑을 낳고 생명을 낳고, 자유와 해방과 평화와 살림을 낳고, 살림은 평등을 낳고 평등은 행복을 낳으니,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그것은 새로운 세상! 시집 여성해방출사표에 실린 시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는 이렇게 이어진다. 남녀차별과 사회모순을 꿰뚫어 보고, 더하고 뺄 것 없는 강건한 문체로 여성해방을 노래한 고정희는 시와 삶을 하나로 밀고 나갔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단정한 글씨로 써내려간 시편들, 그의 생가 방에 걸려있는 고행, 청빈, 묵상이란 세 단어가 그의 삶과 문학에 임하는 자세를 잘 보여준다. 시인은 살아있는 동안 10권의 시집을 냈다.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이 시대의 아벨(1983)을 펴내며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 장시집 초혼제(1983)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여성해방출사표(1990) 등 등단 10여년에 10권의 시집을 냈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시를 썼는지 알 수 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깨끗한 마음, 단정한 필체로 써내려간 시편들. 고행, 청빈, 묵상이라 쓰인 그의 방에 걸린 작은 액자가 시인으로서의 삶과 자세를 잘 보여준다. 고정희는 우리 시사에서 여성문제를 최초로 폭넓게 탐구한 여성주의 시인으로, 그리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준열한 증언을 하였던 민중 시인으로, 또 기독교 정신과 생명에 대한 도덕적 순수함으로 진솔한 내면을 보여 준 서정 시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고정희의 유고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부분이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매년 6월 고정희 생가에서는 고정희문화제가, 11월 김남주 생가에서는 김남주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 이광이 작가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이광이 작가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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