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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삭스 스캔들’과 대만야구의 교훈

이헌재의 ‘스포츠 현장 속으로’

2011.06.08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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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에서 뛰었던 피트 로즈(71)는 120년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안타(4256개)를 친 선수다. 최다 출장(3562경기)과 최다 타수 기록(1만4053개)도 그의 차지다. 뿐만 아니라 최우수선수(MVP) 1회, 골드글러브 2회, 신인왕, 월드시리즈 우승 3회, 올스타전 17회 출장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헌액되기에 충분한 성적이지만 은퇴한 지 20년이 넘도록 그는 여전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제명된 신분이기 때문이다.

신시내티 선수와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 로즈는 경기에 불법으로 돈을 걸었다. 1987년에는 자신이 이끌던 레즈의 52경기에 각각 1만 달러씩을 베팅했다. 팀이 지는 쪽에다 돈을 걸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경기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유명했던 그는 불법 베팅 사실이 드러나면서 단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최근 들어 간간이 사면복권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하다.

메이저리그 최악의 승부 조작 사건은 로즈 사건보다 훨씬 전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월드시리즈에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신시내티 레즈가 맞붙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화이트삭스가 앞선 게 분명한 데 경기에선 석연찮게 레즈에 지고 말았다. 검찰은 이듬해 수사에 착수했고 화이트삭스 선수 8명이 스포츠 도박 전주와 갱단들과 함께 모의해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화이트삭스(White socks·하얀 양말)를 빗대 ‘블랙삭스 스캔들(Black socks·검은 양말)’로 불리게 된다. 승부 조작에 가담한 8명은 영원히 야구계로부터 영구 제명됐다. 이 중에는 명예의 전당 헌액이 유력했던 조 잭슨도 포함돼 있었다. 이후 화이트삭스는 월드시리즈에 올라갈 때마다 번번이 상대팀에게 패했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블랙삭스의 저주’라고 불렀다. 화이트삭스가 저주에서 벗어난 것은 1919년 이후 86년이 지난 2005년이 되어서였다.

스포츠 선진국이자 스포츠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승부 조작 사건은 이처럼 몇 차례 발생했다. 하지만 대처는 빠르고 단호했다. 한 번 걸리면 영원히 이 바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했다.

미국과 정반대에 있는 나라는 바로 대만이다. 한 때 대만 프로야구는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한국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못 나간 것도 전해 열린 아시아 선수권에서 대만에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부조작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대만 프로야구는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여전히 몰락을 길을 걷고 있다.

1996년 165만 명에 이르던 대만 프로야구 관중은 그해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이듬해 30만 명까지 줄었다. 2001년 야구 월드컵 동메달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선전 등으로 다시 100만 시대를 열었지만 2005년과 2008년 또 다시 팬들을 배신하는 승부조작 사건이 재발하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2008년에는 디미디어 티렉스의 사무총장이 채무관계가 있는 폭력조직 두목의 요구로 승부를 조작하는 등 조직폭력배가 구단 운영까지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티미디어와 중신 웨일즈가 해체를 선언했고 대만 프로야구팀은 4개 밖에 남지 않았다.

디미디어 사태 때는 마잉주 대만 총통이 “확실히 수사해 대만 프로야구를 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팬들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단호히 대처했더라면 재발을 막을 수 있었지만 정부와 대만프로야구연맹의 대처는 미비했다. 오히려 대책에 참여한 몇몇 인원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는 일까지 있었다.

지난 5월 29일 K리그 대전시티즌과 현대오일뱅크의 경기. 선취골을 넣은 대전 황진산 선수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프로축구 승부조작과 관련해 팬들에게 사죄의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5월 29일 K리그 대전시티즌과 현대오일뱅크의 경기. 선취골을 넣은 대전 황진산 선수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프로축구 승부조작과 관련해 팬들에게 사죄의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한국 프로축구도 승부조작 스캔들로 떠들썩하다.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현직 프로축구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하면 K 리그에서 뛰는 한 선수는 제 삼자를 통해 불법 베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승부조작을 위해 중국 불법 베팅업체가 유령회사를 만들어 국내 실업축구 구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K 리그는 물론 대학리그 등에서 승부조작이 만연해 있다는 설도 돌고 있다.

급기야 정부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승부조작을 끝까지 뿌리 뽑겠다”며 대책을 내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일 앞으로 스포츠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나며 해당 경기를 주관하는 단체는 스포츠토토 수익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도록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시행령은 축구 뿐 아니라 야구와 농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단체에 적용된다.

한편으로는 이번에 한국 프로축구의 승부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 동안 수면 아래에서 곪았던 상처를 깨끗하게 치유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블랙삭스 스캔들’이 이른 시기에 터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후 리그의 투명한 경기 운영 체제가 확립되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의 뒤를 따르느냐, 아니면 대만 프로야구의 전철을 밟느냐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프로 구단과 정부, 그리고 팬들이 진정한 스포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할 때다.

※ 이헌재는?

이헌재(37)는 현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 태극전사들의 몸과 관련된 기획으로 제38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야구와 골프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미와 감동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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