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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삶과 문화가 켜켜이 쌓인 갯벌유산

[김준의 섬섬옥수] 인천 장봉도 풀등

2022.10.25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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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는 갯벌이 담장처럼 외곽을 둘러싼 섬이다. 동만도, 서만도, 날가지, 아염, 사염 등 9개의 무인도가 그 갯벌을 지키고 있다. 모래갯벌에는 백합, 동죽, 범게 등이 서식하고 펄갯벌에는 낙지와 모시조개가 있다. 혼성갯벌에는 바지락이 어민들의 소득원이다.

여름철이면 옹암해변에 해수욕객들이 몰려오는 것도 모래갯벌과 방풍림이 있어 가능했다. 낙지를 잡던 어민이 머물던 자리에 검은머리물떼새 한 쌍이 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근처에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알이 있거나 새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낙지 잡는 어민들이 지나갈 때는 조용하던 녀석들이 낯선 이방인의 출입에 경계의 눈빛이 매섭다.

동만도와 서만도 주변 모래갯벌.
동만도와 서만도 주변 모래갯벌.

바다에 ‘고’를 풀다

장봉도 싸리골이 있다.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싸리나무는 땔감으로 좋지만 발을 엮어 조기, 청어, 민어 등을 잡기에도 좋다. 싸리발이 명주그물로 바뀔 무렵일까, 건어장과 옹암 마을에 파시가 형성되었다. 술을 팔고 웃음을 파는 작부들도 자리를 잡았다.

조금물때에 날가지와 만도리 어장에서 돌아온 어부들은 그곳에서 외로움을 달랬다. 만도리어장은 동만도와 서만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곳 새우가 많이 잡히고 맛도 좋아 연평조기와 덕적새우에 이어 ‘만도리새우’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만도리어장은 넒게는 주문도, 장봉도, 우도 사이에 있는 바다로 젓새우와 실치가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강화도와 인천지역 어선들은 물론 충청도와 전라도 배들도 올라와 조업을 했다. 장봉도에 충청도에서 시집온 사람이 많은 것도 실치포를 만드는 여성들이 일을 하러 왔다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실치를 잡는 봄철이면 삼길포, 장고항 등 실치포를 잘 만드는 지역 여성 700여 명이 장고도에 머물며 뱅어포를 만들기도 했다. 장봉도에 파시가 형성되던 시기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장봉도 앞 날가지 어장에서 주민 한 사람이 그물에 인어가 걸려 올라왔다. 너무 불쌍해 바다에 놓아 주었다. 며칠 후 연 사흘 동안 그 어민의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 어부는 인어가 보은으로 고기를 보낸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장봉도역에 세워진 인어상도 이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다.

아염, 사염, 날가지 등 무인도 주변의 ‘날가지어장’.
아염, 사염, 날가지 등 무인도 주변의 ‘날가지어장’.

만도리어장에서 새우를 잡는 배를 ‘곳배’라 불렀다. 곳배는 배를 정박할 때 닻 대신 ‘고’를 사용한다. 이 고는 무거운 돌을 망에 담아 닻으로 이용했다. 시도와 모도, 모도와 장봉도 사이 수로가 좁고 조류가 빠른 곳에서 새우를 잡을 때 이 고를 이용해 배를 정박하고 들물과 썰물에 맞춰 새우를 잡았다. 고는 매듭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새우잡이 배를 물살에 움직이지 않도록 닻과 연결하는 고리이다. 고를 매야 새우를 잡는 그물을 내릴 수 있다. ‘곳배’인 이유다.

고에 매달린 배, 고는 뱃사람의 생명줄이다. 지금처럼 쇠로 만든 닻을 사용하기 전에는 나무로 닻을 만들었다. 더 옛날에는 나무를 우물정(井)으로 쌓아 묶고 그 안에 큰 돌을 넣어 고를 만들었다. 배의 고물에 암수 두 개의 긴 서가래 형의 나무를 놓고 그물을 걸어 물이 들고 날 때 그물을 펼쳐 새우를 잡았다.

1970년대 장봉도는 해선망 35척, 유자망 20척, 낭장망 13척이 있는 어장의 중심이었다. 해선망은 곳배를 말한다. 이 배로 새우와 실치를, 낭장망은 멸치나 까나리를, 유자망은 꽃게를 잡았다. 곳배에 뱃사람이 6명씩 탔으니까 못해도 200여 가구는 먹고 살았다. 여기에 그물손질 하는 사람, 새우를 추리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 젓갈을 담는 사람, 파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살았다. 건어장 마을에 곳배가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다. 신안과 영광에서는 곳배와 비슷한 새우잡이배를 ‘멍텅구리배’라고 불렀다.

장봉갯벌이 준 선물

서만도 풀등에서 백합을 채취하는 어민들.
서만도 풀등에서 백합을 채취하는 어민들.

바닷물이 살아나는 세 물부터는 어민들은 배를 타고 무인도인 동만도나 서만도로 백합잡이에 나선다. 이곳은 마을어업을 하는 공동어장으로 그레를 이용해 백합을 채취하고 있다. 마을어업은 날가지, 사염, 아염 등 무인도 주변과 옹암해변, 평촌 앞 한들갯벌, 가막머리 해변 등에도 있다. 모래갯벌이 발달한 곳에서는 백합을, 혼성갯벌이 발달한 곳에서는 바지락이나 낙지 등을 채취한다.

서해갯벌 중 강과 바다가 제대로 소통하는 곳으로 장봉도만한 곳이 있을까.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조강에서 만나 일부는 강화갯벌로, 또 일부는 장봉도 모래갯벌로, 그리고 나머지는 볼음도와 주문도와 이작도에 머문다. 이들 지역은 모두 모래갯벌이다. 새만금갯벌 이후 마지막 남은 우리나라에 최고 최대 백합서식처이다.

몇 년 전이다. 멀곶의 한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다 백합을 보고 반가워 물으니 한들갯벌에서 캐온 것이라 알려줬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물때에 맞춰 한들갯벌로 향했다. 새만금 갯벌에서 본 이후 처음으로 그레로 백합을 채취하는 주민들을 보았다. 마치 오랜만에 어머니가 만들어준 집밥을 맛본 느낌이라면 과장일까. 그 뒤 주문도와 볼음도도 찾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동만도와 서만도 모래밭과 만났다.

장봉도 여행객에게 인기가 좋은 백합칼국수.
장봉도 여행객에게 인기가 좋은 백합칼국수.

백합을 캐기 위해 모두 세 척의 배가 움직였다. 얼추 헤아려도 주민들이 30여 명은 넘을 것 같았다. 부안갯벌에서 백합을 채취하기 위해 경운기를 타고 갔다면 이곳에서는 배를 타고 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조차가 10미터가 넘는 서해의 풀등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도구는 ‘끄렝이’이라 부르는 어구로 갯벌을 긁는 날과 허리에 걸치는 줄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신안, 고창, 부안, 서천 지역에서 백합을 채취하는데 도구의 모양과 채취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장봉도 어민들은 백합만 아니라 바지락, 낙지 등을 채취하는 맨손어업에 종사한다. 다양하고 건강한 갯벌이 있는 탓이다. 또 양식어업으로는 굴 양식, 김 양식, 피조개 양식, 가무락 양식 등도 하고 있다. 김 양식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완도에서 김 포자를 가져와 처음에는 6가구가 시작하여 1990년대 100여 가구가 참여했다. 김 공장만도 32개나 되었다. 당시 장봉도에서 4, 500만 속이 생산되어 ‘푸른신협’을 통해 전국으로 판매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산김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992년 영종도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면서 폐업되었다가 한정면허로 10여 가구가 김 양식을 하고 있다. 바다만 풍요로웠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숙종실록(숙종4년, 10월 庚寅條)’을 보면, ‘장봉도는 토지가 매우 비옥하여 사람이 모두 들어가길 원한다’고 했다. 지금도 장봉도는 물이 좋아 벼농사가 활발하며 섬포도와 호박토고구마가 특산물이다. 이 특산물은 옹암선착장 ‘장봉바다역’에서 특산물로 판매하고 있다.

장봉도 지주식 김양식장의 모습.
장봉도 지주식 김양식장의 모습.

풀등에 머무는 생명들

장봉도 갯벌이 좋은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은 한강과 임진강에서 찾아야 한다. 강물은 김포와 강화를 돌아 염화수로와 석모수로를 지나 긴 섬 장봉도를 거쳐 바다로 든다. 그 사이 바다와 강은 동검도, 서검도, 날가지, 아염, 사염 등 장봉도 옆 무인도에 모래를 쌓아 놓았다. 수천 년 시간이 켜켜이 쌓인 생명의 곳간이다. 이곳은 인간을 위한 곳간만은 아니다. 한강을 들고 나는 온갖 생명의 쉼터, 먼 바닷길을 달려온 회유성 물고기들이 새로운 생명을 안고 부활을 꿈꾸는 보금자리이다.

조선조 왕실과 양반들이 즐겼던 반지(밴댕이)나 웅어도 이 갯벌이 있어 가능했다. 어디 바다 물고기와 저서생물들만 그렇던가.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백로와 괭이갈매기가 집단으로 머무는 것도 갯벌 때문이다. 시베리아를 출발해 저 멀리 호주로 가는 도요물떼새, 저어새들도 이곳 갯벌에서 야위어진 몸을 추렸다. 이것이 장봉도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이유다. 생물다양성과 물새들의 서식지, 어민들의 삶터로서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저어새(사진 제공=여상경).
저어새(사진 제공=여상경).

봄에는 알락꼬리마도요, 청다리도요, 검은머리물떼새, 흰물떼새 등 도요물떼새류가 작은 게나 갯지렁이를 찾는다. 또 여름에는 노랑부리백로, 중대백로, 저어새 등이 물이 빠지는 갯벌에서 작은 물고기를 사냥한다. 새우가 많은 가을에는 괭이갈매기가 모여든다. 어민들이 끄렝이로 백합을 채취하는 풀등 너머 동만도와 서만도에는 물새들이 서식처를 마련하고 산란을 하기도 한다. 동만도와 서만도 외에 날가지도, 아염도, 사염도 등 갯벌에는 해양생물들이 서식하고, 섬에는 새들이 머문다.

이뿐만 아니다. 장봉도는 평촌을 비롯해 밭농사는 물론 논농사를 짓는 곳도 많아 겨울철에는 오리류와 기러기류 등 철새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섬은 동만도와 서만도다. 특히 개체 수가 줄어 국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어머리갈매기, 검어머리물떼새 서식처이다. 인천시는 최근 저어새를 비롯해 점박이물범, 흰발농게, 금개구리, 대청부채 등 5종을 깃대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금개구리를 제외하면 모두 인천의 섬(무인도)과 갯벌에서 서식하는 생물종이다.

혼성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어민.
혼성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어민.

인간의 간섭이 적은 무인도는 물새들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기 좋은 곳이다. 친환경으로 벼농사를 짓는 평촌의 무논에는 어김없이 백로가 찾아온다. 바다와 섬의 생태는 섬사람들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며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획일화되지 않는 섬사람들의 넓은 심성을 만들어내는 자양분이다.

거칠어 보여도 속내가 순박하고 씀씀이가 크고 여유로운 것도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리가 놓이고 여행객이 더 많이 찾게 되면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전에 잘 보전하고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연안습지보호지역을 넘어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확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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