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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강국 한국의 빈자리, CPTPP로 채울 수 있다

2026.09.04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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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협정에도 타이밍이 있다. 늦게 들어가면 입장권만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인 좌석표와 규칙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CPTPP 가입은 FTA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니다.…흔들리는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한국이 환태평양의 시장과 공급망, 다음 통상규범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무역협정에도 타이밍이 있다. 늦게 들어가면 입장권만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인 좌석표와 규칙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바라보는 한국의 처지가 그렇다.

CPTPP는 더 이상 2018년의 11개국 협정이 아니다. 영국이 2024년 첫 신규 회원으로 합류해 현재는 12개국, 세계 GDP의 14.4%를 포괄하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가입 협상도 실질적으로 마무리됐고, 우루과이와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 EU도 CPTPP와 교역 다변화를 위한 통상대화를 시작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이 거세지고 자유무역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CPTPP는 회원국들을 공통 규칙으로 묶는 통상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이런 규칙이 필요하다.

11일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와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2026.8.11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1일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와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2026.8.11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은 2022년 CPTPP 가입 추진을 의결했지만 아직 가입 신청을 하지 못했다. 농수산물 개방 우려와 정치적 부담이 결단을 늦췄다. 정부는 지난 8월 27일 사회적 논의와 의견 수렴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여론 수렴에 그치지 않고 가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실질적인 검토로 이어가는 일이다. 판단을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 CPTPP의 규범이 고도화되고 앞선 국가들의 협상 결과가 기준으로 쌓이면, 뒤늦게 가입하는 나라가 별도의 예외나 긴 유예기간을 인정받을 공간은 좁아질 수 있다. 결국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있는데 왜 CPTPP가 필요하냐는 질문도 나온다. RCEP의 강점은 중국·아세안을 아우르는 시장의 폭이고, CPTPP의 강점은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과 통상규범, 캐나다·멕시코에서 중남미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의 깊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를 일이 아니다. 두 협정을 함께 활용해야 기업이 시장과 조달처를 넓힐 수 있다. 공급망이 안보와 직결되는 시대에는 협정 네트워크 자체가 기업의 안전판이 된다. 특정 시장에서 규제나 갈등이 커질 때 대체 조달처와 생산거점을 찾고, 다른 회원국 시장으로 판로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CPTPP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한국은 기존 회원국 대부분과 이미 FTA를 맺고 있어 추가적인 관세 인하 효과만 보면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멕시코와는 아직 FTA가 없고, 일본과는 RCEP가 발효돼 있지만 개방 수준과 활용 범위에 한계가 있다. CPTPP는 이 빈틈을 메울 수 있다.

특히 역내 누적원산지는 한국에 중요한 이점이다. 가입 후에는 한국산 소재·부품과 베트남·멕시코·캐나다 등 회원국의 생산공정을 합산해 원산지를 인정받을 수 있어 최종 제품이 CPTPP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기가 쉬워진다. 협정마다 제각각인 원산지 기준과 증명 절차로 기업 부담이 커지는 스파게티 볼 효과도 줄일 수 있다. 여러 회원국에 걸친 생산공정을 하나의 역내 공급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재·부품과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 특히 유리한 부분이다.

더 본질적인 가치는 규범에 있다. CPTPP는 상품 관세를 넘어 서비스·투자·전자상거래·노동·환경을 포괄한다. 데이터 이동과 전자문서, 투자 보호 등 기업의 해외 활동을 좌우할 규칙이 담겨 있다. 우리 기업은 보다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규칙 아래 서비스 수출과 디지털 거래, 해외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한국도 협정의 개정과 확장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할 통로를 갖게 된다.

가입의 가장 큰 쟁점인 농림수산업의 부담은 협상과 국내 정책으로 함께 풀어야 한다. 품목별 피해와 농어민의 사정을 세심하게 살펴 민감품목에는 충분한 이행 기간, 저율관세할당(TRQ), 세이프가드 등을 조합해야 한다. 농어민의 소득과 생활이 흔들리지 않도록 실질적인 보완 대책도 빠질 수 없다. 농어업을 계속할 농어가에는 생산비 절감과 품질 향상, 가공·유통·수출을 지원해야 한다. 경영을 이어가기 어려운 농어민에게는 본인의 뜻과 형편을 살펴 안정적인 소득과 전환의 길을 열어두는 일도 중요하다. 대책은 가입을 위한 사후 보상이 아니라 협상 전부터 농어민과 함께 마련해야 한다.

가입 신청은 모든 시장개방을 확정하는 서명이 아니라, 기존 회원국들과 민감품목의 개방 수준과 이행 기간, 협정 이행 여건을 협의하는 출발점이다. CPTPP 가입은 FTA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니다. 흔들리는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한국이 환태평양의 시장과 공급망, 다음 통상규범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상식

◆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연세대 경제학과와 KDI대학원(MBA)을 거쳐 건국대에서 무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무역협회 입사 후 30년 이상 수출입 동향분석과 글로벌 통상전략 수립을 주도해온 무역 전문가다. 현재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으로서 수출경쟁력 강화, 산업별 공급망 안보, 신통상질서 대응 등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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