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용등급이다. 그런데 이 신용등급을 맞춤법으로 판단한다면 어떨까. SNS에 올린 글을 보고 맞춤법이 틀리면 고객의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실제 이런 빅데이터 세상이 오고 있다.
미국 신용평가사들이 이용하는 변수 중 하나는 맞춤법이다.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 사람일수록 원금 상환에 대한 의지가 높다는 것이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 교수인 아심 크와자 교수가 설립한 재무테크닉 기업 EFL(Entrepreneurial Finance Lab)에서는 고객이 대출 신청 과정에서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지, 띄어쓰기를 제대로 했는지를 고객 신용도에 접목시켰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 대출자는 틀리는 대출자에 비해 평균 15%가량 덜 연체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 내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신용평가사들이 이 방법을 활용할 정도로 인정받는 기술이 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신용평가사 크레디테크(Kreditech)는 빅데이터 중심의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한 곳이다. 기존의 은행거래 정보는 물론, 페이스북과 이베이, 아마존에서의 행동 패턴 및 댓글과 같은 텍스트도 분석에 포함시킨다. 크레디테크는 다소 특이한 정보도 취합하고 있는데 바로 대출 정보 약관의 열람시간이다.
|

|
|
자신의 스마트폰 엡으로 요금고지서를 보는 이용자. |
즉
, 대출자가 약관을 얼마나 꼼꼼히 읽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다. 꼼꼼한 사람이 연체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약관을 제대로 보지 않고 ‘확인’을 곧바로 클릭하는 사람은 신용도를 감점하는 방식이다.
홍콩의 대출업체 렌도(Lenddo)는 온라인 평판을 통해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친구 중에 연체자가 있으면 신용점수가 깎인다. ‘자동차 사고’, ‘실직’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올려도 신용도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평가가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의 하나로 불합리한 개인신용평가 관행을 개선하기로 하고 그 세부과제로서 통신-공공요금 성실납부 실적 등 비금융 거래정보를 지난 1월 21일부터 신용평가시 반영하고 있다.
전기, 가스를 비롯한 공공요금이나 통신요금만 잘 내도 신용등급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거래 실적이 없는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400만 명 안팎이 혜택을 볼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통신요금과 신용등급이 어떤 관계가 있길래 내 신용등급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일까.
 |
|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통신요금, 공공요금 등만 잘 내도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자료=금융감독원) |
대학생 이찬영(24) 씨는 최근 자신의 신용 등급을 조회해 보고 깜짝 놀랐다. 별다른 대출이력이나 연체 이력도 없는데 5등급이 나왔기 때문이다. 있다면 학자금 대출이 전부였다.
최근 강원도에 사는 주부 심수연 씨도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 담보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자신의 신용등급이 4등급 밖에 안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대출은 물론 별다른 연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부 심씨는 0.5%나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간혹 대출을 이용한 사람의 신용등급이 이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신용등급이 더 높다. 돈을 빌린 적도 없는데 왜 신용등급이 더 낮을까?
개인 신용등급은 일차적으로 신용조회회사(CB:Credit Bureau)가 자체 신용평가 기준에 따라 1~10등급으로 산출한다. 현재 NICE평가정보와 코리아크레딧뷰로 2곳이 영업하고 있다. 은행들은 CB가 산출한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자체 신용평가 모형을 적용해 여신심사에 활용한다. 일부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중소형 금융회사들은 CB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대출받은 사람이 신용등급이 더 높을 수 있는 건 CB나 은행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고객 신용정보가 많지 않고, 주로 연체 사실 등 상환 이력이나 부채수준과 같은 부정적 정보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불합리한 면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국민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비금융 거래정보를 신용평가에 대폭 활용하는 개인 신용평가 개선안을 내 놓았으며, 올해 1월 21일부터는 6개월 이상 통신·공공요금을 납부하고 해당 내역을 신용조회회사(CB)에 제출하면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
 |
|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개인신용평가 관행 개선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금감원) |
이번 조치로 최대
708만 명의 신용등급이 상승하고 이자비용 4조6000억 원을 아낄 수 있을 전망이다. 신용평가 대상자 약 4652만 명 전원이 성실 납부실적을 제출했다고 가정했을 때 15.2%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처럼 금융거래실적이 없어 ‘신용정보가 부족한 자’로 분류돼 4~6등급을 받고 있던 932만 명 중 최대 317만명(34.0%)의 신용등급도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등급 상승에 따라 최대 2조 원의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신요금, 공공요금을 성실하게 납부했다고 해서 바로 신용등급 가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증빙자료 제출일이 속한 달 또는 전월을 기준으로 6개월 이내 청구된 요금 등을 기한 내 납부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CB에 제출해야 한다.
등급 상승에 반영되는 자료는 통신요금, 공공요금(도시가스, 수도 ,전기),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다.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납부실적 증빙자료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본인확인용 주민등록증 사본 또는 주민등록초본, 요금납부실적 정보제공 동의요청서를 CB 고객센터에 우편 또는 팩스로 보내거나 직접 방문해 제출하면 된다.
 |
| 시중 은행창구. |
CB
는 서류의 진위여부 및 가점부여 대상 자료로서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해 일주일 내에 결과를 자료 제출자에게 회신하게 된다. 단 부여받은 가점을 유지하기 위해선 금융소비자가 관련 자료를 매 6개월마다 계속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금융 거래 정보 보유기관이 정보 제공에 동의한 소비자의 납부 정보를 CB에 직접 제공하는 방안을 해당기관과 협의 중이다.
한편 신한은행은 최근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시스템 연구에 착수했고, KB금융도 SNS 기반 신용평가 시스템을 연구하는 등 개인신용평가 방식에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말 그대로 통신요금만 잘내도 내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