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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필요로 하나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재능 VS 열정

2015.10.20 변종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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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직업 중 하나인 화가는 일반적으로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그림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화가가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많은 화가가 재능보다 꺼지지 않은 열정으로 미술 세계를 얼마나 풍족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고흐, 고갱, 세잔, 루소, 모네, 마티스 등등…. 타고난 재능 못지않은 열정으로 예술적 성취를 이룬 화가들의 삶은 위대한 화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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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마티스, 피카소, 모네.

미술사에는 피카소처럼 재능과 열정을 모두 갖춘 화가도 있다. 재능만 놓고 보면 현대미술사에서 피카소를 능가할 화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10대에 이미 대가들을 뛰어넘는 천재성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피카소의 진정한 위대함은 선천적 재능을 낭비하지 않은 창작의 열정에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자기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움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야말로 피카소가 20세기 최고의 화가에 오를 수 있었던 실질적 힘이었다.

그렇다면, 재능의 기준은 무엇인가? 현대미술에서 화가의 재능은 르네상스 시대나 인상주의 시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르네상스화가들은 그림은 물론 건축, 조각, 음악, 철학,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재능을 지니는 것이 위대한 화가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 경력을 적을 때 수학, 과학, 철학, 건축 등등 모든 분야에 능력이 있다고 언급한 뒤 그림도 그릴 줄 안다고 첨언 했다고 한다.

다방면에 걸쳐 출중한 재능을 발휘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지만, 그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열정이었다. 인체해부도, 최후의 만찬, 비행기술, 낙하산 등 관심분야마다 쏟은 열정이 그를 르네상스 인의 대명사로 불리게 한 동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더불어 동시대 최고의 대가였던 미켈란젤로는 80이 넘은 고령에도 석공 세 사람의 몫을 몇 분 만에 해치울 만큼 조각영역에서 비교대상이 없는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 그러한 미켈란젤로는 죽기 8일 전까지도 돌과 조각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열정적인 조각가였다.

그렇지만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에 찬사가 끊이지 않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숙련된 솜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안다면, 결코 그렇게 감탄할 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재능은 하나의 기준으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해졌다. 예컨대 인물화를 그리지 못해도 인물작품을 제작할 수 있고, 색채를 잘 다루지 못해도 작업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직접 그리거나 제작하지 않고 독창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유명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현대미술은 미술가의 재능이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것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재능의 의미가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변화된 재능을 뒷받침 하는 것은 여전히 열정이다. 크리스토, 세자르,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은 뜨거운 열정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넓히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약, 열정과 재능 중 위대한 작가가 지녀야 할 요소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역시 열정이 아닐까 싶다. 예술은 스포츠와 같이 국가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분야는 아니다.

미술은 스포츠분야 달리 뛰어난 재능보다 스스로 관심분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열정으로 값진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분야이다. 재능이 부족해도 열정을 꺾지 않으면 최소한의 자기성취는 이룰 수 있다.

국내의 수많은 화가 중 창작활동의 시간이 최소 30년 이상 된 작가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 유지한 창조적 열정에 대한 경외와 감동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 명의 작가가 위대한 미술가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몇십 년의 창작 활동과 사후 50여 년 이상의 객관적 평가까지 최소 1세기가 필요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이름이 기록된 화가들만 보더라도 최소 50여 년 이상의 객관적 평가를 유지한 작가들이 국민적 사랑을 받는 화가로 남아있다.

2014년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했던 박수근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이다. 박수근은 보통학교졸업의 얕은 학력과 미술 전문과정을 학습하지 못한 핸디캡으로 당시 일본 유학파들이 주도했던 미술계에서 모멸과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그 누구보다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예술가적 성공의 원동력은 열정이었다. 박수근의 성공신화도 재능보다 끈기와 열정이 예술가에게 필요한 요소임을 말해준다.

박수근 외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김기창, 박생광, 이응노, 전혁림, 오윤, 손상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은 자신의 재능보다는 열정적인 삶으로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한 공통분모를 지녔다. 현대화가들 중에는 특정한 대상을 그리는데 열정을 쏟는 작가도 있다.

독일의 한 화가는 30년간 유리병만 그리고, 일본의 한 화가는 날짜를 써넣는 작업을 수십 년 동안 거르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 가지에 열정을 받치는 화가의 모습은 성공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미술계에는 언제나 주목받는 신예가 등장한다. 그러나 꾸준하게 자기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화가는 드물다. 1970년대~1990년까지 한국에서 출간된 많은 미술잡지를 보면 항상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 이른바 영아티스트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중 현재까지 꾸준하게 작업을 유지하는 작가는 10% 내이다. 최근에도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신진화가들이 많다. 그러나 20년~30년 후에도 꾸준히 자기 세계를 탐구하며 현재의 열정을 유지하는 작가가 얼마나 될지 자못 궁금하다.

재능은 부러움의 대상에 머물 수 있지만, 열정은 삶을 훨씬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작품의 생명은 미적 가치의 유무에 따라 좌우되지만, 작가의 생명은 꺼지지 않은 열정으로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을 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재능은 열정에 의해 완성된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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