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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로 본 코로나 이후의 한국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0.05.11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10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은 정부가 현재의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향후 펼쳐질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근거를 제공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코로나19 이후의 변화 방향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꾸준히 제기해온 제안과 조언들이 폭넓게 수용돼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보건복지부에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며, 감염병 전문병원과 국립 감염병 연구소 설립을 추진한다는 부분이다.

감염병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대부분의 재난 전문가들이 1순위로 꼽아온 가장 시급한 위협이다. 빌 게이츠도 오래 전부터 전쟁보다 무서운 감염병의 위험을 경고하고 그가 운영하는 재단 차원에서 여러 대비를 해왔다. 그간의 감염병 발생 패턴을 보면 갈수록 더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 앞으로 감염병 대응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전문병원과 연구소 설립은 꼭 필요한 일이다. 감염병과 같은 재난을 가져오는 것은 자연이라 하더라도 그 재난을 키우는 것은 재난 대응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조직, 즉 재난 거버넌스이다. 똑같은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더라도 북한이 입는 피해는 남한이 입는 피해의 수십배에서 100배가 넘는다. 대응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업무의 성격상 복지 전문가가 수뇌부를 구성하면 보건 분야에 제약이 따르고 보건 전문가가 의사결정을 하면 복지 분야에 제약이 따르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이번 기회에 복수차관제를 도입해 이런 간극을 메우겠다는 것은 재난 거버넌스의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질병관리청 승격과 전문성·독립성 강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미국의 경우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히는 카트리나 대응에 실패한 이유는 9·11 테러 이후 잘못된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해 연방재난관리청(FEMA: 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약화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재난 현장에서 전문가가 독립된 권한을 가지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를 낳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등의 경제적 고통이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일용직을 넘어 정규직과 중견기업, 대기업 종사자들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자원과 정책을 총동원” 한다는 부분이다.

모두가 고통받고 있지만 그 고통은 고르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제로 그것을 할 수 있는 계층과 직종에 해당하는 일이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국민들이 많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로부터 시작해서 중소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등의 순서로 고통의 도미노가 밀어닥친다. 그 고통의 강도는 대공황을 방불케 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바, 상생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다 함께 죽게 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개인들뿐 아니라 기업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면 코로나19 이후 미주와 유럽에서 감산된 차량만 해도 250만 대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설비투자가 크고 수많은 외주업체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지금과 같은 상황이 1~2개월만 더 지속 되어도 외주업체부터 도산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하청은 물론 원청도 되살아나기 어렵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자동차 대기업들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결제를 최대한 늘리는 등 외주업체를 돕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경제의 인프라를 지키기 위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한 특단의 상황이다. 미국은 1조 달러를 쓰기로 했고 영국은 전 국민 급여의 80%를 정부가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자원과 정책의 총동원”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한국판 뉴딜’을 통해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선도형 경제로 전환’한다는 부분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추격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더 이상의 성장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여왔다. 고성장 국가의 비결은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산업구조 혁신에 있음은 지난 수십년 사회과학 연구의 상식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존의 추격형 모델에서의 성공으로 인한 경로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변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데에도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다. 성장률이 25년째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다가오는 위기를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변화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는 견고하게 엮인 과거의 시스템에 균열을 냈고, 강제로라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한국판 뉴딜은 제조업 시대의 산업모델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산업구조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이 있었다면,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는 5G, 데이터 인프라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가 있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3주년 특별연설은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인식과 미래전망적인 정책과제들을 제안하고 있어서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지나간 시대에 풀지 못한 과제들은 지나간 시대에 남겨두고,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이런 희망을 공유하고 지금까지처럼 협력한다면 코로나19는 오히려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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