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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이조 생태여행 ‘조선 왕릉’을 걷다

한혜경 여행작가

2011.11.16 한혜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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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꼬박꼬박 챙겨보던 TV드라마가 있었다. 역사에 픽션을 듬뿍 가미해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려냈던 <공주의 남자>. 왕이 되고 싶은 수양대군과 그가 일으킨 계유정란의 회오리 속에 생을 마감한 김종서, 그리고 단종과 경혜공주 등 역사적 실존인물들이 등장해 무척 흥미로웠다.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막을 내린 그 드라마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11월 13일, ‘고종황제 대례의궤 반환기념 문화제’가 열렸던 남양주시에서였다.

지난 10월 노다 일본총리는 일제강점기에 약탈해 간 5권의 옛 책을 들고 방한했다. 한일도서협정으로 올 12월 5일까지 반환할 1,205권 중 일부였다. 5권 중에는 고종황제의 즉위와 대한제국 선포 과정을 담은 조선왕실의궤 <대례의궤>도 포함돼 있었다. 이 <대례의궤>의 귀환을 고종황제께 보고하는 ‘고유제’가 열린 곳이 홍유릉(洪裕陵), 바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국왕 순종이 잠들어 계신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황제릉인 ‘홍릉’과 유일한 동봉삼실 합장릉(한 능침에 세 명을 함께 모신 릉)인 ‘유릉’을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던 길. 목적지를 코 앞에 둔 사거리 교통표지판에서 홍유릉의 반대방향으로 표시된 ‘사릉’이라는 두 글자에 시선이 꽂혔다. 사릉? 어느 분의 능이지?

석상들이 늘어 선 홍릉, 침전 뒤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신 능이 있다.
석상들이 늘어 선 홍릉, 침전 뒤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신 능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유제가 열리는 홍릉 침전까지 걸었다.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진 굴참나무, 잣나무, 독일가문비나무 등이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키 자랑을 하고 있다. 석축을 쌓아 물이 흐르도록 만든 개울가의 검버섯처럼 이끼 낀 돌들이 세월의 흔적을 읽게 해준다. 어제실(御齋室) 앞으로 몸을 뒤틀며 자란 향나무의 자태도 곱다. 산새소리, 바람소리, 발바닥 아래 굵은 모래가 밟히는 소리… 그곳엔 자연이 아름답게 깃들어 있었다.

홍릉과 유릉은 195m 정도의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이 길은 홍릉 앞 동그란 섬을 한가운데 조성한 둥근 연못을 끼고 돈다. 네모난 연못에 동그란 섬을 조성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연못과는 조금 다른 형태와 느낌의 원지원도형 연못이다. 연못 감상이 한창일 때 시선을 가로지르는 검은 물체! 검은 청솔모였다. 풍성한 꼬리털에 통통한 몸매,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털까지 겨울잠 잘 준비를 단단히 모양새다. 바스락 하는 인기척에 놀라 녀석이 나무 위로 줄행랑을 쳤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녀석의 뒷모습을 아쉬운 마음에 한참 쳐다봤다. 올 겨울도 무사히 잘 나기를…

오솔길 곳곳에는 나무 안내판이 있다. 그 중 ‘스트로브 잣나무’라고 쓰인 명패가 보인다. 북아메리카에서 1920년대에 수입해 심은 그 나무는 잣나무이지만 잣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열리는 것은 우리나라 잣나무뿐인가 보다. 지난 가을 메밀꽃 질 무렵,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효석 생가가 있는 봉평에 들렀다. 거기서 솔방울처럼 생긴 잣 열매를 몇 개 사 왔다. 비늘 같은 껍질을 하나씩 젖힐 때마다 단단하게 여문 잣들이 2알씩 ‘짜잔’하고 나타났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도시인들에게는 평생가야 보기도, 만져볼 수도 없는 것들… 잣을 까는 동안 집안 가득 퍼진 피톤치드 향기에 후각은 얼마나 호사를 누렸는지! 역시, 생태여행은 다방면의 식견을 넓히기에 좋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릉 앞 원지원도 형식의 연못 가에서 만난 청솔모. 겨울날 준비를 단단히 한 듯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홍릉 앞 원지원도 형식의 연못 가에서 만난 청솔모. 겨울날 준비를 단단히 한 듯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앗!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를 다시 홍유릉으로 돌려놓을 시간! 홍릉 침전에서 행해진 고유제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동안에도 머리 속에서는 ‘사릉’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릉의 주인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동구릉=먹골배, 서삼릉=종마장 데이트, 태릉=선수촌, 선릉=2호선 지하철역, 홍릉=갈비’라는 도식이 내 머리 속에 꽉 차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역사에 너무 무지했던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부끄러웠다.

그래서 사릉에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고유제가 끝나갈 무렵, 서둘러 홍유릉을 빠져나와 사릉으로 향했다. 홍유릉과 사릉은 자동차로 10분 거리. 한적한 시골 양지바른 곳에 사릉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차장이 없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능이 비공개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 능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비공개인 사릉을 관람하려면, 사릉관리사무소에 관람신청을 해야 한다. 관리사무소에서 간단한 신청절차를 마치고 사릉으로 향했다.

관리사무소 뒤쪽 ‘전통수목양묘장을 지나 100여m 송림을 걸어야 능에 닿는다. 전통수목양묘장도 볼거리가 많다. 궁·능·원의 전통조경에 필요한 느티나무, 회화나무, 화목류, 앵도나무, 매화나무 등 100종의 나무들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 백송 등을 기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늦가을 양묘장과 송림엔 인적이 없다. 소나무 향내를 맡으며 혼자 송림을 독차지하고 있자니, 마음이 정화되고 생각이 깊어진다. 이곳이 왜 사릉(思陵)인지 알 것만 같다.

송림에 둘러싸인 사릉. 부드러운 언덕 위 자그마한 능침엔 비운의 왕후가 잠들어 있다
송림에 둘러싸인 사릉. 부드러운 언덕 위 자그마한 능침엔 비운의 왕후가 잠들어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능에는 조선 6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가 잠들어계셨다. 단종 2년(1454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대비로, 다시 부인으로 지위가 강등되었던 여인. 단종이 강원도 영월에 유폐되고 17세의 나이에 죽음을 당한 뒤로는 단종 생각에 매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한 세월을 보냈고, 82세에 생을 마감하고서도 단종과 함께 하지 못한 비운의 왕비다.

사릉에는 정순왕후의 능 외에 작은 묘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사능관리인에게 물으니 묘는 모두 10기 정도 된다 한다. 그 중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鄭悰, ~1461)의 묘도 있었다. 능지처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모습은 TV 드라마를 통해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의 장면들이 마구 떠오르던 찰나, 궁금증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왜 정종의 묘가 사릉에 있는 걸까?’ 이유인즉슨,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의 가족 묘역 안에 그녀를 안장하고 제사를 지내주었기 때문이란다. 사릉이 자리한 지역은 정종 가문의 옛 선산이었다.

다른 능들과 달리 능이 자리한 언덕 아래 울타리가 쳐지지 않아 더 좋았다. 동구능 언덕에서 구르며 깔깔댔던 어릴 적 기억 한 자락이 문뜩 떠올랐다. 먹골배가 맛있게 익은 늦가을의 어느 날. 가족소풍으로 갔던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부드러운 언덕 능선을 따라 데굴데굴 구르는 어린 내 모습이 사릉 언덕에 오버랩됐다. 온 몸에 잔뜩 묻어나던 바싹 마른 누런 잔디의 빛깔도 생생했다. ‘능과 다른 묘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라는 관리인의 당부만 아니었어도 다시 한 번 굴러보고 싶었던 그 짧고도 강렬했던 욕망!

마음을 누르며 황급히 돌아 나오는 길, 송림 사이로 단풍이 유난히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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