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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영상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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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면 날마다 쏟아져나오는 생성형 영상 AI 소식으로 미디어가 매우 부산하다. 뭐든 나오자마자 남보다 먼저 써봐야 성이 차는 한국의 열성적인 유저들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자마자 써보고 그 결과를 SNS에 공유한다.
한국 소비자들의 이런 빠른 신기술에의 반응과 소셜미디어와의 연결성은 이미 90년대 '싸이월드'와 천리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은 늦었으나 정보혁명으로 따라잡겠다는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아니 더 거슬러서 개화기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평생 종이신문을 보시던 30년대생 부모님들이 컴퓨터의 등장과 더불어 종이를 버리고 스크린으로 신문을 읽고 한국의 어르신들이 화투와 카드놀이를 화면으로 즐기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었다.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와 대국할 때 이 사건은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전 국민이 그 신기한 4국의 78수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기이한 장면이 생산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바둑을 전국에서 열띠게 시청하는 분위기를 당시 프랑스 출장 시 만났던 프랑스대학의 동료교수들에게 설명하자, "아, AI문제는 동아시아에서 고민하세요, 우리는 노동문제를 고민할테니"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이 겪은 압축적 근대화의 정기능일지 부작용일지, 한국은 모든 새로운 것에 매우 민감하다. 우리는 사회의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을 세대간 전승했고 이 감각과 태도를 내화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소비재 분야에서는 유행민감성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이 산업과 인류의 미래를 뒤흔들 새로운 기술인 경우, 장기적으로 좋은 효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화한 산업혁명에 버금간다고 보이는 지식노동의 외화와 기계화 과정인 AI의 전방위적 영향에 대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
이 새로운 힘의 사회적 제어방식에 대한 합의 뿐 아니라 미래학적 전망이나 철학적 숙고가 없는 상태에서 한국사회는 지금 전속력으로 AI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과 함께 자국어기반 AI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지닌 나라라는 사실은 디지털 문화에서 빨랐던 90년대와 에너지 넘치는 한국민, 그리고 한글의 힘에 감사하고 자긍심을 지닐만한 일이지만, 이것이 지금 AI에게 부여한 중요성, 속도, 방향을 정당화해주는 일은 아니다.
가까운 기억만으로도 블록체인 '혁명'과 메타버스가 가져올 '이상적 미래'에 대해 뜨겁게 달아올랐었으나, 지금 이 기술들에 대한 그 막대한 투자가 어떤 긍정적 결과와 이익을 가져왔는지 보이지 않는데, 다시 모든 국가적 프로젝트에 AI가 키워드로 등장하지 않으면 성공의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간을 맞이했다.
AI는 기존 모든 신기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장기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 예견되기에 어쩌면 직접적인 비교는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생성형 영상 AI의 사용은 결과가 매력적인 만큼, 영상산업을 밑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다. 벌써 짧은 광고와 홍보를 AI영상이 대체하면서 실사 영상장비 대여회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넷플릭스 등 OTT들의 진출과 더불어 제작비는 상승하고 제작은 줄어드는 현실에 AI의 충격파가 더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AI가 반드시 나쁜 변화를 초래하리라는 묵시록적 예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이 발명되어 초상화가들이 직업을 잃었으나 새로운 예술이 태어났고, 영화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TV가 등장했을 때, 기존의 영상기술들은 변화에 적응해서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 AI도 장기적으로는 무엇인가를 없애고 변화시키고 새로운 실천과 생산을 가져올 것이다.
당장 사용가능한 서비스들의 실력이 예상했던 것만큼 훌륭하지 않고 바로 버려질 유사영상들을 양산하고 있는 동시에, 존경받는 영화감독들이 AI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가장 AI 친화적인 판타스틱 장르의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절대로 영화에 AI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최근작 <프랑켄슈타인>은 자연광과 세트촬영, 전통적인 미술의 창의성과 따스함, 촬영현장의 분주함과 집단적 에너지를 최대한 담고 있다.
어쩌면 AI가 오히려 전통적 영화제작방식과 감독들의 정체성, 창의적 스토리, 영화적 세계관, 고집, 철학이 더욱 빛을 발하는 신작가주의 시대를 가져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AI를 활용한 일반인의 표현력은 증가하고 창의적 감독들은 더욱 개인적 터치를 강화할 영상생산의 양극화가 예상된다.

다른 한편으로 AI를 적극 받아들이는 창작자들도 등장하고 있다. 만화가 이현세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의 영생을 위해 기존 작품을 AI에게 학습시키고 웹툰 그림을 생성하는 프로젝트에 동의했다. 음악분야에서 베토벤이 완성하지 못한 교향곡 10번을 베토벤 전체 음악을 학습한 AI가 완성한 것과 유사한 프로젝트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과연 수용자가 이런 산물을 원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AI가 작곡한 피아노 콘체르토를 연주할 피아니스트가 있을 것인가, 그 콘서트에 표를 구매해서 들으러 갈 청중은 있을 것인가. 어디서 본 듯한 색감과 얼굴, 장면의 연속인 영상을 계속 보고 싶을 것인가.
우리는 "이거 AI 산이야" 라고 하면 바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을 벌써 경험하지 않는가. 거대한 AI 쓰레기 더미 위에서 언젠가 AI 예술의 꽃이 피어나겠지만, 이 쓰레기 더미를 우리가 앞서서 시간과 열정과 전기와 돈을 들여 쌓아가야하는 이유를 모두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아무도 이 거대한 AI 프로젝트가 잡아먹는 엄청난 전기가 유발하는 환경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또한 AI를 둘러싼 열기가 가져온 기묘한 생각의 마비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선택권 없이 비민주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기술에 대해 느리지만 확고하게 책임있는 성찰을 할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
◆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한류 연구자로 정진하면서 팬덤 온라인 참여관찰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거쳤으나 스스로는 여전히 세상 속 의미의 생산을 묻는 기호학자라고 이해한다.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BTS길 위에서>를 출판했고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문화산업, 한류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다년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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