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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시대
대한민국 제조 현장, 피지컬 AI의 '데이터 광산'으로 깨워야
피지컬 AI 시대의 격차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의 누적 속도에서 결정된다…제조 현장에서 시작된 데이터의 흐름이 물류로, 건설로, 나아가 우리 가정의 일상을 돕는 서비스 로봇으로 이어질 때 한국의 피지컬 AI는 비로소 '세계 1위'라는 목표를 향한 실질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정부가 피지컬 인공지능(AI)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명확히 선언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올해 2월 확정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에서 오는 2030년 피지컬 AI 세계 1위를 국가 목표로 못 박았고, 이재명 정부의 30대 선도프로젝트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3대 강국 진입,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AI 팩토리 전환 등 7개의 피지컬 AI 과제가 포함됐다. 산업통상부는 2026년 예산에서 피지컬 AI 개발에만 4022억 원을, AI 팩토리 선도 프로젝트에 2200억 원을 배정했고, 과기부는 AI 과학자·휴머노이드 원천기술 개발에 2342억 원을 투입한다. 방향은 명확하고, 의지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 경쟁에서 진정한 승부처는 어디인가. 피지컬 AI의 핵심 기술은 시각·언어·행동을 결합한 VLA 모델, 즉 로봇이 보고·판단하고·행동하도록 학습시키는 기술이다. 거대언어모델(LLM)이 인터넷의 텍스트로 언어를 습득했듯, VLA 모델은 수백만 건의 '행동 데이터(robot action data)'를 통해 물리 세계를 학습한다. 로봇 팔이 부품을 조립하는 궤적, 양손이 협력해 물체를 집어 올리는 순간, 불규칙한 제품을 선별하는 감각-운동 데이터가 피지컬 AI의 학습 원료다. 그리고 이 원료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왼쪽)과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이 무대에 공개돼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은 구글을 중심으로, 중국은 정부 주도의 '국가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를 통해 이미 수억 건의 행동 데이터를 쓸어 담고 있다. 피지컬 AI 시대의 격차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의 누적 속도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예산을 편성하고 협의체를 구성하는 사이, 경쟁국은 데이터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쌓아가고 있다. 한 번 벌어진 데이터 격차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을 반도체 산업의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이 문제를 돌파하려는 시도 중 하나가 디지털 트윈 기반의 시뮬레이션, 즉 'Sim-to-Real' 전략이다. 가상 환경에서 수천만 번의 동작을 시뮬레이션해 실제 데이터 수집의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엔비디아의 아이작 심(Isaac Sim), 구글의 MJX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핵심이 있다. 시뮬레이션이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가상 세계 자체가 현실을 정확히 모델링해야 한다. 재료의 마찰력, 부품의 유연성, 공정의 불규칙성—이 모든 물리적 현실을 디지털 트윈에 담으려면 결국 실제 현장의 행동 데이터가 기초가 돼야 한다. 시뮬레이션은 데이터를 증폭하는 기술이지, 데이터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다. 이 데이터가 지금 한국에서 특별히 절박한 이유가 있다. 우리 제조 현장은 인구 절벽이라는 구조적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숙련 기술자의 고령화와 청년 유입 감소로 생산 현장의 인력 공백은 이미 현실이 됐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 공백을 메울 현실적 대안이다. 다시 말해, 행동 데이터 인프라 구축은 기술 경쟁의 문제를 넘어 국민의 삶과 산업 생존을 지키는 사회적 과제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산·학·연 공동 활용을 위한 행동 데이터 팩토리 구축에 착수했고, 일부 기업은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통해 실제 제조 공장에서 '데이터 플라이휠'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시도들은 아직 파편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 소유권이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공정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를 기업이 외부와 공유하는 것은 영업비밀과 보안의 관점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해법은 두 가지 축으로 설계돼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데이터는 현장에 머물되 학습 결과만 공유'하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을 국가 표준으로 채택해야 하며, 제도적으로는 데이터 기여도에 따라 정부 연구개발(R&D) 사업 가점·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데이터 바우처·인센티브'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로봇의 관절 각도, 토크(힘), 촉각 센서 데이터 등 '로봇의 오감'을 디지털화하는 공통 표준 규격을 확립해야 한다. 이 공통 언어 없이는 제조 현장의 데이터도, 가정용 서비스 로봇의 생활 데이터도, 의료 보조 로봇의 정밀 동작 데이터도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사장된다. 과거 경부고속도로가 산업화 시대의 혈맥이었듯, 행동 데이터 플랫폼은 AI 전환 시대의 새로운 국가 혈맥이 될 것이다. 제조 현장에서 시작된 데이터의 흐름이 물류로, 건설로, 나아가 우리 가정의 일상을 돕는 서비스 로봇으로 이어질 때 한국의 피지컬 AI는 비로소 '세계 1위'라는 목표를 향한 실질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KIST AI·로봇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로봇 분야 연구를 수행하며 국가 과학기술 전략 수립과 대형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인공지능 기반 영상인식, 선별 및 전역 관제 등 다양한 AI 분야에서 다수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산업 및 공공 영역에 확산시켰다.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했고, 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과 KIST 미래재단 석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6.04.17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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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무역 인사이트
전쟁이 바꾼 것은 유가가 아니라 질서다
이번 전쟁은 국가 전략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우리 취약성의 핵심은 원유 수입 자체보다, 제조업 투입재가 외부 에너지와 공급망에 깊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초소재와 물류까지 포함한 가치사슬 전체를 국가안보 시야로 끌어와야 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미·이란 전쟁 휴전에도 호르무즈 해협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은 평시의 10%에 불과하고, 에너지 시장은 충돌의 종료보다 불안의 상수화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얽힌 선박 스케줄과 폭등한 보험료, 파열된 물류 계약이 정상화되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투는 멈춰도 비용은 남는다.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세계 교역의 대전제였던 자유로운 항행과 예측 가능한 공급망이 더 이상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은 1970년대 오일쇼크나 1991년 걸프전과도 다르다. 과거가 원유 가격 급등의 충격이었다면, 지금은 원유와 LNG뿐 아니라 비료, 헬륨, 황, 석유화학 원료 등 산업 밑단의 중간재까지 흔드는 복합 공급충격이다. 여기에 미국의 해상질서 보장 축소 신호가 겹치며 세계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이 변화는 에너지 정책도 바꾸고 있다. 화석연료의 지정학적 인질극이 상시화되면서 에너지 전환은 이제 기후정책을 넘어 안보정책으로 읽힌다.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 강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추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지정학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는 탄소중립의 당위보다 에너지 자립이라는 생존의 현실이 더 시급함을 보여준다. 6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한림해상풍력발전기의 모습이다.이재명 정부는 이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 체계를 전면 전환하고 산업·수송·난방 전반의 탈탄소화를 추진하는 에너지 대전환 계획을 내놨다. 2026.4.6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이 이번 충격에 더 민감한 이유는 산업구조에 있다. 한국은 원유를 단순히 소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나프타와 산업가스, 화학원료를 들여와 이를 반도체·배터리·석유화학·자동차 같은 주력 제조업으로 연결하는 경제다. 따라서 중동발 공급 차질은 단순한 유가 부담을 넘어 제조업의 출발점 자체를 흔들 수 있다. 특히 적시생산에 익숙한 산업 구조에서는 작은 물류 지연이나 원료 부족도 곧바로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 에너지, 통상, 산업은 따로 볼 수 없으며, 산업 밑단까지 포괄하는 경제안보의 시각이 필요하다. 이번 전쟁은 국가 전략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우리 취약성의 핵심은 원유 수입 자체보다, 제조업 투입재가 외부 에너지와 공급망에 깊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초소재와 물류까지 포함한 가치사슬 전체를 국가안보 시야로 끌어와야 한다. 공급망 취약성을 상시 점검할 통합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미국과의 관계도 단순한 원유·LNG 구매를 넘어 원전·핵연료·전력망·에너지 인프라를 포괄하는 산업안보 파트너십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 대미투자 역시 관세 회피가 아닌 공급망 안정과 산업거점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설계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단순히 충격을 버티는 나라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쉽게 대체되지 않는 협력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방산·조선·반도체뿐 아니라 첨단공정과 운영역량 자체를 전략 자산으로 만들어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 중동 의존을 줄이기 위한 물류·에너지 선택지도 넓혀야 한다. 북극항로와 북극해 개발은 당장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공급 다변화와 리스크 완화를 위한 전략 카드로 검토할 가치가 크다. 향후 미·이란 관계 정상화를 대비해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에도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일본 종합상사 모델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5대 상사는 가스전부터 터미널, 발전까지 포함한 전체 가치사슬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며 2024년 자주개발률 42.1%라는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일본은 에너지 안보의 보험을 비교적 두텁게 마련했다. 한국도 이제 사오는 방식에서 확보하는 방식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번 전쟁이 보여준 것은 기존 세계질서의 장치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남의 질서에 기대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공급망의 규칙을 설계하고 연결하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호르무즈의 경고를 넘어 제조업 강국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연세대 경제학과와 KDI대학원(MBA)을 거쳐 건국대에서 무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무역협회 입사 후 30년 이상 수출입 동향분석과 글로벌 통상전략 수립을 주도해온 무역 전문가다. 현재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으로서 수출경쟁력 강화, 산업별 공급망 안보, 신통상질서 대응 등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6.04.16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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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
BTS, 힙합 아이돌의 귀환
BTS의 귀환은 함께 하나의 이름 아래 돌아온 사건이고, 이것은 부지런함과 용기와 약속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일이지, 앨범의 경제적, 통계학적 결과의 문제가 아니다. 케이팝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BTS뿐 아니라 모든 돌아오는 그룹들에게 덜 성공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2020년 팬데믹과 함께 세계 투어가 정지되었던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햇수로 6년 만에 7인 그룹으로 돌아왔다. 14개 트랙이 담긴 정규 앨범 아리랑의 발매부터 광화문 공연까지 이들의 귀환은 예외 없이 여러 가지 이슈를 몰고 왔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케이팝 현상의 가장 핵심적 이벤트인 아티스트와 팬들의 재회인 4월 9일 고양시 종합운동장의 월드투어 첫 번째 공연에서 찾아보려 한다. 이번 BTS 월드투어는 경기장의 한편을 활용해 설치하던 그동안의 무대를 스타디움 투어에 맞도록 바꿔서 운동장 한가운데 360도에서 관람 가능한 무대를 설치했다. 이에 걸맞게 동원되는 보조 인력의 수, 조명, 화염, 연기, 폭죽 등도 스케일이 커졌다. 일곱 명 멤버들은 쏟아지는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최대의 팬들과 가장 가깝게 만나기 위해 운동장 한가운데서 네 방향으로 뻗어 나온 브릿지 위를 계속 달리거나, 무대 한가운데 설치된 회전판을 활용했다. 공연 말미에 육상경기 트랙을 따라 전체 공연자들이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것도 이런 스케일의 클라이맥스로 적합했다. 이러한 무대는 군 복무를 마치고 더 이상 '소년단'이 아닌 정체성으로 진입한 멤버들이 노랫말에서도 언급했듯 과도한 에너지가 요구되는 칼군무의 스펙터클로 소진되지 않으면서도 퍼포먼스가 핵심적으로 중요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 무대공연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BTS 월드투어 공연장인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 앞에서 팬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2026.4.9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러한 무대는 이번 앨범의 곡들이 적어도 과거와 같은 BTS 안무의 특성인 고에너지 칼군무 퍼포먼스가 필수적인 곡이 아니라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이번 공연에서 이들의 군무는 기하학적인 정확성을 지향하지 않고 힙합적인 흥과 기세를 중시하며, 위와 같은 무대 설치도 그동안 개인 활동들을 통해 멤버들의 개인 정체성이 강화된 이 그룹이 함께 또는 개별적으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선택이다. 아이돌 문화의 뿌리를 느끼게 했던 지난 월드투어에서 볼 수 있었던 개인을 미화하는 클로즈업 소개영상이나 개인, 유닛의 곡도 사라졌고, 오직 일곱 명이 하나의 이름 아래 그동안 이룬 그룹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앞으로도 그러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공연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과거 노래들의 열띤 떼창에서, 실험적으로 들리는 이번 앨범의 곡들도 이 월드투어가 끝날 즈음엔 떼창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영어 가사로 되었으며 대중적이지 않은 이번 곡들을 한국 아미들은 그동안 해외 아미들이 그래왔듯 번역을 통해 곱씹으며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그동안 한국어 가사가 해외 아미들에게 번역 과정을 통해 의미에 집중을 요구했듯, 한국 아미들에게 부과된 이러한 노력 요구는 꼭 불편하고 거리를 만드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다이너마이트", "버터", "퍼미션 투 댄스"로 BTS를 이해한 최근 팬들은 아마도 이들의 데뷔 시절부터의 음악적 메시지를 톺아보고 있을 것이다. 이 무대는 앞으로 이어질 23개국 85회 스타디움 공연에서 재연될 것이다. BTS가 군백기(군대공백기)라는 케이팝 산업의 거대한 구조적 장벽과 6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완전체로 컴백한 사건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팝 시장의 큰 뉴스이고, 국내외에서 이에 걸맞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영어가사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앨범이 갑자기 아리랑을 '재료'로 활용한 이유, 광화문이라는 한국의 과거와 동시대 역사에서 두터운 의미가 켜켜이 쌓인 국가적 공간을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회사의 미디어 이벤트 장소로 내준 것, BTS라는 하이브 최대 자산이 복귀했는데 하이브의 주가는 떨어진 이유, 이 앨범 제작에 이름을 올린 전 세계 작곡가들의 숫자와 면면이 모두 이슈가 되었다. BTS가 돌아왔다는 것 외에는 어떤 새로운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AFP는 BTS의 귀환을 계기로 과도한 연습생 제도, 아이돌들에 대한 여러 압박과 자살 등 지난 20년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 온 케이팝의 어두운 이면을 나열한 기사를 제공했고, 이 기사는 세계 여러 매체에서 그대로 공유되었다. 이와 같은 갈등은 한국이라는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의 민족주의적 긴장, 여전히 그리고 오래된 케이팝 산업의 창의성과 창작자들의 예술가성 사이의 긴장이 겹친 형국이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아리랑 앨범 제작 비하인드 다큐멘터리가 말해주듯, 방탄 멤버들은 회사의 아리랑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RM을 제외하고는 영어가 익숙하지 못한 멤버들이 영어로 공연하는 노래들에서 얼마나 힙합 그룹의 진정성이 담길 수 있을지, 수많은 작곡가 이름의 열거가 알려주는 곡 생산과정의 모듈과 믹스방식에서 멤버들의 몫은 무엇일까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다양한 송 캠프를 통해 생산되는 현금 글로벌 팝 음악 산업에서 왜 BTS의 앨범은 예외적이어야 함을 기대하는 것일까, 서로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여러 해외 작곡가들이 한 곡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케이팝 산업이 지닌 힘 아닐까를 반문할 수도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1일 오후 고양시 일산서구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BTS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2026.4.11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통해 드러나는 가사의 힘 속에서 리더 RM과 힙합라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들의 노래와 춤사위를 통해 각 멤버들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을 팬들은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들리는 우아한 국악 믹스 음향과 공연의 중간에 강력한 에너지와 함께 등장하는 "바디 투 바디"의 마지막에 떼창으로 이어지는 아리랑 또한 향후 일 년 반에 걸친 85회 공연에서 재연되면서 매회 경기장을 달아오르게 할 것이다. 아마도 아리랑 의미의 재해석과 관련한 구성원들의 초반 걱정은 기억 저 너머로 사라지고 재회의 기쁨과 에너지만 남을 것이다. 해외 챠트에서의 성공 또한 하이브의 주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할 디테일이지, 다시 길 위에 선 이들은 세계 투어를 통해 자신들의 감각을 다시 벼르고 BTS 2.0의 정체성을 재교섭해 나갈 것이다. 이들의 귀환은, 훨씬 안전하고 편한 삶인 그룹해체나 개인 커리어가 아니라 함께 하나의 이름 아래 돌아온 사건이고, 이것은 부지런함과 용기와 약속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일이지, 앨범의 경제적, 통계학적 결과의 문제가 아니다. 케이팝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BTS뿐 아니라 모든 돌아오는 그룹들에게 덜 성공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기록은 갱신하라고 있는 것이라 하며 우리는 갱신만 기억하지만, 인생의 대부분 경우 기록은 갱신되지 않으며 팬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 팬덤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팬덤 문화가 수행해 온 이 세상의 일들과 가능하게 만든 것들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할 뿐이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한류 연구자로 정진하면서 팬덤 온라인 참여관찰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거쳤으나 스스로는 여전히 세상 속 의미의 생산을 묻는 기호학자라고 이해한다.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BTS길 위에서를 출판했고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문화산업, 한류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다년간 연구 중이다.
2026.04.13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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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산업의 미래
탈희소성 사회가 된다면
풍요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도구는 이미 상당 부분 존재하거나 구상이 가능하며, 부족한 것은 실행할 정치적 의지와 권력 구조의 변화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논의하는 AI 기본사회의 청사진은 다른 나라에 매우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며, 이를 여러 국가와 협력을 통해 구체화하는 노력은 인류 전체를 위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요즘 테크 리더라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지능과 에너지 비용이 모두 0을 향해 수렴할 것이며, AI 발전의 결실은 순수한 선이 될 것이다.', 'AI와 로봇이 재화와 서비스의 비용을 거의 제로로 떨어뜨릴 것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가질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존재하게 될 유일한 희소성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기로 한 희소성이거나, 독특한 예술작품 같은 것뿐일 것이다.' 유력 벤처 투자자인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2023년 10월 '테크노 낙관주의자 선언문'에서 기술과 시장이 결합하면 "영원한 물질적 창조, 성장, 풍요의 엔진"인 '테크노-캐피탈 머신'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선언문은 기술 개발에 방해가 되는 어떤 규율이나 통제도 거부하는 소위 '효과적 가속주의자' 선언문이라고 평가하는데, 지금 미국 정부의 AI 정책을 주도하는 집단이 바로 이 '효과적 가속주의자'들이다. 탈희소성은 원래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서 희소성이 제거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본적 생존 욕구를 쉽게 충족할 수 있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욕구의 상당 부분까지 충족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개념은 마르크스(Marx), 케인스(Keynes)를 거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이 정치 사상의 개념으로 정착시켰다. 마르크스와 북친이 기술이 풍요를 만들어도 자본가가 기술을 소유하는 한 그 풍요는 만인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소유 관계의 근본적 변혁을 전제했지만, AI 가속주의자들은 탈희소성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심지어 자본주의의 가속을 통해 풍요를 달성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를 포함한 여러 학자가 탈희소성 사회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면을 생각하면 AI 기업가들의 주장이 실제로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풍요가 실현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인의 풍요로움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물론 극렬한 가속주의자 안드레센은 시장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 가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와 앤트로픽 CEO인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공평한 분배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질문이라고 인정한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모든 사람이 AI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자선사업가와 정부가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샘 올트먼(Sam Altman)은 AI 시스템에 대한 공동 소유 즉 소유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보편적 고소득을 주장한다.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산업 AI 엑스포'에서 방문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산업의 융합,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와 HD현대, LG CNS 등 100여개 기업이 참가했다. 2025.9.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장 현실적인 제안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제도 설계 접근이다. 여기에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에 과세하는 과세의 전환, 모든 자원이 빅테크에 집중되는 구조를 해체하거나 견제하는 강력한 반독점 정책, 돌봄이나 봉사와 같이 현재 임금을 높게 받지 못하는 많은 활동을 경제적으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노동의 재정의, AI로 인한 국가적 부를 펀드에 축적해 전 국민에게 배당하는 국부 펀드 모델이 있다. 토지, 자연환경, 도시 공간 등 본질적으로 희소한 자원에 대해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한 배분 역시 검토할 수 있다. 또는 이들을 적절히 조합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설계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이다. 모든 분배 메커니즘은 현재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부터의 양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풍요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도구는 이미 상당 부분 존재하거나 구상이 가능하며, 부족한 것은 실행할 정치적 의지와 권력 구조의 변화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논의하는 AI 기본사회의 청사진은 다른 나라에 매우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며, 이를 여러 국가와 협력을 통해 구체화하는 노력은 인류 전체를 위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AGI의 시대, AI 전쟁 2.0 등이 있다.
2026.04.10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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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중동전쟁과 에너지 전환의 과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 수급 대책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신재생 에너지를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에너지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중동전쟁으로 전 세계의 에너지 수급에 빨간불이 커졌다. 전쟁이 끝나도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전쟁으로 파괴된 원유와 가스 시설의 복구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쟁의 종전 시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 석유·가스 시설의 복구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면 당분간 고유가 상황이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에 비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신재생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이 중요하다. 정부와 해당 기업은 대체 시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한국 원유 수입의 70%, LNG의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시장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 중동을 제외한 지역의 석유와 가스 생산을 갑자기 늘리기도 어렵다.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에 대한 제재가 한시적으로 풀렸지만, 대금결제를 비롯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줄어든 공급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공급이 줄어든 만큼 수요를 줄여야 한다.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후 변화의 시대에 탄소제로를 위한 생활 습관 변화는 권고사항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전쟁이 만든 에너지 위기는 그것을 의무 사항으로 만들었다. 일상에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항공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 위기 극복은 언제나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공공기관 승용차 부제가 오는 8일 2부제(홀짝제)로 강화되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에 5부제가 시행된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외교부 청사 주차장 입구.(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단기적인 대책과 동시에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에너지 수급에서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핵심은 신재생 에너지의 비율이다. 지난 2024년을 기점으로 신재생 에너지는 발전량 기준으로 전체 에너지 수급에서 10%를 넘었고, 2025년에는 12~13% 정도로 늘었다. 그러나 OECD 국가의 평균인 35%, 중국의 40%와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낮다. 신재생 에너지의 증가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기반 시설 차원에서 첫째, 송배전망의 건설이 중요하다. 신재생 에너지 생산 지역과 소비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송배전망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국제에너지 기구는 유럽연합에 신재생 에너지 생산에 1유로를 투자할 때, 전력망에 0.7유로를 투자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력망 투자에 미흡했던 유럽의 일부 국가는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었다. 둘째, 에너지저장장치(ESS)의 구축이 중요하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바람이나 햇볕의 변화에 영향받기 때문에, 오래 그리고 일정한 양을 저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송배전망의 한계와 전국적인 에너지의 효율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자립 섬이나 에너지자립 마을을 더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자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에너지 저장 장치의 발전이 더욱 중요해졌다. 셋째, 공간의 효율성이다.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나 공공 기관과 대형 공장의 지붕과 같이 사각지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민간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영농형 태양광 시설처럼 논밭이나 과수원, 축사 등에서 태양광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 높이를 조절하면 얼마든지 농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합천댐의 연꽃 모양의 수상 태양광처럼 자연경관을 살리는 지혜도 중요하다. 동해안의 부유식 해상풍력 기술을 앞당기고, 수상 태양광을 늘릴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 과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첫째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정치적 지지의 확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이 겪은 교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전쟁 이후 탈러시아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다. 에너지 수입원을 다변화하고 재생 에너지를 늘리며 에너지 소비감축과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다. 국민은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자,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에 투자하는 비용 분담을 고통스러워했다. 환경오염을 완화하기 위한 프랑스의 유류세 인상에 대중들이 반대하고, 독일에서 녹색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가 대표적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정치적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은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대규모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당연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녹색 전환과 긴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 지역을 최대한 가깝게 하고, 에너지 배분체계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혁신에 투자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 위한 '사회적 합의' 중요 세계적인 차원에서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경제 안보에서 에너지 안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 수급 대책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신재생 에너지를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에너지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달라진 세계에서 에너지 안보가 모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이 됐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동시에 에너지 전환은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스페인의 '정의로운 전환' 전략처럼, 폐광이나 폐쇄된 화력 발전소 지역에 재정지원과 직업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송배전망의 경로 선택의 투명성과 해당 주민을 보상하는 방안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합의와 공감이 뒷받침돼야 멀리 갈 수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 / 전 통일부 장관 성균관대에서 북한의 정치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때 통일연구원 원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이 있다.
2026.04.08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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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전쟁추경, 속도가 중요하다
결국 이번 추경은 "써도 되느냐"보다 "지금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로 봐야 한다. 전쟁과 유가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취약계층, 소상공인, 청년, 비용 증가에 민감한 산업은 충격을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이번 전쟁추경은 규모도 중요하지만 속도가 더 중요하다. 중동전쟁의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국내 경제에 충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미 분명하다. 국제 유가가 빠르게 뛰고 있고, 국내 유가는 독과점 상황과 맞물려 더 빠르게 뛰었다.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취약계층의 생계비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생산 비용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서 동시에 생산은 줄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앞두고 있다. 전쟁 반발 후 휘발유 가격 및 WTI 선물가격 변동 추이.(출처=오피넷)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응을 미루면 충격은 시장에서 끝나지 않고 민생과 고용, 산업 전반으로 번진다. 충격이 확인됐을 때 피해가 확대되기 전에 먼저 작동해야 의미가 있다. 이번 26.2조 원 추경은 바로 그런 성격의 예산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추경안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고유가 부담 완화에 10.1조 원, 민생 안정에 약 2.8조 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에 2.6조 원, 지방재정 보강에 9.7조 원이 배정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기 전반을 강하게 부양하기 위한 확장재정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인한 비용 충격을 흡수하고 취약한 고리를 먼저 방어하기 위한 대응 예산에 가깝다. 고유가 대응과 민생 안정에 예산이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추경의 목적은 분명하다. 성장률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충격이 민생을 무너뜨리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급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두바이유 가격은 2월 26일 배럴당 68달러에서 3월 19일 138달러까지 급등했다. 소상공인 체감경기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청년고용률도 전년동기비 기준으로 22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해운·물류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OECD의 세계 성장률 전망치에 따르면, 한국은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21%에서 1.7%로 0.4%p 하향 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접근은 신중한 것이 아니라 늦는 것이다. 유가 충격은 교통비와 난방비를 올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식료품 가격, 운송비, 원자재 비용, 영세 자영업자의 운영비, 수출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일단 충격이 산업과 소비심리 전반으로 번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더 큰 재정을 투입해도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번 추경의 의미는 바로 이 선제성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2026년 추경 예산안'을 의결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주유소의 모습. 2026.3.31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번 추경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지원 방식에도 있다. 가장 주목되는 항목은 4.8조 원 규모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 이하 국민에게 1인당 10만~60만 원을 지급하되, 지역과 계층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 비수도권보다 인구감소지역에 더 두텁게 지급하고, 일반 저소득층보다 차상위·한부모·기초수급자에게 더 많은 금액이 가도록 설계했다. 기초·차상위 가구는 먼저 지급하고, 이후 건강보험료 등을 활용해 소득 하위 70%에 2차 지급하는 구조도 포함됐다. 이번 추경은 보편지원과 선별지원 중 하나만 택한 것이 아니라, 선별과 차등을 결합해 실제 부담이 큰 곳에 재정을 더 집중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은 물가 우려를 평가할 때도 중요하다. 모든 추경이 같은 방식으로 물가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층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현금 살포는 총수요를 크게 밀어 올릴 수 있지만, 이번처럼 소득 하위층의 에너지비와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은 물가 파급이 상대적으로 작다. 한국은행도 최근 물가가 대체로 목표 수준 근처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고, 국제유가와 환율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추경의 물가 영향은 사용처에 따라 달라진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다. 즉, 이번 추경처럼 비용 상승 충격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의 실질 구매력을 방어하는 구조라면 물가를 크게 자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예산 항목을 봐도 이번 추경은 소비를 전면적으로 밀어 올리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와 대중교통 환급 확대에 5.1조 원이 들어가고, 에너지바우처와 면세유·선박용 경유·비료·사료 지원도 포함돼 있다. 이런 지출은 소비 확대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올라버린 비용을 완충해 생활비와 생산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 가깝다. 다시 말해 물가를 새로 자극하는 예산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생긴 물가 충격을 흡수하는 예산이다. 이번 추경을 두고 물가 우려만 과도하게 부각하는 것은 예산의 성격을 충분히 보지 않은 평가일 수 있다. 재원 조달 방식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 재원을 적자국채 추가 발행이 아니라 초과세수 25.2조 원과 기금 자체재원 1조 원으로 마련하고, 오히려 1조 원의 국채를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본예산 대비 국가채무와 관리재정수지 지표도 소폭 개선되는 구조다. 위기 대응을 하면서도 재정 신뢰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따라서 이번 추경을 단순히 큰돈을 풀어 단기 처방을 하는 예산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전쟁발 충격에 대응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부담을 일정 부분 관리하려는 설계가 담겨 있다. 결국 이번 추경은 "써도 되느냐"보다 "지금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로 봐야 한다. 전쟁과 유가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취약계층, 소상공인, 청년, 비용 증가에 민감한 산업은 충격을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이번 추경은 규모 자체보다 시급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원이 소득 하위층 중심으로 설계되고, 선별과 차등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정책의 방향도 비교적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늦은 대응이 아니라, 충격이 본격화되기 전에 작동하는 대응이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바로 속도에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6.04.01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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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제철 이기는 조미료는 없다"…서산 바지락 칼국수
제철 이기는 조미료도, 묘수도 없다. 거의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조개는 유독 두드러진다. 올 봄에는 조개를 만나러 가보시라. 서해안의 어느 지역이든 바지락이 좋다. 칼국수를 끓여도 조개탕을 만들어도 좋다. 시원한 바다가 한 가득 들어 있는 그릇을 들이켜면 세상을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박찬일 셰프 대도시에서 바지락 칼국수집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과거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주로 마른멸치로 육수 내는 집이 많았다. 조개를 신선하게 운송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 이제는 음식의 지역성이 점차 허물어져 간다. 좋은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어쨌든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언제든지 바지락 칼국수를 사 먹으러 갈 수 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칼국수집에 다닌 적이 있었다. 안주인이 정갈하게 음식을 하고 남편은 홀을 보는 그런 흔한 집이었다. 내가 요리사라는 걸 안 그들은 심각하게 물었다. "바지락이 요새 좋은 게 별로 없어요. 값도 많이 올라서 구하기도 쉽지 않고.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는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바지락이 맛있는 철이 아무래도 봄 정도잖아요. 제가 보니, 사장님은 사철 바지락칼국수를 팔고 있어요. 조개가 맛이 없을 때는 안 파시는 게 어떨까요. 소뼈로 하는 사골칼국수와 멸치칼국수를 주력으로 하시고, 바지락은 제철 메뉴로 하는 게 어떨까요." 그는 그다지 반색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저라고 왜 그 생각을 안했겠어요. 바지락을 안 팔면 앉았던 손님도 돌아서 나가버리곤 합니다." 국수골목 상인들이 칼국수를 준비하고 있다. 2025.12.2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제철이고 지역이고 흐려진 시대다. 전라도 음식을 강원도에서도 먹을 수 있고, 경상도 음식을 충청도에서도 판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지역이 어디 있냐고, 몇 시간만 달리면 재료가 전국을 누비는 나라인데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골과 산과 바다는 깊고 주름져서 개성이 뚜렷하기도 하다. 김치 맛이 다 같아졌다고 해도 지역에 가보면 여전히 개성 강한 김치가 식당에 나오곤 하는 것처럼. 바지락 칼국수를 떠올리면 충청도 서산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처음 먹었던 땅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후배들과 철마다 산지로 재료를 보러 다녔다. 울진의 가자미며 고흥의 농어며 청주의 버섯 같은 제철 재료를 찾았다. 제철이란 건 잠깐 한눈을 팔면 번개처럼 미련없이 사라져버리는 존재다.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지는 못할망정 제 날짜를 지나치면 국물도 없다. 서산은 서울에서도 가깝고 해서 후배들이 종종 차를 몰았다. 겨울 끝자락에는 굴과 새조개를, 그 다음에는 그쪽에서 간재미라고 부르는 작은 가오리를, 어쩌다가는 너무도 제철이 짧은 투명한 실치를 보러 가는 땅이 그곳이었다. 그날도 그 무렵의 봄날이었다. 봄의 충청도 해안은 대개는 뿌연 날들이 많다. 다행히 그날은 아주 맑았다. 서산의 시장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수십 년 전에는 장날이면 함지를 들고 나온 아낙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생선들이며 해물등속과 이른 봄나물을 파는 흥미로운 장터가 열렸다. 간재미 몇 마리를 사서 시장 구석에 있는 밥집을 찾았다. 대도시는 어렵겠지만, 지역의 시장은 원래부터 '오마카세'가 된다. 원하는 메뉴를 적당히 만들어준다. 어물이 흔한 동네는 생선찌개가 언제든지 되고(물론 특정 생선을 콕 찍어서 말해도 좋다) 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아예 장을 봐서 재료를 가져다드리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재료 손질에는 이력이 난 할머니들이 아주 신이 나서 요리를 하신다. 그날도 그렇게 간재미를 회로, 무침으로 요청을 넣어두고 기다리는데 옆자리 아저씨들이 아주 맛있는 국수를 드시고 있는 게 아닌가. 커다란 양푼에 가득 국수를 담아서 후룩 후루룩 잡숫는 게 여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바지락칼국수'였다. 흔하디 흔한 조개 바지락이라고 하지 마시라. 산지에서 먹는, 제철 바지락은 잊을 수 없는 미각이다. 어차피 다 같은 조개이고, 산지의 조개가 도시로 오는 것일 텐데 맛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 뭐, 그 정도의 생각으로 주인 할머니에게 우리도 칼국수를 좀 해달라고 말했다. 별일도 아닌 주문일 터라, 그러마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포를 한잔 하자 칼국수가 나왔는데 무심코 국물을 한 입 떠 넣은 후배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입을 다물었다. 뭐지, 모래라도 씹은 걸까. 왜 그래? 후배는 답도 없이 국물을 한껏 들이켰다. 질문 안 받겠다는 표정으로. 일행은 그렇게 바지락칼국수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조개가 얼마나 싱싱하고 영양을 가득 품었는지 진득한 육수를 뿜어냈다. 이 세상의 모든 조미료를 다 가져와도 이길 수 없는, 인간의 기술로는 발치에도 닿을 수 없는 감칠맛이 양푼의 열 배 크기로 밀려들어왔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고 시원했다. 몇 해가 지나고 다시 그 집을 찾아서 국수를 청했다. 불행하게도 감동의 그 맛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아주 명쾌하게 해답을 냈다. "지금은 가을이여…" 이 얘기를 글 서두의 칼국수집 사장님에게 꼭 해드려야겠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이지. 조미료를 아무리 좋은 걸 써도 계절을 못 이긴다고 말이지.◆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2026.03.27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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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 지평
미·이스라엘의 이란 전쟁과 한국의 대응
무엇보다 정부는 당장 닥쳐오는 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익을 지키는 데 집중해 왔다…정부의 경제 대책은 먼저 국민의 최소한 경제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우리 산업의 생산 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며, 산업 내에서도 우선순위를 점검해 물량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홍현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미국의 2월 28일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을 장담했던 것과 달리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권 존중이 시대정신이 된 현대사회에서 다수의 민간인을 포함한 수많은 인명 살상이 자행되는 전쟁의 도발은 오로지 자국에 대한 상대국의 공격이 명백히 임박할 때만 정당화될 여지가 있는데 미국의 전쟁 개시는 이에 너무도 부족한 상태에서 감행됐고 미국은 이를 입증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안타까우며 유감스럽지만 매우 신중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부는 당장 닥쳐오는 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익을 지키는 데 집중해 왔다. 중동지역에 체류 중이던 국민들이 현지시간 14일 '사막의 빛'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으로 공군 수송기(KC-330)에 탑승한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외교부 제공) 특히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경제 안정과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배려하고 이에 정책을 펼쳐왔다. 이란과 인근 국가들에 있다가 갑자기 위험에 빠진 우리 국민을 무사히 구출하고 전쟁으로 파생된 석유 등 에너지 수급 위기에 대처해 공급을 확보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등 경제를 안정시켰다. 또 한미동맹을 지키면서 국가안보를 확고히 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는 슬기롭게 대응하면서 한미 관계를 안정시켰다. 우리 국민 구출 '사막의 빛' 작전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3월 5일 이란 전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 '여행금지'를 발령했다. 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고 악화해 중동 국가들의 항공편이 끊기면서 중동 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의 신변에 위협이 생겼다. 대사관 지원 버스를 이용해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을 넘어 대피시켰고, 민항기와 전세기로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의 교민들을 이송했지만, 그 외 전쟁의 영향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레바논의 한국 교민들은 계속 전쟁의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정부는 3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군용기 활용을 결정하고 외교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공군과 경찰청이 참여한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을 구축해 사막의 빛 작전을 시행했다. 작전의 성사 및 원활한 진행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각각 사우디 외교장관 및 국방장관과 통화해 사우디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대응팀이 현지로 급파된 후 외교·국방 관계자들은 시차를 넘어 실시간으로 소통해 공군 급유수송기 시그너스가 거쳐야 하는 10여 개 국가의 영공 통과 승인을 받아내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4개국 교민들을 집합시켰다. 지난 14일 김해기지에서 공군 공중급유수송기(KC-330)가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이륙하고 있다.(사진=외교부 제공) 3월 14일 리야드에 도착한 KC-330 시그너스기와 임무요원들은 한국 교민 204명(한국·일본 복수국적자 1명 포함)과 외국인 7명(외국인 5명, 일본 국적자 2명)을 포함한 총 211명을 급유수송기에 태우고 영공 개방된 나라들을 거쳐 3월 15일 서울공항으로 무사 귀환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구출해 국민 주인 정신을 실현했다. 게다가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한국 정부와 한국군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듯이 한일 간 형성되고 있는 우호 관계도 한층 돈독하게 했다. 물가와 경제 안정 전쟁 당일인 2월 28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제1차 실물경제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연이어 3월 1일에는 차관 주재 2차 회의, 3일에는 필리핀에서 3차 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하는 등 긴박하게 에너지 가격 인상과 공급망 수급 안정화 방안을 마련했다. 유가 상승, 에너지 수입망 불안정, 주요 무역로 폐쇄 등의 여파가 자원 수급 등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석유 수급, 가스 수급, 해상 물류, 국내 산업 공급망, 전력 수급 안정화 대책을 마련했다. 3월 13일부터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뒀고, 최고가격이 2주 단위로 조정되므로 27일 2차 최고가격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일정 부분 국민의 소비 절약을 요청하고, 차후에 재정으로 정유사 손실을 부담해 주는 대신 정유사들은 가격을 급하게 올리지 않도록 하면서 유류 가격을 최대한 안정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아울러 상황이 더 악화하면 에너지 절약 정책과 관련해 차량 5부제·10부제 등의 도입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처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대책은 먼저 국민의 최소한 경제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우리 산업의 생산 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며, 산업 내에서도 우선순위를 점검해 물량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원유 도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비상 상황이므로 대체 수입선 확보뿐 아니라 정유사에 대한 수급 조정 명령이나 수출제한 조치 같은 비상 플랜도 강구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 대응 전쟁이 장기화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 석유의 20% 정도의 공급이 차질을 빚자, 국제 원유가가 2배 정도로 인상돼 세계 경제가 불안정해졌다. 특히 원유 공급의 91%와 71%, 44%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 중국 경제의 타격이 가장 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인천 연수구 송도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 터미널에 LNG 수송선이 정박해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4일 호르무즈 해협 폐쇄에 피해를 보고 있는 한·중·일과 프랑스 및 영국에게 해협 개통에 필요한 기뢰 제거 및 유조선 호위를 위한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사실 미국과 동맹이더라도 침략을 당했을 때 도울 의무가 있는 것이므로 이번 경우에는 파병 의무가 없다. 유럽 동맹국들뿐 아니라 중국도 파병을 거절하면서 항변했듯이 미국이 불을 지르고 나서 함께 끄자고 하는 격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중동 석유에 별로 의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에 의존하는 나라들이 자국 이익을 챙기는 차원에서 파병하면 미국은 돕겠다는 입장이다. 또 우리 경우에는 에너지 자급률이 84.6%인 중국과 달리 중동 원유 의존도가 매우 높고, 국가안보와 경제 모두 미국과 긴밀한 관계이며 관세 문제와 원자력 협정 개정과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 등의 중요한 현안도 있으므로 유럽 국가들이나 중국처럼 단호히 거절하기는 쉽지 않은 처지다. 이런 맥락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구사한 외교에서 함의를 얻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어려워진 정치적 위상을 치켜세워주기 위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고 미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원자력, 조선, 희토류 등 핵심 광물 협력 의사 등 미국이 필요한 산업에 2차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시행할 것임을 밝히면서 이란전의 조속한 종전과 한미 관계 발전을 희망한다는 의사표시와 함께 파병은 어렵지만 간접 지원은 제공하겠다는 수준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다급한 상황이 전개되자 우리와 상의 없이 패트리어트(PAC-C)와 사드 반출을 시행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이번 전쟁의 교훈은 한국의 안보는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국방과 첨단기술력 강화, 그리고 공급망 및 수출로 다원화 등 제반 부분에서의 자강력 배양과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전시작전권을 차질 없이 조속 환수하는 동시에 한미동맹의 우의는 지키고 강화하며 한미일 안보 공조도 유지하되 중국과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러시아 및 북한과의 관계도 정상화를 거쳐 호혜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홍현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27년 간 세종연구소에서 북핵문제, 남북관계, 한미동맹, 한러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의 국가안보와 국가전략을 연구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구축 및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와 공동번영 및 국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주창해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과장을 맡았다.
2026.03.25
홍현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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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경제다
코스피와 반도체 그리고 이중 양극화
반도체에 극단적으로 편중된 산업구조로 만든 수출 호조와 성장률 개선, 주식시장 붐 등으로는 상생 생태계는 기대하기 어렵고, 한국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제일 큰 근본적인 문제가 양극화"(이재명 대통령, 2025년 12월 16일 국무회의)라고 말한 것처럼 양극화 해결 없이 우리 사회 비정상의 정상화는 요원하다.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출범한 지 10개월이 되어 가는 이재명 정부는 우리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요소의 정상화를 대전환과 대도약을 위한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경제에서도 국정 정상화의 결과로 수출 호조나 성장률 2%대 회복, 특히 코스피 5000 돌파를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회복세에서 여전히 소외된 중소기업, 지방, 노동 부문, 특히 취약 청년 문제를 해결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사상 처음 6000선을 돌파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6.2.25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그러나 수출, 성장률, 코스피 5000 등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해결 과제들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에 급등한 코스피 붐은 수출 및 성장률의 내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코스피 붐의 원인으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실적과 더불어 상법 개정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 등을 꼽는다. 실제로 2024년 2분기부터 1년 간 분기 당 50조 원 안팎을 움직였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 매출액이 지난해 3분기 58조 원, 4분기 77조 원으로 급등하였다. 그렇지만 코스피 붐의 기저에는 외국인의 매도를 개인투자자들이 받아주며 시장을 떠받치고 있듯이 많은 국민의 자산 증식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욕망은 일자리와 소득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적 현실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최근 공개한 국세청 1000분위 통합소득 자료를 보면 중위소득자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20만 원에 불과하고, 10년 전인 2014년에 181만 원이었으니 지난 10년 간 연평균 증가액은 4만 원도 되지 않았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용직의 지난해 12월의 월평균 실질 급여도 431만 원으로 10년 전인 2015년의 436만 원을 밑도는 현실이다. 200만 명에 가까운 임시직·일용직의 실질 월평균 수입은 153만 원으로 2015년의 155만 원을 밑돈다. 여기에 갈수록 악화하는 자영업자 1인당 평균 수입은 임금노동자 소득의 35%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은 10년째 정체된 불충분한 소득으로 생활과 자녀 교육을 해야 하고, 여기에 갈수록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일자리 단기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청년층은 저임금 알바 일자리에 내몰리고, 장년층은 노후 빈곤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산 증식은 유일한 출구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코스피 붐에 열광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자산 양극화가 소득 양극화보다 심하다는 점이다. 하위 50%가 차지하는 소득은 16%인 반면, 자산은 10%에 불과하다. 국가데이터처의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보면, 상위 0.1% 가구의 순자산은 2017~2025년 사이에 43억 5140만 원이 증가하였고 중위 50% 가구의 순자산은 5132만 원 증가하였다. 이 중에서 채권 포함 주식 자산의 증가는 각각 8억 3518만원과 491만 원이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세후 개인 소득의 경우 상위 0.1%는 2억 8512만 원이 증가하였고, 중위 50%는 793만 원 증가에 불과했다. 통계 수치는 부를 축적하는 길이 소득보다 자산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노동을 통한 소득 증식은 멍청한 짓이다. 코스피 붐은 지난해 2분기, 특히 트럼프 관세 전쟁 선포 충격이 다소 진정되기 시작한 4월 중순 이후부터 본격화하였다. 2025년 3월 기준 계층별 가구의 주식 소유액을 보면 상위 0.1%는 15억 1245만 원, 중위 50%는 841만 원이었는데, 여기에 최근 2월 말까지 주식 평균 수익률을 단순 적용하면 상위 0.1%와 1%의 주식 자산은 각각 11억 1353만 원과 1억 6543만 원 증가했던 반면 상위 30%와 중위 50%의 주식 자산은 각각 842만 원과 619만 원 정도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주식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하위 30%는 코스피 붐의 혜택에서 소외되었을 것이다. 코스피 붐으로 중산층 역시 자산 증가의 혜택을 누렸지만, 자산 양극화는 더 벌어졌다. 이런 결과는 기본적으로 자산 시장이 돈의 힘이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코스피 붐을 통한 자산 증식은 실물경제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코스피 붐이 시작된 2025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의 주요 경제지표를 1년 전인 2024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와 비교하자. 먼저, 실물경제를 위해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나타내는 화폐유통속도를 보면 2024년 2분기에 0.652에서 4분기에는 0.656까지 증가하였다. 특히 정치 리스크가 가장 고조되었던 2025년 1분기에도 0.656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코스피 붐이 시작된 2025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는 0.652에서 0.649로 하락하였다. 24년 4~12월과 25년 4~12월 간 실물경제 지표 비교. 통화량이 106조 원이나 더 풀렸으나 풀린 돈이 실물경기로 유입되지 못하고, 자산 가격 및 물가를 자극한 것이다. 실제로 은행의 산업 대출금이 2024년 2분기부터 4분기에는 94조 원이었으나, 2025년 2분기부터 4분기에는 89조 원으로 14조 원이나 줄어들었다. 특히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9.3조 원이나 줄어들었다. 반면, 주식시장 대기 자금인 현금성 통화량은 비교 기간 중 28조 원에서 124조 원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풀린 돈 대부분이 주식시장으로 흘러간 것이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큰 식료품 물가가 크게 상승하였다. 자산 및 물가 인플레로 이중 소외를 겪고 있다. 이처럼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주식시장 붐은 실물경기를 강화하지 못하면서 자산 양극화만 악화시킨다. 소득과 자산의 이중 양극화는 신분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2025년 순자산 상위 0.1% 가구 자녀의 교육비 지출은 2578만 원, 상위 10% 자녀는 1703만 원, 상위 30% 자녀는 736만 원, 중위 50% 자녀는 556만 원, 하위 30% 자녀는 273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는 8년 전인 2017년의 자녀 교육비 지출보다 상위 1%는 1048만 원, 상위 10%는 277만 원, 상위 30%는 69만 원이 증가한 수준이라면, 오히려 중위 50%와 하위 30% 자녀의 교육비 지출은 각각 276만 원과 443만 원이 줄어들었다. 소득과 자산의 이중 양극화로 계층별 자녀 교육비 지출의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이는 자녀의 경제력 격차로 이어지며 신분의 대물림을 고착화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8.4%에서 1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37.3%(2월 기준)에 달한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코스피의 40%(2월 말 기준)를 차지한다. 반도체에 극단적으로 편중된 산업구조로 만든 수출 호조와 성장률 개선, 주식시장 붐 등으로는 상생 생태계는 기대하기 어렵고, 한국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제일 큰 근본적인 문제가 양극화"(이재명 대통령, 2025년 12월 16일 국무회의)라고 말한 것처럼 양극화 해결 없이 우리 사회 비정상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소득 양극화는 지난 10년간 정체 혹은 후퇴하는 서민 소득을 시장 소득에만 맡긴 결과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사회소득은 OECD 평균보다 25년 기준 157조 2171억 원이 적다. 이는 국민 1인당 1년에 305만 원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매달 100만 원 이상을 적게 누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정상적인 조세체계에서 비롯한다. 2024년 기준 개인별 소득 총액은 1131조 원에 달하는데 이중 공제 혜택이 적용되는 소득이 410조 원이나 되고, 이중 103조 원이 감세로 이어진다. 103조 원 세금 공제 중 38조 원을 상위 10%가 누리고 있다. 문제는 지난 10년 간 세금 공제가 45조 원이나 증가할 정도로 비정상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상위 10%의 세금 공제 혜택이 지난 10년 간 17조 2000억 원이나 증가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부자친화적인 정책이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가 돈이 지배하는 경제구조의 고착화다.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을 견제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돈의 힘을 부추긴 결과가 이중 양극화와 신분 대물림이다. 비정상적인 조세체계의 정상화는 양극화 해결의 출발점이다. 인적 공제를 중심으로 공제 제도를 재편하면 된다. 공제 폐지 후 추가 세금 수입을 전 국민에게 1/n로 배분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 특히 하위 50%의 소득이 크게 개선된다. OECD에서 소득세율은 높은 국가로 분류되는데 GDP에서 개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소득재분배 효과는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라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기본사회의 출발점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
2026.03.20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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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의 미래
구슬을 꿰자
기계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자마자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는 현황판을 만든 것이다. 인공지능을 도입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를 넘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전종홍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 위원이 최근 국가 AI 재정사업 533개, 41개 부처, 27조 5000억 원의 예산을 데이터로 변환했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기초 자료는 PDF 파일 5296페이지다. 전체 예산에서 AI 재정사업을 추려냈다. 인쇄용으로 만들어졌다. 기계 판독(Machine readable)이 사실상 불가능한 형태다. 내용을 보면 테이블의 컬럼(열) 구조가 일치하지 않고(전체 533건), 페이지 경계에서 데이터가 잘리고, 사업명이 잘리고, 사용하는 특수문자가 서로 다르다. 당연히 5296페이지 PDF 이대로는 전문가들도 전수 분석이 불가능하다. 일반 시민이 파악하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533개 사업이 동일한 양식을 사용케 돼 있으나 실제로는 부처마다 상당한 변형이 존재했다. 총괄표의 헤더를 변형하고, 내역 사업 섹션의 헤더를 변형하고, 내역사업의 표기를 변형하고, 예산 데이터의 위치를 변형한다. 데이터 표현도 제각기 달랐다. 음수를 표현하는 기호도 몇 가지나 되고, 백만 원을 쓰는 곳, 천 원을 쓰는 곳, 원을 쓰는 곳 단위가 다르다. 증감률도 순증, 순감, 신규, 숫자 %를 섞어서 쓴다. 값이 없으면 표기도 네 가지가 섞여서 쓰였다. 어떻게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데 서른 개가 넘는 예외 로직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갖은 고생을 해서 가까스로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고쳤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개발비용과 시간은 대체 누가 보상하나.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I 서밋 서울 & 엑스포 2025'를 찾은 참관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2025.11.10.(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 결과가 이 플랫폼(https://hollobit.github.io/KAIB2026/)이다. 다들 한 번씩 꼭 열어보기를 바란다. 부처별 예산 비중, 사업유형 분포, 회계유형별 예산 구성, 예산 증가 TOP10, 예산 증감률 분포, 예산 규모별 사업 분포, 예산 요구액 대비 편성액 비교, 연도별 부처별 예산 변화추이 등 온갖 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처별, 분야별 분석도 할 수 있고, 유사성 분석, 미래예산 시뮬레이터, 예산 인사이트 등도 볼 수 있다. 기계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자마자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는 현황판을 만든 것이다. 인공지능을 도입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충분한 데이터가 있으면 대부분의 분석을 실시간으로 해볼 수 있다. 그래서 예산 분석을 잘하게 됐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533개 AI 재정사업 중 97개가 중복의심그룹으로 나타났다. 가령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사업'은 데이터 통합이 목적이지만 3개 부처로 분산돼 있다. 1009억 원이 배정돼 있다. AI 응용제품 신속상용화는 동일 사업이 부처별로 별도 편성된 것처럼 보였다. 2835억 원이 배정됐다. 키워드 클러스트(검색어를 입력하면 관련 키워드들로 분류된 기사들을 몇 개씩 묶어 보여주는 방식)로 봐도 비슷해 보이는 게 많았다. 데이터센터는 16개 사업, 6개 부처, 2461억 원이 배정됐다. 바이오는 33건, 10개 부처, 2017억 원이 배정됐다. 로봇은 최다 부처를 기록했다. 11개 부처, 36건, 1882억원이 배정됐다. 양자도 9건, 4개 부처, 938억 원이 배정됐다. 그런데 이게 정말 중복사업인지는 알기 어렵다. 앞에서 본 것처럼 데이터 정합성이 떨어지고, 표현이 제각기 다르고, 분류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중복의심사업'을 짚어낼 수 있을 뿐이다. AI전략위원회만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매년 예산안 분석 시 부처별 예산서를 수동으로 검토한다. 41개 부처x533개 AI 사업의 교차 분석은 현행 인력과 도구로는 할 수가 없다.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소관 부처의 AI 사업 현황을 파악하려면 5296페이지 PDF를 직접 탐색해야 한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심의에서도 교차부처 중복사업 지적은 개별 위원의 전문성에 의존한다. 체계적 데이터 분석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국은 '열린재정(openfiscaldata.go.kr)'과 '지방재정365(www.lofin365.go.kr)' 두 개의 재정 공개 포털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둘 다 페이지당 결과물 한도를 제한(예: 100건씩)하고 있어, 전체 데이터를 한 번에 받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으로 페이지를 반복 호출해야 한다. 데이터 품질은 앞서 본 대로다. 미국은? 당연히 매일 갱신되는 전체 데이터베이스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통째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제공한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데이터가 이러면 인공지능은 힘을 쓰지 못한다. 대한민국 AI 정부가 출발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판이다. 인공지능이 기뻐 날뛰게 만드는 법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재정 데이터에 인공지능을 쓸 수 있게 될까? '열린재정'은 부처별·기능별 총액 수준의 통계를 제공한다. '국방부가 올해 얼마를 썼는지'는 알 수 있지만, '국방부가 어떤 업체와 어떤 계약을 맺고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dBrain+)에서 관리하는 예산 집행 데이터를 세부사업-내역사업 단위까지 공개한다. 궁극적으로는 개별 계약, 보조금 교부 결정, 출연금 집행 건별로 수혜 기관명, 금액, 집행일자, 사업목적을 공개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 지출공개시스템(USAspending)의 개별 사업 단위, 영국 정부의 정부통합회계보고시스템(OSCAR)의 분기별 세부 코드 단위가 벤치마크다. 다들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만 안 하고 있었다. 현재 dBrain+에서 이미 관리되고 있는 세부사업별 예산현액·집행액·이월액 데이터를 API(기계가 자동으로 불러올 수 있게 해주는 키)로 공개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시스템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다. 다른 노력이 필요 없다. 기본적인 조회는 인증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지출공개시스템 API는 어떤 인증도 요구하지 않는다. 대량 다운로드나 높은 빈도의 호출에 대해서 상한을 걸어두면 남용을 쉽게 막을 수 있다. 개방형계약데이터표준(Open Contracting Data Standard, OCDS)이라는 게 있다. OCDS는 공공 조달을 위한 유일한 국제 개방 표준으로 전 세계 50개 이상의 정부가 시행하고 있다. 표준의 핵심 아이디어는 기획과 입찰에서 낙찰, 계약, 이행까지 조달 과정 전체를 고유 ID로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정부가 가성비를 높이고, 부패를 예방하며, 경쟁을 촉진하고, 공공서비스 제공을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라장터 데이터를 OCDS 형태로 변환해 공개하면 글로벌 조달 분석 도구들과 즉시 호환된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이다. 개방형재정데이터패키지(Open Fiscal Data Package, OFDP)라는 표준도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재정데이터개방촉진사업(BOOST 이니셔티브) 등이 공동 개발한 것으로, 현재 7개국 정부가 예산 및 지출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 두 표준을 연결하면 예산 배분, 조달 과정, 실제 지출을 하나로 연결하는 도구를 갖출 수 있다. 즉, '이 사업에 얼마가 배정됐고(OFDP) → 어떤 계약이 체결됐으며(OCDS) → 실제로 얼마가 집행됐는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쉽게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자, 이제 AI가 기뻐서 날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먹고 살 데이터가 너무 많아요!"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자 중앙과 지방의 데이터도 연결해서 함께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중앙정부 데이터는 열린재정(기획재정부·재정정보원), 지방정부 데이터는 지방재정365(행정안전부)로 이원화돼 있다. 열린재정 자체도 지방재정 데이터는 API 연계 데이터로 제공하면서 "실제 데이터와 차이가 날 수 있으니 지방재정365에서 확인하라"고 안내한다. 데이터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는 얘기다. 두 시스템의 분류 체계, 갱신 주기, 데이터 품질이 다르다. 통합 데이터 카탈로그를 만들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시스템을 합치라는 게 아니다. 중앙과 지방의 사업번호·기능분류 코드를 호환할 수 있는 표를 만들고, 하나의 API 게이트웨이에서 양쪽 데이터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이제 인공지능이 날뛸 수 있다. 예산현액보다 지출액이 큰 사업, 전년 동기 대비 300% 이상 변동한 항목, 코드 불일치 등을 자동 탐지해서 실시간으로 오류를 잡을 수 있다. AI 이상 탐지의 가장 기초적인 적용이다.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재정 거래에 범정부 고유 ID를 부여한다. 미국은 데이터법으로 이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dBrain+ 사업번호, 나라장터 계약번호, e-나라도움(보조금 시스템) 교부 번호 간의 매핑 테이블, 그러니까 '이 번호가 여기서는 이 번호예요'를 알려주는 표를 만들어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한다. 이것만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돈의 흐름 추적'이 가능해진다. 수혜기관과 업체에 대해서도 통일된 식별자를 적용한다. 사업자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하되, 동일 법인의 다양한 표기(주식회사 OO, OO(주), OO 주식회사)를 묶어 '같은 업체가 여러 부처로부터 얼마를 받는지'를 집계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하면 '이 예산이 어떤 계약으로, 어떤 업체에, 얼마가 갔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자, 이제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AI가 달리고 싶어서 앞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제 핵심을 정리하자. 기계가 읽을 수 없는 데이터는 데이터가 아니다.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를 넘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AI를 귀중한 도구로, 협력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재정데이터를 이 지경으로 둔 채 AI 정부를 만드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2026.03.18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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