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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전략산업, 왜 정부가 국민성장펀드로 지원해야 하는가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전략산업의 중요성은 이제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니다. 신문과 방송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술 패권, 산업 주도권에 대한 소식을 전한다. 미국은 이른바 'CHIPs 법'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390억 달러, 반도체 연구·개발(R&D)에 137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역시 '중국제조 2025' 정책 등을 통해 반도체 분야에만 562조 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하며 추격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AI, 바이오,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형 모빌리티에 이르기까지 각국은 지금 사실상의 산업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왜 국가가 첨단전략산업을 이렇게 대규모 자금으로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국가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야지, 막대한 자금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원칙적으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첨단전략산업처럼 국가의 장기적 존립과 직결된 분야에서는 다른 경제학적 접근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조지프 스티글리츠, 대니 로드릭, 에릭 라인어트 등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에 회의를 드러내고, 정부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첨단전략산업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불가피하다. AI와 반도체와 같은 분야는 불확실성과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성과를 창출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어, 단기 수익에 집중하는 민간 시장만으로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는 단순한 시장 보완자가 아니라, 기초 연구와 범용 기술에 대한 장기 투자를 선도하고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먼저 부담하는 전략적 주체로 인식된다.

최근 주목받는 시각 중 하나는 국가가 미션(Mission)을 설정하고 그 수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핵심적 혁신의 상당 부분이 민간이 아니라 국가를 기원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폰을 구성하는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 음성 인식 등 핵심 기술 다수가 미국 국방부 등의 연구개발 투자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례다. 첨단 IT분야뿐 아니라 바이오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초 연구의 60~75%는 공공자금으로 이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국가는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단계의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을 떠안으며 기술의 씨앗을 키워 왔다. 이러한 선행 투자는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되었다. 첨단전략산업 육성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국가가 미션을 설정하고 리스크를 감당하며 장기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다만 중요한 전제가 있다. 국가가 위험을 부담한다면, 그 투자로부터 발생하는 성과와 수익 역시 국가와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감당하는 리스크와 투입되는 자금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이나 이해관계자에게만 이익이 귀속되는 구조는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정책금융의 방향과 대상은 전문성과 투명성을 갖춘 절차를 통해 결정되어야 하며, 단기 성과나 정치적 고려에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 과거 정부와 국책금융기관이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경험은, 동시에 그만큼의 책임과 숙고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함께 상기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성장펀드'는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산업은행 내 75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과 민간자금 75조 원을 결합한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총 150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전략산업과 그 생태계 전반을 지원해 향후 20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준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국민성장펀드가 민간자금 참여의 마중물이 되어, 우리 경제의 자금 흐름이 부동산 투기나 단기 차익을 위한 투자가 아닌, 생산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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