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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이 건네는 다정함, DDP에서 만난 제2회 인문문화축제

인문정신문화 확산의 흐름, DDP에서 한눈에 조망하다
'길 위의 인문학·지혜학교·디딤돌 인문학' 성과 공유하며 인문정책 방향성 점검

2025.11.26 정책기자단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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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잔디 언덕에 늦가을 바람이 불었다.

토요일 오후, 사람들은 커피를 들고 야외 공연을 즐기고, 실내 전시장을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효율이 세상의 화두가 된 지금, 이곳에서는 '인문'과 '다정함'이 축제의 제목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인문 영화제, 인문 주간, '길 위의 인문학', '지혜학교' 등에 참여해 온 시민으로서, 이 축제가 한 해의 인문사업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궁금했다.

일상의 공간에서 시민과 정책이 만나는 '제2회 인문문화축제' DDP.
일상의 공간에서 시민과 정책이 만나는 '제2회 인문문화축제' DDP.

올해 인문문화축제는 '내가 나를 일으키는 순간', '우리가 서로 기대어 서는 시간', '나란히 나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진행되었다.

한쪽에서는 김영하 작가와 요조가 등장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시와 체험 부스가 시민들로 북적였다.

대부분의 강연 프로그램이 사전 예약 단계에서 이미 마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즘 인문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수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청년의 고립 경험을 기록과 전시로 드러낸 '고립과 은둔의 방' 내부.
청년의 고립 경험을 기록과 전시로 드러낸 '고립과 은둔의 방' 내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청년인문교실 기획 전시 '고립과 은둔, 고독과 외로움의 방'이었다.

청년재단과 함께 만든 이 전시는 고립과 감정적 소진을 겪은 청년들의 내면을 작은 방의 형태로 시각화한 공간이다.

청년인문교실 활동 결과물, 청년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수기가 전시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관람객들이 적어 둔 응원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청년의 내면을 작은 방으로 시각화한 전시 외부 전경.
청년의 내면을 작은 방으로 시각화한 전시 외부 전경.

특별한 장치가 많은 전시는 아니었지만, 방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의 고립이 통계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생활 속 현실'로 다가왔다.

방을 나오며 나 또한 짧게 한 줄의 메시지를 적어 붙였다.

그 단순한 행위조차 서로의 안부를 상상하게 만드는, 인문학의 가장 일상적인 순간처럼 느껴졌다.

필사를 매개로 시민과 참여자가 연결되는 '필사 카페' 현장.
필사를 매개로 시민과 참여자가 연결되는 '필사 카페' 현장.

다음으로 향한 곳은 참여형 전시 '필사 카페: 돈 대신 글을 받습니다' 였다.

"커피값 대신, 글 한 편을 적어 주세요."

입구의 안내 문구가 전시의 취지를 단번에 설명하고 있었다.

천근성 작가와 '디딤돌 인문학(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이 협업한 이 프로그램에는 교정시설·노숙인·자활센터 등에서 인문학 과정을 수료한 참여자들의 시와 수필이 놓여 있었다.

시민에게 건네진 디딤돌 인문학 참여자들의 손 글씨.
시민에게 건네진 디딤돌 인문학 참여자들의 손 글씨.

나는 한 참여자의 수필을 골랐다.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고 싶다는 내용, 지난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문장마다 담겨 있었다.

필사를 마치고 다시 읽어 내려가자, 나 또한 가슴이 뭉클해졌다.

타인의 감정이 손끝으로 스며드는 듯한 이 감정이 바로 글쓰기와 필사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었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세대별 삶의 고민에 맞춘 인문 프로그램.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세대별 삶의 고민에 맞춘 인문 프로그램.

전시장 곳곳에는 '인문정신문화 사회적 확산 사업'을 소개하는 주제 기획전이 마련됐다.

'길 위의 인문학', '지혜학교', '디딤돌 인문학', '청년인문교실' 등 전국에서 진행된 인문사업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정리돼 있었다.

'단 한 번의 삶, 단 한 번의 시간'을 주제로 시민과 인문적 통찰을 나눈 토크콘서트.
'단 한 번의 삶, 단 한 번의 시간'을 주제로 시민과 인문적 통찰을 나눈 토크콘서트.

특히 '길 위의 인문학'이 지역 도서관·박물관 등 일상적인 공간과 시민을 연결하는 사업이라는 점, '지혜학교'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심화 인문 교양과정이라는 설명이 기억에 남았다.

작년과 올해 참여했던 여러 인문 프로그램이 각각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의 큰 방향 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제도, 복지의 언어가 아닌 인문학의 언어로 푸는 고립과 은둔의 감정.
제도, 복지의 언어가 아닌 인문학의 언어로 푸는 고립과 은둔의 감정.

이번 축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프로그램은 '함께 여는 다정한 시간'이라는 이름의 성과공유회였다.

그중 '길 위의 인문학·지혜학교' 담당자들이 직접 기획 의도와 현장 변화를 소개하는 세션에 참여했다.

그동안 나는 참여자로서 인문사업을 경험해 왔다.

정책 입안자와 기획자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 사업을 만들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보며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성과공유회에서는 처음으로 '기획자의 시선'에서 인문 사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는 인문이 더 이상 교양 강좌에 머무르지 않고, 고립·세대 단절·지역 문제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의를 한 번 듣고 끝나는 수동적인 참여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삶을 질문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는 말도 이어졌다.

지역의 인문 활동이 쌓여 지역만의 문화적 힘과 자부심이 자연스레 피어나지 않을까?
지역의 인문 활동이 쌓여 지역만의 문화적 힘과 자부심이 자연스레 피어나지 않을까?

특히 발표자들은 인문 사업이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긴 호흡의 프로그램이 왜 필요한지를 강조했다.

실제로 용인 상현도서관 담당자는 "짧은 기간에는 깊이 있는 인문 심리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어렵지만, 길 위의 인문학은 긴 호흡으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라고 말했다.

인문을 '천천히 삶을 다시 읽어보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또 울산중구문화의전당 사례에서는 지역의 인문학 강사와 인문협동조합을 발굴해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는 점이 소개됐다.

지역민이 단순한 수강자가 아니라 지역의 인문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인문이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이 어떤 모습인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양한 질문에서 시작한 길 위의 인문학.
다양한 질문에서 시작한 길 위의 인문학.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세 팀의 사례가 모두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감정의 존재로서의 나를 이해해야 할까?",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인문학이 될 수 있을까?", "퇴근 후 이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인문학이란 결국 인생에 관한 질문을 품고,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발표를 들으며 나 역시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인문사업을 '이용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프로그램 이면에 담긴 문제의식과 의도를 이해하게 됐다.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뀌었고, 인문을 삶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다정함이 스며든 일상의 인문을 만나다.
다정함이 스며든 일상의 인문을 만나다.

인문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단단히 연결하는 문화적 기반이라고 한다.

이번 축제 현장은 그 말이 수사가 아니라, 이미 여러 지역에서 실천되고 있는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인문 정신문화 사회적 확산 사업을 더욱 깊고 넓게 이어가고, 더 많은 시민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인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AI 시대일수록 이런 인문 축제가 우리 사회에 다정함을 다시 불러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다른 기자의 글) 인문주간으로 내 삶을 돌봐요!

☞ (보도자료) '제2회 인문문화축제', 인문으로 다정함의 힘 전하다


정책기자단 정수민 사진
정책기자단|정수민sm.jung.fr@gmail.com
글을 통해 '국민'과 '정책'을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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