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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성공 조건

각종 부처와 위원회의 자문회의를 가면, 나를 포함해서 늦는 사람들이 꼭 있다.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기차의 연착과 버스의 지연 때문이다. 나주, 진천, ... 그리고 대다수 정부 부처가 세종에 있기 때문에 내가 참석하는 회의의 공무원들은 대개 세종에서 온다.
세종에서 출발해 부처 사람들의 집결지가 된 서울역 인근 어딘가에서 회의를 하고, 콘퍼런스라도 연다면 시내의 호텔을 잡는다. 세종에 정부 부처를 모아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서울에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특히 업계, 학계, 그 밖의 전문가들을 모으려면 서울로 오는 게 가장 가성비가 높다. 오송역 앞에도 회의 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결국 전국의 각종 국책연구기관과 공기업 사람들도 서울로 모인다.

세종특별자치시가 2012년 출범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혁신도시와 이전 대상 공공기관이 발표됐고, 2019년 말에는 153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마무리됐다. 그래도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여전히 회의를 위해 기차로 떠돈다. 기관의 소재지를 옮기는 일과 업무의 중심을 옮기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생활의 정착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주말에 서울로 가는 전세버스를 제공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수도권행 버스 운행을 중단한 기관들도 나왔다. 일요일 늦은 오후 서울역이나 강남 고속터미널 근처에 가면, 근무지로 내려가려는 대기업 산업도시 근무자들과 이들을 싣고 내려가려는 버스가 진풍경을 이루곤 한다. 공공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국가가 힘을 줘서 도시를 조성했음에도, 왜 지방 이전은 아직 생활의 정착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을까?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정리한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말 혁신도시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미혼·독신을 포함해 71%다. 다만 지역별 차이가 크고, 기관이 옮겨 간 뒤에도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기관을 옮겼는지와 함께,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는지를 물어야 한다.
1970~90년대 전국의 공고나 기업체 직업훈련소에서 기술을 배워 산업도시의 공장과 조선소에 취업한 청년들 가운데는 그 지역에 가정을 꾸리고 정착한 이들이 있었다. 특히 대기업에 자리를 잡고 임금과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에게는 혼자 벌어서 넷을 먹여 살리고, 자녀들을 자신보다 더 공부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정착의 기반이었다. 남성 한 사람의 직장을 중심으로 가족의 거주지를 정할 수 있다는 전제도 깔려 있었다. 자녀들이 자라면 좋은 학교와 가까운 대학이 있으면 좋겠고, 연로한 부모님을 생각하면 큰 병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뒤따랐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은 세대가 지역에서 삶을 꾸려 온 한 방식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나 2000년대 이후 일자리를 잡기 시작한 세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청년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고도성장기에 태어나 선진국의 생활수준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이며, 도시 생활에 익숙한 세대다. 대학과 다양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의 장이 멀고, 거점도시와 대중교통으로 연결되지 않은 곳에 산다는 것은 고립감을 안고 사는 일이 되기 쉽다.
더구나 이제는 한 사람의 직장만으로 가족 전체의 거주지를 정하기 어렵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조사에서 가구주가 30대인 유배우 가구의 63.3%, 40대인 유배우 가구의 61.3%가 맞벌이였다. 배우자도 자신의 일자리와 경력이 있다. 한 사람의 직장을 지방으로 옮긴다고 다른 한 사람의 일자리까지 따라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이전 기관의 일자리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기회다.
학교와 직장, 집을 오가는 일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생활의 필요를 다 채웠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2024년 혁신도시 주민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정주 여건 만족도 조사에서 주거환경은 74.8점이었지만, 교통환경은 62.3점, 여가활동환경은 65.4점이었다. 집을 마련하는 일과, 집 주변에서 생활을 마련하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혁신도시와 공공기관의 대규모 이전을 생각한다는 것은,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고 대중교통망으로 촘촘하게 연결할 수 있는 '스케일'을 고려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KTX역까지의 접근성, 혁신도시와 주변 거점도시를 잇는 광역철도와 도시철도, 버스의 연결성. 그냥 외웠으면 좋겠다. 역이 있느냐만큼 집과 직장에서 역까지 얼마나 편하게 갈 수 있는지, 저녁과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지역 안에서 일하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차편을 끊는 것만으로 서울 통근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올해 6월 나주혁신도시에서는 수도권 통근버스 중단에 따라 직원들이 KTX 등 다른 교통편을 찾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의 학교, 순환근무 때문에 거주지를 옮기기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다. 차편을 끊는 조치가 정착을 가로막는 조건까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첨단산업의 연구개발과 엔지니어링 기능도 필요하다. 학생들을 기업에 취업시키고, 기업과 협력하며, 기술 창업을 뒷받침할 역량을 갖춘 대학도 필요하다. 공공기관과 기업, 대학이 함께 있어야 지역에서 다음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혁신도시 하나 안에 모두 만들어 넣으려 하기보다, 주변 도시의 자원까지 일상적으로 활용할 생활권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5극 3특을 외치고, 초광역을 외치면서 또 공공기관의 이전을 생각한다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감각만으로 정착의 조건을 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5극 3특 전략에도 권역별 거점도시를 1시간 이내로 연결하는 광역교통망 구상이 들어 있다. 그 구상이 이전 기관 직원과 지역 청년들의 실제 생활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선진국의 도시 생활을 기준으로 자신의 미래를 그리는 청년들에게 소구하는 '최소한'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적인 혁신도시 조성, 그리고 공공기관 이전을 달성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하니 자꾸 꼬인다. 십수 년 고생했으면, 이제는 뭔가 학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학, 문화인류학을 거쳐 공학 박사(과학기술정책 전공)를 받았다. 제조업, 엔지니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 현장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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