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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슈트반의 날’ 도나우 강의 불꽃놀이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2021.09.17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도나우 강은 부다페스트를 관통하며 흐른다. 도나우 강 양안의 야경은 보석처럼 아름다워서 부다페스트는 예로부터 ‘도나우 강의 진주’로 불린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 서쪽의 부다(Buda, 현지발음은 ‘부더’)와 부다의 북쪽 오부다(Óbuda, 현지발음은 ‘오부더’), 그리고 강의 동쪽 페스트(Pest, 현지발음은 ‘페슈트’)가 1873년에 통합되어 이루어진 도시로 헝가리 사람들은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부다페스트가 통합되기 60여 년 전인 1811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210년 전의 일이다. 페스트 지역에서 독일어 극장이 신축되고 있었는데 개장을 앞두고 극작가 코체부에(A. von Kotzebue)는 오프닝 행사축제 공연용으로 2개의 희곡을 썼다.

베토벤은 이 희곡공연을 위한 극음악 작곡을 의뢰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슈테판 왕>이다. 이 작품은 서곡과 부수음악 9곡, 모두 1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곡들은 서곡을 제외하고 연주회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슈테판 왕 서곡>의 독일어 제목은 Musik zu ‘König Stephan’ Op.117. Ouverture이고 연주시간은 7-8분 정도 된다. 그럼 슈테판 왕은 누구인가?

도나우 강 건너 페스트 지역의 바질리카. 이슈트반 1세, 즉 슈테판 왕에게 바쳐진 대성당이다.
도나우 강 건너 페스트 지역의 바질리카. 이슈트반 1세, 즉 슈테판 왕에게 바쳐진 대성당이다.

먼저 헝가리의 초기역사를 간단히 한번 살펴보자. ‘헝가리’를 헝가리 사람들은 머져르오르사그(Magyarország)라고 한다. 오르사그(ország)는 ‘나라’라는 뜻이고 머져르(Magyar)는 헝가리 민족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국내출판물에서는 보통 ‘마자르’라고 표기되어 있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고 여러 가지 전설만 있을 뿐이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헝가리어는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와 함께 우랄어권의 한 갈래인 핀-우그르어에 속하는데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참고로 우리는 흔히 헝가리어와 우리말이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한다고 알고 있지만 현대의 언어학자들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란 가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슈트반 1세 기마상.
이슈트반 1세 기마상.

여러 측면에서 보면 옛날 마자르 족은 아시아와 유럽 동쪽에 걸쳐 광활한 평원에서 살던 터키계 유목 민족과 유사하다. 마자르 여러 부족들은 9세기 후반 유목 생활에도 적합하고 방어에도 유리한 지형을 갖춘 곳을 찾아 떠나 896년경에 도나우 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 분지에 터를 잡았다.

그들의 지도자는 아르파드(Árpád)였다. 그들은 10세기에 들어서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유럽의 상당부분을 점령했지만 955년 남부 독일에서 엄청난 패배를 맛보았다. 그후 아르파드의 후손 버이크(Vajk 997-1038)는 서기 1000년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그의 세례명은 기독교 역사에서 첫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의 이름을 따서 독일어로 슈테판(Stephan)이고 헝가리어로는 이슈트반(István)이라고 했다. 영어로는 ‘스티븐’, 이탈리아어로는 ‘스테파노’인데 우리말 신약성경에는 ‘스데반’으로 표기되어 있다. 헝가리 국왕으로서 그의 명칭은 이슈트반 1세이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왕관을 바치는 이슈트반 1세.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왕관을 바치는 이슈트반 1세.

어쨌든 헝가리 역사를 모르더라도 헝가리를 여행할 때 ‘이슈트반 1세’, 또는 ‘성 이슈트반’만 알아도 보이는 것이 상당히 많아진다.

사실 헝가리 곳곳에서 그의 기념상이나 그와 관련된 장소를 만날 수 있는데 특히 도나우 강이 내려다보이는 부더 언덕의 어부의 성채 광장에는 그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폐스트 지역에는 그에게 바쳐진 대성당 바질리카(현지발음은 ‘버질리커’)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대성당의 돔은 페스트 지역의 심장부를 원대한 힘으로 뚫고 나와 하늘로 솟아오른 듯하다.

이 대성당 안에 있는 성골함에는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보존되어 있다. 또 대성당 내부에서는 이슈트반 1세를 주제로 한 헝가리 화가 벤추르(1844–1920)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 그림은 이슈트반 1세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왕관을 바치는 모습이다. 이것은 그가 기독교를 헝가리의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슈트반 1세는 당시 동쪽의 비잔티움 제국과 서쪽의 로마 교황청 사이의 지정학적 역학관계에서 로마 카톨릭을 받아들임으로써 헝가리를 유럽의 일원으로 편입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헝가리는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게 되면서 역사와 문화발전에 있어서 유럽과 함께하게 되었다.

한편, 이슈트반 1세가 세상을 떠난지 45년이 지난 1083년 8월 20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헝가리에서 8월 20일은 ‘성 이슈트반의 날’이라고 하여 헝가리 왕국이 탄생한 날로 여겨 헝가리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다.

성 이슈트반의 날 불꽃놀이.
성 이슈트반의 날 불꽃놀이.

매년 8월 20일이 되면 부다페스트 곳곳에서 여러가지 행사가 개최되는데 베토벤의 <슈테판 왕 서곡>도 연주된다. 또한 다양한 거리음식축제가 열리며 ‘헝가리 생일축하 케이크’ 만들기 대회도 열린다. 절정을 이루는 행사는 도나우 강 불꽃놀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도나우 강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는 이질적인 민족이 세운 나라 헝가리가 완전한 유럽국가임을 만방에 천명하는 것 같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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