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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프렌치 팝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위대한 유산

[대중음악 A to Z, 장르를 관통하는 26개 키워드] ⓨ예-예(ye-ye)

2022.10.26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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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등장했던 팝 음악 스타일이 바로 ‘예-예(ye-ye)’다.

이는 영국과 미국 로큰롤 비트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가사는 거의 불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바로크와 재즈, 그리고 프랑스 샹송 등을 뒤섞어 내면서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로써 귀결됐다.

당시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모국어로 노래하는 예술가를 기꺼이 지원했고, 때문에 프랑스는 불어로 된 노래를 소비할 수 있는 큰 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르의 이름은 비틀즈의 ‘She Loves You’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흔한 영어 추임새 ‘예-예’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특히 여성 가수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을 ‘예-예 걸’이라 칭하곤 했다. 때문에 이는 남성들이 지배했던 ‘브리티쉬 인베이전(영국 로큰롤의 미국 시장 침공)’과는 달리 여성 스타들을 주로 배출해냈다.

풋풋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던 이들이 황금 시간대 TV 쇼에 등장하자 십대 청중들은 이들에게 자신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젊은이들은 60년대 당시 부모 세대들이 입는 스팽글 이브닝 드레스와는 차별화된 짧은 치마와 바지, 그리고 스웨터를 입었다. 1960년대 파리지앵의 감각적인 외형 또한 이 음악들이 퍼져 나가는 데에 일조했다.

여러 스타들의 성공으로 인해 ‘예-예 스타일’은 전세계로 확장됐다. 실비 바르탕은 정교한 안무와 분위기를 무기로 레코딩 분야를 넘어 퍼포먼스 활동 또한 공격적으로 전개해내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에서까지 그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한 두 곡의 히트곡을 남기고 사라지곤 했지만 제인 버킨의 경우에는 다른 동종 장르 가수들에 비해 평생에 걸쳐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셀쥬 갱스부르는 제인 버킨, 그리고 초창기 프랑스 갈의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셀쥬 갱스부르, 그리고 그의 아내 제인 버킨 모두 이후 ‘예-예’라는 장르와는 별개로 하나의 거대한 아이콘이 되어버린다.

지난 2019년 스위스 팔레오 페스티벌서 공연하고 있는 제인 버킨.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2019년 스위스 팔레오 페스티벌서 공연하고 있는 제인 버킨.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0대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프랑스 갈의 경우 국내에도 익숙한 히트곡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Laisse tomber les filles’ 같은 곡은 에이프릴 마치에 의해 ‘Chick Habit’이라는 제목의 영어 곡으로 번안되면서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데쓰 프루프>에 삽입되기도 한다.

프랑소아즈 아르디는 이 분야에 있어 최전선에 위치한 인물이었다. 엄격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영미권 록 음악에서 자유를 찾았다.

대부분의 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남성복에서 영감 받은 옷들을 걸치면서 옆집 소녀의 아름다움과 양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뿜어내기도 했다.

주로 외로움을 다루는 곡들을 많이 만들었고 몇몇 우울한 분위기들은 다른 친숙하고 평온한 예-예 걸들과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예-예 걸들은 주로 사랑에 대해 노래했지만 학교 생활과 외로움 같은 일상적인 주제들 또한 다뤄왔다.

예-예는 등장했을 당시부터 환호를 받았다. 동시대의 믹 재거와 밥 딜런부터 후에는 스테레오랩과 세인트 에띠엔에게 직접적으로 옹호되었다.

90년대로 넘어가면서는 이것이 불현듯 일본에서 리바이벌되었는데 피지카토 파이브, 카히미 카리 등을 비롯한 일련의 시부야계 음악들로 수혈됐고, 이런 작법은 몇 년 후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런 음악이 유행했을 당시에는 예-예나 프랑스에 관해 언급되기 보다는 일본 풍의 스타일로 인식되곤 했다.

예-예는 1960년대의 급변하는 음악적 시대 정신에 뿌리내렸다. 이는 단순히 영미권의 로큰롤을 유럽 시장에 맞게 번안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고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면서 음향적으로도 흥미롭게 확장되어 갔다.

그러면서 이는 프랑스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유럽, 그리고 한 시대를 정의하는 창의적인 위치에 자리잡게 됐다. 1960년대 문화 예술 전반에 넓은 영향을 미친, 부드럽고 감각적인 흐름이었다.

예-예 곡들의 대부분의 작곡가는 남성이었고 노래는 여성이 부르는 포맷이 다수였지만 그럼에도 종종 페미니즘과 연결되곤 했다.

이는 절박하고 공허한 목소리 대신 유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주로 그려 나갔는데 소녀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자유분방하고 새로운 여성의 원형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거기에 페미니즘 운동과 학생 시위 등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던 시대에 발맞춰 등장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오히려 예-예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을 지도 모른다.

노골적으로 정치적이거나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멜로디와 춤을 출 수 있는 비트는 소녀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주장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줬다.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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