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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밥집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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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다. 오래 지켜본 여수는 많이 변해서, 시내는 어느 동네를 가도 나 같은 관광객 무리가 가득 몰려다닌다. 그건 그대로 재미있는 일이고 여수의 모습이긴 하다. 그래도 일부러 여수 사람들이 사는 오래된 동네, 물론 그들도 이제는 아파트에 살고 그게 현대의 삶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그런 곳이 어디메쯤 있겠거니 하고 찾아보곤 한다.
그렇게 그 언덕의 산동네랄까, 여수가 지금 같은 관광지가 아닐 때 사람이 살던 동네를 보았다. 바닷가의 큰 도시가 그렇듯 매립을 하지 않은 본디 모습은 필시 기다란 산의 덩어리가 급하게 흘러내리다가 좁은 해안을 만들고 바다를 만나는 지형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동네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 산이 흘러내리는 언덕바지에 있었다. 천주교도는 아니지만 성당이란 대체로 개방적이어서 누구든 들러서 경내에서 잠시 안식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 성당은 목줄 없는 동네 개들도 드나들 만큼 소박한 그런 모습이어서 이방인이 불쑥 들어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경내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나이 지긋한 남녀가 돌을 옮기고 화단을 가꾸느라 분주하였다. 신부님이 신도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신부님이 누군지 여쭈진 않았지만, 경내를 둘러봐도 되냐고 내가 어느 신도를 붙잡고 물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 사내에게 "신부님, 어찌 구경을 좀 하신다는데…"하고 허락을 구하는 바람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사람이, 열려 있는 성당 구경하는데 무슨 허락을 받소, 하는 표정이어서 나는 아주 행복했다.
그렇게 동네를 돌며 이제는 사라져가는, 전국의 오래된 중소 도시에나 남아 있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올 법한 70, 80년대 분위기를 흠뻑 느꼈다. 한편으론 어쩔 수 없이 조바심이 났는데 그건 순전히 여수에선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었다. 자아, 무얼 먹나. 음식 글을 쓰고 요리사로 일하는 나도 타지에 가면 맛있는 집을 찾는 수고를 하는 건 똑같다. 일행이 있으면 더 그러해서 으레 내 몫이 되곤 한다.
오래전, 여행지에서 식당을 찾는 방법은 첫째는 감이었다. 척 보고 저 집이 밥을 좀 하겠는가 하고 관심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건 지금도 유효한 방식이었다. 이건 어쩌면 꽤 과학적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하며 감이 쌓이면 나름의 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열고 이런저런 검색을 하면 효율적인데 대체로 요즘은 '걸러내는' 용도로 쓸 때도 많다. 그저 호의이든 상업적인 거짓말이든 써놓은 걸 부정해야 맛있는 집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참 불행한 일이다. 무슨 뜻인지 아실 테다.

어쨌든 그렇게 들어간 한 식당은 순전히 감으로 찾은 것이었다. 적당히 허름하고 적당히 너저분하고 적당히 무뚝뚝한 그런 집. 앞서 '감'이 작동하는 건 미신적이긴 하다. 이를테면, 정수기 옆에 쌀자루가 쌓여 있는 집, 손님 적은 한가한 시간에 아주머니가 탁자에 앉아 쪽파나 고구마 줄기를 까고 있는 집, 둥그런 양은 쟁반이 켜켜로 쌓여 있어서 동네 밥배달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는 집, 조상의 흑백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는 집, 벽에 붙여 놓은 메뉴 가격을 덧칠로 고쳐놓은 집…. 그 집은 쌀가마가 정수기 쪽은 아니었고, 좌식 탁자가 놓여 있는, 우리가 오랫동안 방이라고 불러오는 공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내내 그 쌀가마에 등을 기대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쌀가마가 등을 받쳐주는데 맛이 없으면 이상할 일.
전라도 밥집을 골라 들어가서 대체로 실패가 적은 이유는 흐뭇한 반찬 덕이라는 건 여러분도 동의할 것이다. 슬쩍 피로가 얹혀 있는 아주머니들의 표정까지도 맛있는 반찬이 되곤 한다. 이렇게 찬을 많이, 맛있게 준비하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크시오, 이런 마음으로 짜게 먹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 같은 건 애써 무시하고 반찬을 싹싹 비우게 된다.
전라도에서, 그것도 여수에서 몇 끼니를 한다면 불편한 일도 꽤 있다. 첫째는 처음 들어간 집이 좋았으니, 이보다 더 맛있는 집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다. 첫 시험을 95점 맞았으니, 그다음에는 100점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둘째는 우리의 위는 딱 하나이고 많이 먹어봐야 하루 세 끼다. 먹을 게 널린 여수 같은 동네에서 말이다. 나름대로 묘수가 있다. 첫 번째 식당 주인에게 묻는다. 경험적으로 아주 '타율'이 높다. 주인이 더러는 그 자리에 곧바로 전화해서 예약 내지는 협조도 얻어낸다. "타지서 조카들이 왔는데 저녁에 갈 것잉게, 이이….그려."
두 번째는 소화시키는 약을 사 먹는다든가 하는 것도 좋은데, 기왕이면 걷는다. 걸음은 최상급의 소화제다. 그러다 보면 동네의 속살도 보고 관광지 아닌 사람 사는 마을을 볼 수 있다. 관광객 말고 동네 사람들이 가는 식당에 우연히 앉는다. 꼭 바다 것이 아니어도 좋은 것이다. 여수에서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이나 냉면을 먹는 사람도 있다. 해산물과 생선도 하루 이틀이지. 여담인데, 바닷가 도시는 의외로 육고기와 중국음식 같은 걸 잘하는 집이 많다.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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