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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극3특, 자치분권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을 고민할 때 세 가지 가치가 경합한다. 성장(동력), 지역 간 균형, 그리고 지방이 스스로 결정권을 갖는 자치분권이다. 보통 둘은 잡을 수 있어도, 셋을 동시에 거머쥔 사례는 드문 세 가지 딜레마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지방분권 로드맵을 한꺼번에 추진하며 세 가지를 모두 해내려 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수도권 집중은 완화되지 않았고, 자치분권은 제도로만 남았으며, 성장의 동력은 더욱 수도권에 쏠렸다. 어느 것도 확실히 잡지 못한 셈이다.
정책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건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것이다. 지역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핵심 과제는 비수도권의 청년유출에 대한 대응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수도권과 세종·대전을 제외한 12개 광역자치단체에서 20~39세 청년 6만 2,445명이 순유출됐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누계로는 지역을 떠난 청년만 54만 9,500명에 달한다. 경남, 경북, 부산, 전북 순으로 유출됐다. 청년 유출은 지역 경제의 소비 여력, 노동시장의 인재풀을 황폐화시킨다. 특히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 중 과반이 여성이기 때문에, 저출생으로 지역 재생산 자체를 막아버린다. 아이 울음소리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역설적으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서울의 강남구인데, 절대 숫자에서 청년 여성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지역의 자치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이 아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 이후 30년 동안 청년 유출은 멈추지 않았다. 동남권, 호남권 등 주요 유출 지역을 들여다보면 결국 직업을 찾아 떠난다. "일자리만 있으면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 살고 싶다"는 청년들이 다수인 지역은 많다. 2015~2021년 수도권 인구 증가에 청년 유입이 기여한 비율은 78.5%이며, 동남권·호남권 등 감소 지역에서 청년 유출의 기여율은 75~88%에 달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연대경제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겠지만, 다수 청년이 바라는 높은 급여, 기업의 성장 가능성, 고용 안정성, 적성 등의 문제를 충족하긴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5극 3특 구상이 나온다. 5극 3특은 세 가지 가치 중 성장과 균형, 두 가지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자치분권의 가치가 폐기된 건 아니다. 작은 공동체부터, 읍면동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고 가꾸는 일은 중요하다. 지방시대위원회가 균형발전과 함께 자치분권을 여전히 두 축으로 견지하는 이유다. 다만 우선순위가 바뀌었을 따름이다.

초광역연합이나 광역간 행정 통합에 반대하는 논거로 마산·창원·진해의 통합 실패가 언론을 통해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메가시티의 본질은,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요구하는 고등교육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효한 규모의 혁신 생태계를 통해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이다. 지역 제조업의 위기는 공장이 줄어서가 아니라, R&D와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같은 구상 기능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단순 생산만 남은 탓이다. 이를 바꾸려면 메가시티 단위의 대규모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지역투자공사(VC)와 액셀러레이터·인큐베이터 인프라를 통해 스핀오프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역시 메가시티 규모가 되어야 비로소 자생 가능한 시장이 형성된다. 한국에서 광역 단위의 산업 성공 사례는 아직 없다. 수도권 밖에서 지식기반경제의 거점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K자형 성장이 굳어지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생산성 격차는 2005년 2.7%p에서 2019년 11.1%p로 급격히 벌어졌다. 5극 3특 중 적어도 한두 곳에서 구상 기능과 지식기반산업이 자립하는 실제 사례를 지금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으로 기회는 없다. K자의 아랫날은 한번 꺾이면 되돌아오기 어렵다. 메가시티 추진은, 비수도권에 실질적인 경제 기반을 먼저 쌓는 것이다. 가능성 있는 지역의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비수도권의 거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급한 일이다. 자치분권과 메가시티가 싸울 이유도 없다.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학, 문화인류학을 거쳐 공학 박사(과학기술정책 전공)를 받았다. 제조업, 엔지니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 현장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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