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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제의 성장전략과 혁신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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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결국 '지식이 퍼지는 방식'의 문제다. 실험과 토론이 존중되고, 현장 기술과 과학 지식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실패가 다음 시도로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생산성이 구조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같은 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기옹과 하윗은 이러한 성장 생태계가 작동하는 경제적 메커니즘을 '혁신과 경쟁'으로 풀어냈다.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등장하면 낡은 방식은 밀려나고, 이 창조적 파괴가 반복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다만 혁신은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고, 진입과 퇴출이 원활하며, 전환 비용을 흡수하는 안전망이 갖춰질 때 비로소 혁신은 연쇄반응으로 이어진다.
한 나라의 산출은 자본(설비·인프라·R&D), 노동(인구·참여·숙련), 그리고 생산성(기술·조직·제도·경쟁이 만드는 효율)으로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저출생으로 생산인구가 줄고 투자도 둔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획기적인 투자 확대와 생산성을 높이는 개혁 없이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 최근 발표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생산함수의 언어로 읽으면, 자본·노동·생산성이라는 세 축을 혁신을 통해 성장경로를 재설계하려는 청사진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자본 측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투자의 '양'보다 '방향'을 바꾸겠다는 의지다.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AI·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고, 국민참여형 펀드와 세제 혜택을 결합해 장기자금을 모험자본으로 전환하려는 구상도 담겼다. 자본을 혁신 부문으로 재배치하려는 장치인 셈이다.
장기 주식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생산적 금융 ISA도 신설한다. 국내 주식·펀드, 국민성장펀드, BDC(성장단계기업)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청년형·국민성장 ISA를 통해 참여층을 넓히겠다는 방향도 함께 제시됐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가이드라인과 자사주 과세체계 정비를 함께 묶은 점도 의미가 있다.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여 장기투자 기반을 다지려는 접근이다. 여기에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의 외부자금 모집 및 해외투자 규제 완화, 금융회사의 생산적 대출에 대한 충당금 손금인정 확대 조치도 포함됐다. 이런 조치들은 혁신 투자로 가는 금융의 관로를 넓히는 미세조정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노동 측면에서는 인구 감소로 노동 투입이 줄어드는 문제를 인적자본의 질로 상쇄하려는 설계가 담겼다. 이공계 장학금과 연구생활장려금을 확대하고, 학·석·박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며, AI 단과대학을 신설해 권역별로 확산한다. 해외 우수인재 유치와 비자 트랙 정비도 포함됐다. 인재 파이프라인을 길게 깔아 숙련 인력 공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주도성장 정책도 같은 흐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과 기업이 수도권에만 쏠리지 않도록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규제·정주·재정·세제를 패키지로 지원한다. 권역별 혁신벨트를 구축하고 광역 교통·물류망도 확충해 지역의 실물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셋째, 생산성 측면에서는 기술 축을 AX와 피지컬 AI까지 넓혀 일하는 방식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독자 AI모델을 공개하고 정부 AX 사업에는 첨단 GPU·모델 등 공통자원 지원체계도 마련한다.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끌어올려 같은 투입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AI의 적용 범위도 넓히려 한다. 휴머노이드 프로젝트와 월드모델 기반 학습을 추진해 제조·물류·재난·농업 같은 실물 영역으로 AI를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생산성 향상이 일부 선도 산업에만 머물지 않도록 '확산 범위'를 키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공정성장 과제를 생산성의 제도 축으로 함께 묶은 점도 중요하다. 상생결제 등 대금지급 시스템의 의무화를 확대하고, 하도급 과징금 상향과 기술탈취 제재 강화, 증거개시 도입 검토도 추진한다.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고 혁신의 성과가 정당하게 보상받는 환경을 만들어, 기술 혁신이 중소기업·서비스업까지 확산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마지막으로, 거시 안정과 구조혁신을 한 묶음으로 제시한 점은 전략의 지속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경기·물가·금융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입 기반을 다지고 비과세·감면도 점검한다. 조달과 공공기관 혁신을 통해 재정 효율을 높이겠다는 방향도 담겼다. 성장정책이 단기 재정지출 경쟁으로 소진되는 것을 막는 안전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펀드와 세제가 정책의 전면에 놓이면서 '돈을 모으는 장치'가 '돈을 잘 쓰게 만드는 규칙'보다 더 커 보인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돈이 부족한 데 있지 않다. 시중 유동성은 오히려 풍부하다. 문제는 돈이 혁신으로 흘러가지 않는 데 있다. 혁신에 도전하는 기업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고, 반대로 상속을 통한 자산 이전에 관심이 쏠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경제의 역동성은 예전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전략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고민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둘째, 생산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축인 사회개혁 로드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년연장 논의, 직무·성과 중심 보상체계 확산, 전직·재교육을 통한 이동성 제고, 자영업 구조와 산업 구조조정 등이 모두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제도 개혁은 기술 투자 못지않게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결국 2026년 경제성장전략의 성패는 '자금 동원' 자체가 아니라, 그 자금이 혁신의 연쇄반응을 만들도록 자본·노동·생산성의 세 축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펀드가 마중물이 되고, 인재가 공급되고, 경쟁과 이동성이 혁신을 확산시키며, 지식 생태계가 꾸준히 새로움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일시 반등을 넘어 추세 자체가 바뀔 수 있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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