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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 귀국’ 칸 영화제 차분히 복기하라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2017.05.30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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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이기는 비즈니스는 없다고 한다. 소비자를 가르칠 생각을 하면 기업은 망한다고도 한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필요’를 인식하고 그것에 부응하는 것은 경영의 기본이다. 이는 미디어라는 문화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디어 산업 전반의 디지털 기술 혁명은 미디어 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종이신문이  그야말로 생존 차원에서 웹과 모바일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디지털 풍요(digital abundance)의 시대다.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는 미디어 빅뱅은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중세가 종언을 고한 것 이상의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디어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미디어의 영향 속에 살고 있다. 미국에서는 미디어 영역이 항공 산업과 더불어 국가 최고 산업으로 꼽힐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혁신적인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전통 혹은 정통 미디어는 조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통 미디어는 과연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활자매체의 죽음을 처음 선언한 사람은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언이다. 그는 1964년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에서 활자시대의 종언과 전자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하나의 감각에만 의존하는 배타적 활자매체인 ‘핫 미디어’시대는 가고, 여러 감각을 활용해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포괄적 성격의 전자매체인 ‘쿨 미디어’시대가 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맥루언이 활자시대의 종말을 선언한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구텐베르크’는 건재하다. 전통적 의미의 올드미디어와 혁신적 의미의 뉴미디어 모두 상호 보완 속에 발전해나가고 있다.

영화의 영역 또한 비슷한 논의가 가능하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각광받는 넷플릭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입자만 5,7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는 통신, 방송을 넘어 영화 쪽 생태계까지 뒤흔들 정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경계 붕괴와 경쟁 격화는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창업 당시 인터넷으로 영화를 유통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넷플릭스가 자체 콘텐츠를 확장하면서 할리우드의 인력을 급속히 빨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넷플릭스와 할리우드 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넷플릭스가 공동의 적 1순위”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도 논란의 표적이 됐다. 칸영화제 출품작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로 배포될 예정으로, 칸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에 경쟁부문 문호를 개방한 것은 70년 역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옥자’ 시사회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영화 스크린에 제작사인 넷플릭스 로고가 나타나자 객석에서 야유가 나왔고 상영이 일시 중단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보수적인 프랑스 극장협회(FNCF)가 자신들의 밥그릇이 작아질까 염려해 넷플릭스 영화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칸영화제의 시선으로 볼 때 전통적인 배급방식에서 벗어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제로 제작된 영화가 눈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 소비의 패턴은 크게 변했다. 넷플릭스는 시대의 조류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가면 거대한 모순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칸 조직위원회는 내년부터 경쟁부문 진출작을 프랑스 내 극장 개봉작으로 한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봉 감독은 칸영화제 개막에 앞서 가진 국내 인터뷰에서 “스트리밍 혹은 극장이라는 것도 결국엔 공존할 것”이라며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가 중요한 관점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영화를 접하는 형태는 다양하다. 얼마나 더 편안하고 손쉽게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럼에도 칸영화제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닫힌’ 자세를 보였다.

‘옥자’는 섬세한 연출력과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아온 봉 감독이 세계 최대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와 손잡고 만든 작품으로 기대를 모아온 터였다. 그런 만큼 아쉬움도 크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감독과 배우, 그리고 관계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만의 칸’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넷플릭스 영화를 출품했으면 그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우리 영화가 ‘수상 원천불가’라는 모욕 아닌 모욕을 받았음에도 어떤 형태로든 쓴 소리 한 마디 내던지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가치를 추구하는 상품이다. 진정 의식 있는 영화인이라면 영화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최소한의 비판의식과 문화적 자존감을 견지해야 한다. 자본에 오염되어 가는 영화의 미래, 종종 터무니없기까지 한 유럽 특유의 문화패권주의의 모순, 그런 것들에 대해 왜 당당하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가. 

올해 칸영화제에 간 한국 영화는 지난해에 이어 경쟁부문 초청에 만족하며 빈손으로 귀국하는 신세가 됐다.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가치, 그 본연의 정신을 지켜내는 것이다. 해외영화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도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시사회에서 ‘의례적’인 기립박수 몇 번 받았다고 당장 ‘영화강국’이라도 된 양 들뜰 일이 아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차분히 복기해 보라. 

김종면

◆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서울신문에서 문화부장 등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을 했다.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로 세계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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