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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는 단어로 마냥 행복해지는 곳, 천수만

한혜경 여행작가

2012.02.01 한혜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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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가까워지면서 추위가 한풀 꺾였다. ‘우리나라 겨울 기후는 전형적인 삼한사온’이라 배웠는데, 요즘은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온난화 탓으로 계절감이 엉망이다. 매서운 추위에 꼼짝하기도 싫던 12월의 어느 주말, 저녁 시간대 버라이어티 오락프로그램을 보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전라북도 군산 금강 하구둑에서 촬영된 ‘가창오리의 군무’. 해질 무렵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고, 가오리 모양으로 사라지는 그 영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 군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2010년 10월, 군산과 금강 하구둑을 잇는 약 5킬로미터의 걷기코스를 여행책에 포함시키기 위해 갔을 당시, 거대한 둑으로 가로막힌 바다와 강의 경계에 새들이 무리 지어 나는 모습을 보긴 했다. 하지만 시기가 조금 이른 감이 있어 그랬는지, 일순간 멋지게 날아올라 장관을 이룬 순간은 목격할 수 없었다. 마음이 동한 김에, 그때의 아쉬움도 달랠 겸 다시 철새도래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져 군산까지 가지 않아도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다는 곳을 찾아냈다. 충청남도 홍성과 안면도 사이에 자리한 천수만. ‘새’를 만나는 여행지로는 제격이었다.

새들이 겨울을 나는 천수만. 매년 320여 종 60여 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 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다.
새들이 겨울을 나는 천수만. 매년 320여 종 60여 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 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다.

보령 대천해수욕장과 안면도 남단이 마주보는 곳부터 내륙으로 깊숙하게 패인 천수만(淺水灣)은 그 이름처럼 얕고 잔잔한 바다다. 이곳으로 날아드는 철새는 매년 320종 60여 만 마리다. 새들이 가장 많이 깃드는 곳은 천수만 지역 중에서도 홍성군과 서산시, 그리고 태안군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농지다. 간월호와 부남호를 둘러싼 이 간척지 A, B지구는 원래는 갯벌이었다.

1980년대에 유조선으로 물을 막아 간척사업을 했던 ‘정주영식 개간’의 결과물이다. 15년 3개월의 공사기간, 방조제의 길이 7.7킬로미터, 간척면적은 4,661만 평이라는 숫자만으로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매년 54,000톤의 쌀을 생산하는 이곳이 철새들의 낙원이 된 것은 풍부한 먹이와 호수를 낀 서식조건이 새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영농단지의 운영방침도 새들이 깃드는 데 한몫을 했다.

하늘을 가득 메우는 새들의 비상은 해질녘에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철새탐조여행은 천수만의 자연을 즐기며 새들의 비상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1월은 천수만에서 또 다른 ‘새’를 만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닌가! 속살이 새의 부리를 닮은 ‘새조개’가 제철이다. 1월 중순에서 말까지 이어지는 홍성 남당항의 ‘새조개 축제’도 볼만하다. 아이들 주먹만한 조개껍질 속에 튼실한 속살이 가득 찬 새조개는 단백질, 철분, 타우린이 풍부한 영양식이다. 뜨거운 조개육수에 살짝 익혀먹는 새조개 샤브샤브는 미식가들을 매혹시킨 천수만의 별미다.

새’를 닮은 천수만 새조개. 찬바람 부는 1~2월이 제철이다.
새’를 닮은 천수만 새조개. 찬바람 부는 1~2월이 제철이다.

남당항에서 새들이 깃드는 간척지까지는 서해안임해관광연계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를 끼고 도는 이 도로는 천수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특히 궁리포구의 붉은 낙조는 홍성8경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아름답다. 궁리포구를 벗어나면 곧바로 방조제로 이어진다. 방조제 인근 곳곳에 탐조대와 밀렵감시초소가 보인다. 철새도래지라는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 하지만 새들이 모습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감과는 달리, 얼어붙은 간월호 상공으로 새 몇 마리만 허공을 가르며 날고 있었다.

미리 신청한 철새탐조 프로그램에 합류해 버스를 타고 비개방지역인 영농단지를 돌았다. 버스에 동승한 이들도 모두 가창오리의 군무를 기대하고 왔던 모양이다. 새들은 언제 비행하느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그때 생태가이드의 대답은 정말로 걸작! “가창오리 군무는 승기와 함께 와야 볼 수 있지요.” 다시 말해,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가창오리가 군무를 추는 것은 아니란 소리다. 천수만에서 새의 군무를 볼 수 있는 시기는 개체수가 가장 많은 11월경이다. 1월은 개체수 보다 다양한 종류의 새를 만날 수 있는 시기이다. 1시간 30분 동안 간척지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며 본 것은 기러기류, 오리류, 산비둘기, 작은 텃새들과 무리에서 낙오된 듯한 재두루미와 왜가리, 텃새화 되어가는 대백로, 그리고 맹금류 몇 마리 등이었다.

바다에 뜬 간월암. 밀물 때는 섬처럼 둥실 떠 있지만, 썰물 때에는 육지로 이어진다.
바다에 뜬 간월암. 밀물 때는 섬처럼 둥실 떠 있지만, 썰물 때에는 육지로 이어진다.

시기적인 문제도 있지만, 새들의 수가 격감된 이유에는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름에 의한 1차 피해는 막았지만, 연안 바다와 갯벌의 오염으로 생태계가 악화되는 2차적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새는 환경의 바로미터다. 새들이 살 수 없는 곳엔 사람들도 살 수 없다”는 해설사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탐조여행의 아쉬움이 남았다면, 고려말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는 ‘간월암’을 방문해보는 게 좋겠다.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섬이 되기도 하고 육지가 되기도 하는 간월도 또한 낙조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싱싱한 간월도 굴로 지은 굴밥 한 그릇이면 행복 충전! 추위에 떨던 몸도,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어느덧 녹아 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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