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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숲 대회 대상 탈만 하네~”

한혜경 여행작가

2011.10.17 한혜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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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어느 8차선 도로. 빌딩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에 숨이 턱 막힌다. 제각각 멋스럽게 지어져 오히려 부조화를 이루는 건물들 사이로 이어진 도로와 그 위로 끊임 없이 지나는 자동차들… 엔진소리와 경적소리가 뒤엉킨 이 삭막한 거리의 풍경에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은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다.

여행작가가 되기 전 도시생활의 빠른 템포에 맞춰 살던 당시에는 가로수에 눈길을 준 적이 거의 없었다. 수종은 무엇이고 몇 년이나 된 나무인지, 언제 꽃이 피고, 어떤 열매를 맺는지 등 가로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관심 밖이었다. 그저 도시를 구성하는 당연한 부속품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심지어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길에서도, 가을이 깊어져 잎사귀가 노랗게 변하고 나서야 ‘어? 여기 은행나무가 있었던가?’라고 느낄 정도였으니… 곰곰 생각해보면, 가로수에 신경이 쓰이는 시기가 있긴 했다.

이른 봄부터 시작되는 가로수 가지치기 시즌. 잎과 가지가 풍성하던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가 가지를 몽땅 잘린 채 전봇대처럼 변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잎이 많아 그늘이 진다며, 간판을 가린다며, 봄이면 꽃가루가 날린다며 가지를 잘라내는 통에 몇 십 년을 자라도 나무는 늘 같은 크기였다.

1970년대, 빨리 자라고 옮겨 심어도 큰 탈 없이 자란다는 이유로 상당수의 플라타너스가 우리 국토 곳곳에 심겼다. 새 길을 닦으면 가로수로 심었고, 학교를 세우면 교정에 이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심는 것이 당연했다. 잘 자란다는 점은 플라타너스에게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었다. 손바닥처럼 생긴 커다란 나뭇잎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풍성한 녹음을 제공해주고 공해물질의 흡수가 빠른 좋은 나무이긴 하지만, 건물과 간판을 가리기 때문에 상업활동에는 대표적인 방해물로 미움을 받았다. 도시의 가로수로 뿌리를 내린 플라타너스에게 가지치기는 어쩌면 숙명이나 다름 없었다.

웅장한 플라타너스 7그루가 늘어선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임고초등학교
웅장한 플라타너스 7그루가 늘어선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임고초등학교
 
벌초가 한창이던 지난 추석 즈음, 경북 영천에 갈 일이 있었다. 친환경으로 복숭아를 재배하는 농민과 안면을 트게 되어 복숭아 맛도 보고, 일손도 좀 거들 겸 갔던 짧은 여행길이었다. 밤까지 이어진 복숭아 포장작업을 마치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늦은 저녁밥상에 마주앉았다. 세상 사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그 중에 ‘임고’라는 동네 이야기도 화제로 올랐다. 포은 정몽주를 배향하는 ‘임고서원’과 오래된 플라타너스들이 있는 ‘임고초등학교’. 이 두 곳만으로도 충분히 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임고’라고 그는 말했다.

밥상을 물리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할 때까지 설레었던 기억…서원도 서원이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플라타너스였다. 공해에 찌들지 않고, 가지치기도 당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플라타너스가 궁금했다. 추석을 지내고 몇 주 뒤, 다시 영천으로 향하는 길에 임고에 들렀다. 임고면 소재지에 자리한 임고서원은 성역화 사업으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그곳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 임고면 사무소와 보건소 안쪽으로 작지만 깔끔한 인상의 시골 초등학교가 자리해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플라타너스. 어릴 적 학교에서 봤던 나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웅장한 모습에 절로 탄성이 터졌다. 2층 높이의 학교건물에 대비되어 그 크기는 더 도드라져 보인다. 1924년 학교가 개교할 당시, 수령 10년 안팎의 플라타너스들을 이곳에 옮겨 심었고 어느덧 한세기를 지나 지금의 풍경을 이룬 것이라 한다. 높이 36~43미터, 둘레 3.7~5.4미터에 이르는 나무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르고 건강하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도열하듯 늘어선 일곱 그루의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나무와 그들이 운동장 위로 드리운 시원한 그늘… 공해에 찌들어 힘들게 연명 해나가는 도시의 플라타너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성장을 저지하는 수많은 외부적 요인들에 짓눌려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그 나무들도 원래는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자라는 나무였다니!
 
수령 100년이 가까운 거대한 플라타너스들이 운동장에 그늘을 드리운다.
수령 100년이 가까운 거대한 플라타너스들이 운동장에 그늘을 드리운다.
 
임고초등학교는 ‘2003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학교 숲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은 가지마다 보기만해도 눈과 가슴이 시원해지는 초록의 잎들이 아름답다. 붉은 색 사루비아가 심긴 학교건물 앞 화단과 어우러져 서정적이고 정겨운 느낌을 준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바스락하고 부서지는 커다란 낙엽들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해 줄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우리라는 생각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 학교 출신 중에는 시인과 작가가 많다고 한다.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고 보낸 유년시절이, 숲을 벗하며 키운 시심이 자연을 닮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가 보다.

몇 년 전부터 대도시의 구청들은 30~40년 된 플라타너스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소나무, 은행나무,느티나무 등을 심는 가로수 수종 교체작업에 열심이다. 그늘을 드리우는 것도 문제지만, 봄이면 플라타너스의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이 생긴다는 민원이 많기 때문이란다. 가지치기로 모자라 수종변경까지, 도시의 플라타너스의 수난은 쉽게 끝날 것 같진 않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하나. 봄철이면 날리는 플라타너스의 씨털은 눈과 코에 자극을 주기는 하지만 알레르기성 비염의 직접 원인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오해와 미움 속에 많은 수의 플라타너스들이 다른 수종으로 변경되었다. 가로수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플라타너스는 이제 은행나무에 왕좌를 내어주고 2인자의 자리에 내려 앉았다. 청주로 들어가는 입구의 플라타너스 터널(흥덕구 강서동 사무소 휴암교차로)처럼,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하게 가지를 뻗는 플라타너스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임고초등학교의 플라타너스처럼, 도시에서도 나무의 본성에 맞게 성장한 플라타너스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시가 그래도 살만한 곳임을 나무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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