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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그대…리우의 우리 엄마들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 공감] 엄마선수들의 힘, 한국스포츠에 나비효과 기대

2016.08.16 김한석 스포츠기자

47세 니노 살루크바제(사격), 41세 옥사나 추소비티나(체조), 39세 테레세 아샤마르(수영), 38세 케리 월시-제닝스(비치발리볼). 리우에서 새로운 올림픽 역사를 쓰고 있는 대표적인 ‘워킹맘’들이다.

이들의 도전과 선전으로 어느 올림픽보다 엄마 올림피언들의 열풍이 거세다. ‘슈퍼맘의 진군’이라는 찬사가 어울릴 정도다.

10대 후반, 늦어도 20대 초반의 균형 감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여자 기계체조의 편견을 깨고 나이테로 쌓은 안정미로도 승부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 도전. 최고령 출전과 최다 7회 연속 출전기록을 세운 추소비티나가 보여줬다.

도마(뜀틀)에서 예선 5위로 당당히 결선에 진출했다. 피부는 나이를 거스르지 못해 탄력을 잃었을지언정 유려한 공중제비와 안정된 착지는 24년 올림픽 관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들의 건강 되찾으면 조국 위해 봉사하겠다”

우즈베키스탄 체조대표 추소비티나(41)의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모습.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즈베키스탄 체조대표 추소비티나(41)의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모습.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92년 독립국가연합 대표로 단체전서 올림픽 데뷔 금메달을 따낸 추소비티나는 4년 뒤부터 조국 우즈베키스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연속 출전했다.

하지만 백혈병을 앓는 아들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독일의 제안을 받고 비난 속에도 모정을 택했다. 2004년 베이징에서 도마 은메달로 보은했고 2012년에도 독일 대표로 뛰었다.

아들이 건강을 되찾을 때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리우행. 그래서 ‘엄마 요정’의 은퇴 무대는 혼신의 도움닫기부터 인상적이었다.

살루크바제는 사대에서 모정을 쏟는다. 조지아 권총 대표로 함께 출전한 아들의 코치이자 멘토이기도하다. 25m권총 본선 3위로 8년 만의 메달 꿈을 부풀렸으나 결선서 6위에 머물렀다. 경기를 마친 뒤에는 19세 아들 소트네 마차바리아니의 올림픽 데뷔 연착륙에 신경을 썼다.

옛 소련 대표로 첫 출전한 1988년 서울에서 금, 은메달을 따낸 이후 8연속 출전. 여자선수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기록을 세운 살루크바제는 올림픽 사상 최초의 모자선수 출전에 주목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인터뷰에서 “아들은 내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알샤마르는 1972년 올림픽에 출전한 어머니의 수영 DNA를 물려받아 여자수영선수 최초로 6회 연속 올림픽 물살을 갈랐다.

은 2, 동메달 1개를 수확한 그는 3년 전 아들을 얻은 뒤 올림픽 수영사를 새로 쓰는 도전에 나선 끝에 리우 개회식에서 스웨덴 기수까지 맡았다.

코파카바나 해변의 열기를 높이는 최고의 빌치발리볼러 월시-제닝스. 4년 전 이미 두 아들의 엄마로 비치발리볼 신화를 썼다. 당시 임신 5주의 몸으로 위험할 수도 있는 도전에 나선 그는 미국 메이저리거 매트 트레너의 부인 미스티 메이-트레너와 호흡을 맞춰 3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이듬해 딸을 낳은 뒤 역시 미국의 주부선수 에이프릴 로스와 새로 짝을 이뤄 리우에서 4연패를 노리고 있다.

미국선수단 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선수로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언제나 그 조화를 위해 도전하는 걸 사랑한다”고 밝히는 ‘커리어맘’이다.

저마다 자신이 청춘을 바친 종목에 대한 자긍심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스페셜리스트로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올림픽맘’들이 있어서 지구촌 축제의 스토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그들의 연속 출전 기록은 나이를 역류하는 열정이 아니고서는 쌓을 수 없는 금자탑이기에 더욱 빛난다.

대한민국의 엄마들도 당당하다.

44세 오영란, 38세 우선희(이상 핸드볼), 36세 장금영(사격), 35세 남현희(펜싱), 30세 윤진희(역도). 리우에 대거 등장한 코리안 워킹맘들의 열정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

“장미란 뒤 역도후배 성장위해 징검다리 역할 맡아”

대한민국 역도대표 윤진희(30).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대한민국 역도대표 윤진희(30).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엄마 역사’ 윤진희의 동메달 낭보가 대한민국 엄마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2008년 베이징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은퇴하고 나서는 역도대표팀 후배 원정식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이자 라임, 라율이 엄마로 살아왔다.

하지만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부상당한 남편이 재활하면서 던진 복귀 권유에 화답하며 다시 바벨을 잡았다.

장미란 은퇴 이후 암흑기 속에서 세대교체로 비전을 찾으려는 한국 역도의 자존심을 지키고 후배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지난해 찾아온 어깨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은 투혼의 결실은 4년 뒤 도교 올림픽을 겨냥한 한국 역도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우생순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오영란과 우선희도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더 이상 희망고문으로 남지 않기 위해 해병대 훈련도 함께하며 의기투합했다. 2004년 결승서 덴마크와 연장 승부던지기로 눈물의 은메달을 따낸 우생순 주역들이 다시 엄마의 힘으로 뭉친 것이다.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수문장 오영란(44)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수문장 오영란(44)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미 2008년 엄마선수로 동메달을 따낸 수문장 오영란은 한국선수단 최연장자로 8년 만에 올림픽 코트에 돌아와 선방을 펼쳤다.

우선희는 지난 11월 얻은 딸이 눈에 밟히지만 한국 핸드볼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실한 사명감으로 후배들을 독려했다.

남현희는 한국 펜싱 최초로 올림픽 4회 출전기록을 세웠다. 2008년 은메달, 주부선수로 나선 2012년에는 동메달을 따낸 남현희는 2013년 사이클 대표 출신 공효석과 사이에 딸을 얻은 뒤 다시 용기를 내서 피스트로 돌아왔다.

2004년 한중사격대회에 참가했다가 평생배필로 찾은 중국 출신 귀화선수 장금영은 역대로 주부, 엄마총잡이가 많은 한국 사격의 출전 계보를 이었다.

1996년 엄마선수로 출전한 권총에서 4위로 아깝게 메달을 놓친 부순희, 2004년 한국선수단 최고령(44세)으로 스키트에서 공동 9위를 기록한 두 아이 엄마 김연희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아울러 4년 전 주부선수로 출전해 귀화 엄마선수 당예서와 8강전서 호흡을 맞춰 탁구 단체전 4위로 아깝게 메달을 놓쳤던 수비의 달인 김경아는 이번에 그림자 지원을 맡았다.

남현희 펜싱 최초 4연속 올림픽 출전 기록

한국대표팀 상대가 수비전형 선수들이 많아 3년 전 아들을 얻고난 뒤 테이블로 복귀한 워킹맘 김경아가 훈련파트너로 긴급 도움을 요청받은 것이다.  

펜싱 대표 남현희(35).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펜싱 대표 남현희(35).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엄마선수의 올림픽 도전.

6년 만에 복귀해 2000년 시드니에서 단체 금메달, 개인 동메달을 추가하며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금 4, 은 1, 동 1)로 올라선 신궁 김수녕의 결실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김수녕의 재도약 이후 시대는 변해가고 시선도 바뀌고 있다. 결혼하고도 소속팀에서 눈치가 보여 임신도 미뤄야 했던 예전과는 달라졌다. 과학적인 훈련법이 도입되고 자기관리 기법이 향상되면서 여자선수들은 주부로서, 엄마로서 커리어를 늘려갈 수 있게 됐다.

더욱이 대표 선발전에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기준들이 정착되면서 공개경쟁을 통한 주부, 엄마선수들의 재도약, 재기 기회는 늘어났다. 워킹맘의 도전이 리우에서 트렌드로 주목받게 된 요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선수들도 국제무대에서 만나는 해외 워킹맘들을 보면서 더 이상 부러움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도전의지를 깨워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편견을 깨뜨리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지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할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 그것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만 이뤄진다면 동반자, 가족의 배려를 구해 선수생활을 늘려가는 것은 선수와 소속팀 또는 대표팀 모두에 이익이 되는 일이다.

이미 프로배구, 사격 등에서는 엄마들의 복귀 러시는 세대교체만큼이나 자연스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정신적인 지주이든, 전문적인 영역의 스페셜리스트든 그 존재감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아이에게 자랑스런 엄마의 모습, 세계 맘들의 같은 맘

무엇보다 올림픽 같은 메이저대회에서는 성취동기가 분명하고 강해진다. 아이가 커나갈수록 자랑스러운 엄마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갖다보면 새로운 자화상을 그려보겠다는 의욕이 샘솟기 마련이다.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에게 목표를 향한 도전으로 모정을 표현하고픈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해외나 한국의 엄마선수들이 한결같이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오영란은 선수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이 됐던 멘토나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어머니의 격려만큼 힘이 되는 것은 없었다. ‘이겨내라’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온전히 마음이 묻어나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답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어 다시 올림픽 도전을 결심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또한 누구보다 베테랑으로서 청춘을 바쳤던 종목에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밀알의 되고픈 심정으로 재도전하는 엄마선수들이 늘어난다.

아마추어 스포츠는 출산율 저하에 비례해 저변이 자꾸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대회에 나설 엘리트 자원들도 감소하고 있어 위기 타개책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베테랑의 재발견과 은퇴선수들의 복귀가 중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선배 주부선수, 엄마선수로서 후배들에게 길라잡이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남현희가 “결혼과 출산으로 은퇴하는 여자 후배 선수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것도 그래서다.

결혼, 출산, 육아를 기피하는 이 시대에 스포츠계의 워킹맘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 커리어맘으로서 당당한 도전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승패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것임을.

슈퍼맘이 아니라도 좋은 것이다. 적어도 아이 가슴에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모정이라면 족하다.

엘리트 워킹맘은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밀알 역할

나아가 스포츠 워킹맘의 새로운 역할도 기대할 만하다. 올해 통합체육회 출범으로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시대를 맞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며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엘리트 워킹맘들이 앞으로 통합과 발전에도 밀알이 될 수 있다.

엄마선수들이 엘리트 팀에서 은퇴하더라도 편견을 이겨내려는 의지, 후배선수들과 융화하면서 체득한 리더십, 엄마로서 아이들을 품는 공감능력은 섬세한 지도와 교육으로 이어져 생활체육 현장에서도 크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력단절도 피하면서 엘리트 워킹맘들이 자연스럽게 K-스포츠클럽 같은 생활체육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되면 저변확대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그 중에서 엘리트선수로 자라나는 자원들도 다양하게 배출되는 선순환을 꾀할 수 있다.

아직은 엘리트와 생활체육 간의 벽이 너무 높은 게 현실이다. 엘리트 출신들이 국민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생활체육 분야로 되돌려줄 수 있는 틀이 정착된다면 워킹맘처럼 모정만큼이나 애정을 쏟으며 헌신할 미래의 지도자들도 없지 않을까.

워킹맘들의 자랑스런 리우 도전을 보면서 그 나비효과를 생각하게 되는 2016년 여름이다.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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