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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8경 유람길에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을 하다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여행작가 한혜경

2012.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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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강릉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일어난 ‘타입슬립’에 관한 이야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연스레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드는 기이한 현상, ‘타임슬립(Time Slip)’. 지난해부터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쓰이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타임슬립 풍년이다. ‘또 타임슬립이야?’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식상해지기 시작한 타임슬립을 오늘은 여행에 접목시켜 볼까 한다. 절대 인기에 편승하거나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를 유독 꺼리는 필자의 특성에 빗대어 ‘심봤다!’를 외칠 만한 장소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관동 8경을 따라 강원도 북부 송지호까지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7번 국도는 볼수록 매력만점이다. 동해에서 양양까지 이어진 고속도로 구간이 빠르긴 하지만, 강원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얼마만큼의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두고 굳이 옛길을 따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런 까닭이다. 양양에서 고속도로를 내리면, ‘좌 설악, 우 동해’라는 황홀한 지리적 환경을 만끽할 수 있고,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볼거리들에 들를까 말까 순간순간 갈등하는 마음의 쪼임이 즐겁다. 맛난 것들이 줄줄이 포진한 뷔페 테이블 앞을 지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특히, 강릉 경포대에서 양양 낙산사, 삼척 죽서루를 거쳐 고성 청간정과 삼일포로 이어지는 옛 관동팔경 루트는 푸른 동해의 물빛이 가슴 가득 배어드는 길이다. 휴전선 이북에 있어 갈 수 없는 삼일포를 대신해,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외금강과 해금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속초시를 지나 고성군의 경계를 넘으면 작은 포구들과 해수욕장들이 아름다운 변주를 시작한다.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어서 북진 속도가 늦어지게 마련.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이곳 저곳 들르다 보면 하루가 휙 지나가 버릴 정도이다.  

관동 8경, 고성 8경의 하나인 청간정. 앞으로는 동해를 뒤로는 설악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정자다.
관동 8경, 고성 8경의 하나인 청간정. 앞으로는 동해를 뒤로는 설악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정자이다.

갈등 끝에 선택한 곳은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淸澗亭). 청간천과 천진천이 합류하는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의 바닷가 기암절벽 위에 정자는 자리해 있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탓에 도로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청간정에 올라 바다를 대면하고 앉아야 비로소 이곳이 관동8경의 하나가 된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탁 트인 푸른 공간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파도와 바위가 만나 빚어내는 소리에 가슴이 절로 시원해진다. 바다를 등지고 앉으면, 설악산과 병풍처럼 펼쳐진 울산바위의 위용이 화폭처럼 펼쳐진다. 자연의 절정을 앉은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신선놀음 하기에 딱 좋은 장소가 아닌가!

청간정을 나서 다시 북쪽을 향하다가 얼마 가지 않아 천학정(天鶴亭)에서 또 발목을 잡혔다. 천학정은 1931년 지어진 정자로 크기나 건축적 가치는 청간정에 비할 것이 못되지만, 깎아지른 해안절벽 위에 자리한 덕에 바다와 멋진 풍광만큼은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남쪽으로는 청간정을, 북쪽으로는 능파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쉬어가지 않고서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동해와 송림에 둘러싸인 천학정.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동해와 송림에 둘러싸인 천학정.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 홀린 듯 빨려 들어간 19세기 씨족마을  

들르고 싶은 곳은 많아 머뭇머뭇 거리다가 목적지를 ‘송지호(松池湖)’로 정했다. 이름에서부터 솔향이 물씬 풍기는 송지호는 둘레만도 십리에 달하는 자연 석호(潟湖)다. 겨울에는 고니가 날아든다니 ‘백조의 호수’가 따로 없다. 사시사철 청명한 물빛에, 갈수기에는 입구가 사구로 막히고, 만수기에는 바닷물이 사구 위로 넘쳐 들어오는 덕에 풍부한 어족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철새에게도, 낚시꾼들에게도 많은 것을 내어주는 곳이다. 천학정에서 7킬로미터 남짓 북쪽에 자리한 이곳은 관동별곡 트레일 8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송지호 길 건너편에는 오토캠핑장으로 이름난 송지호 해수욕장이 있다. 동해에서 수질이 좋기로 손꼽히는 곳인 데다, 한여름에도 평온하고 한가로운 바닷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명소이다. 매년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 ‘물 반 사람 반’의 진풍경을 연출하는 유명 해수욕장을 대할 때마다 자연이 얼마나 힘들겠나 싶은 불편한 마음이 드는데, 이곳은 그런 맘을 먹지 않게 해줘서 좋다. 송지호를 나와 통일전망대 쪽으로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길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왕곡마을’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관광지도에서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왕곡마을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왠지 모르는 기운에 이끌려 홀린 듯 표지판을 따라 7번 국도 아래 작은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좁은 터널을 지나자 인적이 뜸한 시골길이 등장했고, 인적도, 표지판도 없는 그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초가집들이 보인다. 식당, 한과판매점 등으로 운영되는 지은 지 얼마 안된 초가집들 옆으로 주차장이 마련돼 있었다. 청간정, 천학정, 송지호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여행길에서 발을 헛디딘 느낌이었다. ‘드라마 세트장처럼 돈벌이를 위해 대충 만든 테마파크인가봐’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짜증이 밀려왔다. 여름 한낮의 열기에 돌아 다니는 사람도 없어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아, ‘왕곡마을 보존회’라 쓰인 사무실 문을 두드려 마을입구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곳은 저잣거리 형태로 새로 조성한 곳이고, 진짜 마을은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차에 올라 고개를 넘으니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에 서 있다. 그 뒤로 야트막한 산 아래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현대적인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 옛날 시골모습 그대로의 풍경. 조선시대를 연상시키는 뜻밖의 광경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휴머니즘과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북방식 겹집

8월의 폭염 때문인지 동네를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나 외엔 없다. 사시사철 인파로 북적거리는 안동 하회마을이나 아산 외암마을, 순천 낙안읍성과도 느낌이 다르다. 해발 200미터 내외의 다섯 봉우리가 둘러싼 아늑한 분지에 자리한 이 마을은 잠시 전 들른 송지호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 북쪽에 자리한 오음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왕곡천’이 되어 동네를 관통하고, 물길 옆으로 난 큰길을 따라 가옥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다. 집과 집 사이의 텃밭에는 싱싱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왕곡마을은 600년 전통의 씨족마을이다. 강릉(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 용궁 김씨 50여 가구가 모여 산다. 원형에 가까운 관북지방 전통한옥이 보존되어 있어 2000년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한옥들은 50~180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라 한다. 예쁜 돌담 뒤로 초가집 지붕 아래 오순도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길을 따라 설치된 기둥모양의 가로등과 간혹 보이는 위성방송 안테나가 없다면, 마을은 그 가옥들이 지어진 100여 년 전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마을에 자리한 관북지방 전통한옥
마을에 자리한 관북지방 전통한옥

그리고 마을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이 마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첫째, 이 마을에서는 대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의 특성상, 고립을 막고, 더 많은 햇볕을 마당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라 한다. 생태환경적 특성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역공동체에 속한 이들간의 강한 믿음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마당을 개방하는 대신 뒷마당은 담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둘째, 보통 일자형으로 짓는 다른 지역의 한옥과는 달리, 집 한쪽 귀퉁이에 작은 지붕을 덮은 여분의 공간이 덧붙어 있는 점이다. 그 공간에 대한 쓰임새가 궁금해졌다.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차마 보여달라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 문화해설사를 만나 집 구경을 부탁했다. 다행히도 이 마을에는 고성군청이 매입해 전통체험민박으로 운영하는 7채의 집이 있다고 한다. 성천집, 진부집, 갈벌집 등 이 동네로 시집온 여인들의 고향이름이 붙여진 집들 중 한곳의 문을 열어주셨다. 부엌문이라 상상했던 문을 여니, 뜻밖의 공간이 펼쳐진다. 부엌이라기보다는 지붕 아래 마련된 작은 마당에 가깝다. 한쪽에 자리한 부뚜막 옆으로 방으로 오르는 높은 툇마루가 이어지고, 반대편 약간 낮게 바닥이 패인 곳에는 외양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집 한쪽으로 튀어나온 작은 지붕은 바로 외양간 지붕이었던 셈.

춥고 긴 강원도의 겨울을 사람과 동물이 한 공간에서 이겨내도록 고안된 집 구조에서 휴머니즘이 느껴진다. 높낮이로 사람과 짐승의 영역을 구별할 뿐, 평면적으로는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이 지방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훈훈하게 다가왔다. 겹집 내부는 한여름 뙤약볕에도 에어컨을 켠 것처럼 시원했다. 겨울이 되면 사람과 짐승이 공유하는 이 공간은 서로의 체온으로 더욱 따뜻했으리라. 마당을 돌아보다 굴뚝 위에 올라앉은 항아리들에 시선이 갔다. 뜻밖의 위치에서 발견된 항아리들에 대해 물으니, “굴뚝에서 불꽃이 날아가 지붕에 옮겨 붙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다. 항아리 덕분에 밖으로 배출될 더운 공기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효과도 있다”고 문화해설사는 이야기해준다.

왕곡마을 풍경
왕곡마을 풍경

풍수학상의 길지, 600년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이 밖에도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가득했다. 마을 탄생 이야기부터가 그렇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고려 충신 함부열이 고성에 은거하고, 그의 자손 함영근이 이곳 오봉리에 터를 잡으며 600년 씨족마을은 그 역사를 시작했다. 그와 뜻을 같이 하던 함씨들이 마을로 모여들며 마을은 오늘에 이른다. 게다가 마을 입구에 선 동학사적 기념비는 이 마을이 범상한 마을이 아님을 강조해 주는 듯 하다. 1889년 천도교 2대 교주인 최시형 선생은 이 마을을 거점으로 포교활동을 했다 하며,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에는 동학군들이 마을에 머물며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산골에 자리했지만, 가장 뜨거웠던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했던, 의식이 깨어있는 마을이었던 것이다. 

왕곡마을의 풍수지리 이야기도 흥미를 돋운다. 하늘에서 본 마을은 유선형의 배가 동해에서 송지호를 거쳐 들어오는 형상이라고 한다. 배 모양의 길지로 알려진 이 땅의 지기(地氣)를 유지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우물조차 뚫지 않았다 한다. 배 바닥에 구멍을 내면 배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산들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 덕인지, 풍수학적 길지이기에 덕을 본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마을은 수백 년간 전란과 화마로부터 안전했다. 치열했던 한국전쟁의 강원도 격전지와 멀지 않은 장소임에도, 마을은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 마을에도 떨어진 몇 개의 폭탄은 모두 불발탄이었다고.

그 뿐 아니다. 1996년, 고성 전역을 잿더미로 만든 산불에도 마을은 해를 입지 않았다. 마을을 둘러싼 산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불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지만, 다행히도 마을로 옮겨 붙지 않았다. 산불은 인가 근처에서 스스로 사그라졌다 한다. 소나무가 울창했던 산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 위에 어린 나무들이 다시 돋아 산들을 푸르게 감싸고 있다. 동네를 돌아 나와 신작로에 서니, 600년을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어준 왕곡마을이 고마웠다. 타입슬립 하듯 우연히 빨려 들어갔던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원형이 망가지고, 상업적으로 변하는 곳들을 많이 봐 왔기에 그 모습 그대로 기억 속에 가득 담아가고 싶었다. 도시 생활에 지칠 때면, 나는 또 다시 그 길을 달려 타임슬립을 시도할 것 같다. 인간냄새 물씬 나는 그 겹집에 누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마을을 600년간 지켜온 그 마을의 뚝심을 가득 충전해 돌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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