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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가장 대체되기 쉬운 사람 양산하는 사회

탄광의 카나리아
지금의 학교는 산업 시대의 고안품이다. 산업사회의 만트라는 규격화, 표준화, 대량생산이다. 학교는 공장과 거울처럼 대응한다. 위계가 있고, 생산라인의 분업에 조응하는 개별 과목들이 있다. 공장에 일 자체의 만족이 아니라 임금, 상여금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있는 것처럼 학교에는 공부 자체의 즐거움 대신 성적, 상벌과 같은 보상이 있다.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을 할수록 학교는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공장에서 가장 중요히 쓰일 가치이기 때문이다.
아뿔싸,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와버렸다.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수만 배 잘하는 일이다. 산업 시대 학교가 만들려 한 그것—지시를 정확히 따르고, 표준 절차를 오류 없이 반복하며, 정해진 정답을 신뢰성 있게 산출하는 인간—이 바로 오늘날 생성형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펴낸 <2025 일의 미래> 리포트는 이런 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1000개 이상 기업(55개 경제권, 1400만 노동자)을 조사해 2030년까지 가장 가파르게 줄어들 직무를 조사했다. 우편 사무원, 은행 창구 직원, 데이터 입력원, 출납원, 행정 비서…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직무들이다.
향후 수요가 가장 빠르게 감소할 역량은 성실, 정확, 규율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빠르게 부상하는 역량도 있다.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 평생학습이다. 특히 분석적 사고는 기업 10곳 중 7곳이 필수로 꼽았다. 하나같이 산업 시대 학교가 체계적으로 무시해 온 자질이다. 학교는 그런 것을 채점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의 브린욜프슨 등이 쓴 유명한 보고서 '탄광의 카나리아'도 주목할 만하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22~25세 신입의 고용이 약 16% 줄어들었다. 반면, 숙련 인력의 고용은 오히려 늘었다. 브린욜프슨은 이렇게 해석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은 책·논문 등 '책상 위 지식'으로 훈련됐는데, 그것이 바로 학교가 사회 진출 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지식과 제대로 겹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학교는 '인공지능에 가장 먼저 대체될 사람'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아주 몹쓸 일이다. 범죄행위에 가깝다.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가르쳐야 할 것과, 더 이상 가르치면 안 될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감량 목록과 증량 목록을 만들자는 것이다. 먼저 현행 교육과정에서 AI가 이미 대체하고 있거나, 머지않아 대체할 역량을 교과별로 식별해 낸다. 예를 들어, 단순 사실의 암기와 재생산, 정형화된 문제 풀이 반복 훈련, 공식 대입형 계산, 다시 말해 입시를 위한 문제 풀이들 그리고 정보 검색과 정리 자체가 목적인 과제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열심히 할수록 더 빨리, 더 쉽게 대체 당하게 될 일들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인간의 역량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규명해서 수업 안에 녹여 넣어야 한다. AI가 감히 대체하지 못할 것들, AI가 득세할수록 더 귀해지는 역량이 그것이다. 후보군은 다음과 같다.

질문하는 능력. 답을 찾는 것은 AI가 하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는 인간의 몫이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은 현행 입시 교육에서 거의 훈련하지 않는다.
비판적 검증 능력. AI가 생성한 정보, 논증, 코드의 오류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AI를 잘 쓰는 것보다 AI의 출력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이 만 배나 중요하다.
맥락 통합 능력.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AI는 패턴 안에서 작동한다. 패턴을 깨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신체와 경험 기반 학습. 실험, 만들기, 현장 조사, 예술 창작, 체육, 돌봄 실습처럼 몸을 쓰고 직접 경험해야 하는 학습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AI 시대에 더욱 빛날 인간의 일이다.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합의. AI의 발전은 갈수록 가속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조정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협업과 소통. 인간과 인간이 협업하고 인간이 AI와 협업하는 능력이다.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맥락을 공유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학교가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싱가포르가 보여준 것…사회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우리 못지않은 입시의 사회, 학벌의 사회다. 싱가포르는 2021년부터 채점을 상대평가로 바꿨다. 중등 성적별 계열분리도 2024년에 폐지해 과목별로 능력에 따라 듣게 했다. 당시 옹예쿵 교육부 장관은 이 변화가 아이들의 낙인화를 줄이고 성장 마인드 셋을 길러줄 것이라고 밝혔다.
23년에는 모든 초중등에서 중간고사를 없앴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싱가포르 가계의 연간 사교육 지출은 2018년 14억 싱가포르달러에서 2023년 18억 달러로 약 30% 늘었다. 약 70%의 가구가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 학자들은 이를 '그림자 교육 체계'라 부른다. 심지어 정부가 중간고사를 없애자, 일부 학원들이 그 공백을 메우려 '모의 중간고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2개의 기둥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중간고사는 없앴지만 여전히 학력이 좋은 일자리와 지위로 가는 관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두 번째, 떨어지면 받쳐줄 안전망이 없었다. 싱가포르는 보편적 실업보험과 일반 최저임금이 없고, 대신 저임금 노동자 대상의 근로소득보전과 업종별·훈련 연동형인 점진적 임금 모델로 대체한다. 노후는 개인 강제저축인 중앙적립기금의 자기책임 원리에 기반한다.
'강한 학력-서열 배분'와 '약한 안전망'이 중첩할 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하나로 수렴한다. 경쟁에서 이기면 좋은 일자리와 지위를 얻고, 지면 받쳐줄 바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 공부를 하지 말고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르라는 말이 부모의 귀에 대체 어떻게 들리겠는가.
한국에서 고교학점제와 국제바칼로레아(IB) 공교육 도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정확히 같은 이유다. 대입이라는 서열 배분의 관문과 그 뒤의 얇은 안전망을 건드리지 않으면 교실 안의 개혁은 입시 구조에 고스란히 흡수된다.
결론은 분명하다. 교육을 진짜로 바꾸려면 삶의 결과를 학력 순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전망은 '복지'가 아니라 'AI시대 역량 형성의 인프라'다. AI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인 비판·창의·협업·판단·모험·평생학습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 위에서만 자란다. 떨어지면 절벽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안전한 표준답—즉 AI가 이미 더 잘하는 것—으로 회귀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얇은 안전망은 '가장 먼저 대체될 인간'을 대량 생산한다.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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